요즘 경제가 참 어렵다. 어떤이는 철들고 나서 경기 좋다는 말 들은적이 한번도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경기가 안좋다는 것이 정말 피부로 느껴진다. 10년전 IMF사태는 아무 죄없이 청춘을 바쳐가며 가족을 부양했던 이 시대의 아버지들을 회사에서 쫓아냈다. 갈곳을 잃은 그들은 존재감을 잃었고, 심지어는 가족들에게도 외면당한 슬픈 일들도 있었다. 이제 먹고사는 문제는 단순히 한 회사에 충성을 바친다고 해서 보장되는 것이 아님을 모두가 깨닫게 되었다.
IMF 이후, 평생 직업이 개념이 사라지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는 사회의 또다른 문제로 떠올랐다. 일은 같이 하는데, 언제든지 짜를 수 있는 직원이라니.. 당사자들에게 이처럼 암울한 미래가 또 어딨을까? 계약직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수는 지금도 늘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고용시장의 불안은 갈수록 어려운 경기상황에서 서민들의 생계를 점점 살얼음판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이러한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을 담은 독립영화다. 구조조정과 노사분규,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협상의 카드를 쥐고 있는 노조위원장 허대수. 그는 200명의 인원감축안을 20명으로 줄여 회사측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성공한다. 언뜻 보기엔 대단한 성과를 이루어 낸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지만, 실상 20명안에 들어가는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합의안이 결코 달갑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에게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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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허대수는 '내가 비정규직을 만들어낸게 아니다'라며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마음은 편치 않아도 내 일처럼 생각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여느때처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화목한 가정으로 일을 마치고 돌아간다. 그런데 식사도중 딸아이가 결혼을 하겠다고 말한다. 잠시 당황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겪어야 할 과정이 아닌가. 상대가 누구냐는 말에 딸은 그저 '좋은 사람'임을 애써 강조하며 한번 만나볼 것을 종용한다.
다음날, 우연한 기회에 딸의 남자친구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청년. 허대수는 눈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다른건 다 참아도 '비정규직'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허대수는 갖은 트집과 핑계를 대가며 딸의 결혼을 방해하는가 하면 장차 사위가 될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청년을 매몰차게 대하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허대수는 자신이 심각한 직업병에 걸리게 되었음을 알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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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극중 허대수의 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의 모습이다. 가족을 위해서 헌신적이고 동료들에게서 인정받지만 마음 속 깊숙히 자신보다 더 약자인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아량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가 비정규직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딸아이의 장래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그런 허대수의 모습을 보고 딸은 말한다. '위선자' 라고. 누가 우리의 아버지들을 위선자로 만들었는가? 참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들의 직업이 '귀족노조'로 지탄받는 현대자동차 근로자들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하기는 하나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비정규직의 심각성과 미래를 빼앗긴 청년들의 불확실성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색한 연기가 눈에 띄지만 비전문 배우들로 이뤄진 조연들의 모습은 오히려 극을 자연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장점이 있으며 주연인 허대수 역을 맡은 엄경환의 연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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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가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실제 사정이 어떠한지에 대해 모르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서 비정규직과 생산직 근로자의 현실을 조명한 [안녕? 허대짜수짜님!]은 비록 100점 만점을 주기엔 부족한 영화일지는 모르겠으나, 오랜만에 등장한 노동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인당 근로시간이 세계 최고치를 달리는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 사는 나라에서 소위 '노동영화'라는 것이 전무하다시피한 기현상은 언제쯤 사라질 것인지...
* [안녕? 허대짜수짜님!]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그리고 필름앤드라마.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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