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이 너무 조용해. 좀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긴급조치 19호]라는 영화를 기억하는가? (리뷰바로가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계엄령을 선포해 전국의 가수들을 잡아들인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한국영화사상 궁극의 괴작에 손꼽히는 작품으로서 당대의 수많은 인기 가수들이 총출연했음에도 그 황당한 설정 덕택에 대실패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황당한 사건이 실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발생했던 일이라면 믿겠는가?
1969년에 시작한 미국의 우드스탁 페스티발은 ‘3 Days of Peace & Music’ 라는 슬로건를 외치며 인종문제와 반전시위 등으로 얼룩진 미국 사회의 혼돈으로부터 탈피를 꿈꾸는 히피족들의 거대한 축제였다. 비록 보수적인 미국사회의 곱지 않은 시각속에서도 이들은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어 버리며 미국인의 저항의식을 락음악과 함께 승화시켰다. 이 무대에 섰던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닐 영, 산타나 등의 뮤지션들은 오늘날까지 미국 대중 음악사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락 뮤지션으로 남아있다. (물론 필자 자신은 마약을 남용하고 누드쇼를 감행했던 우드스탁 자체를 바람직하게 생각하진 않는다. 여기서 언급하려는건 상황이야 어쨌든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었다는 사실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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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비슷한 시기의 한국은 어땠을까?
영화 [고고70]은 1970년대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밤의 세계와 대비시켜 조명한 작품이다.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문화와 오락이 있는 법.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청춘남녀들은 과연 그 시기에 어떤 문화를 즐기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물론 밤문화가 꼭 그 당시 모든 대중이 즐겼던 오락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 만해도 필자처럼 밤 10시 이후에는 바깥활동을 자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뎡말?) 밤이면 밤마다 술집이나 나이트를 전전하며 그날의 스트레스를 풀어 버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고고70]이 굳이 70년대 밤문화와 나이트 클럽이라는 소재를 택한건 나름 그 시대의 이중적인 시대상을 보다 명백하게 대비시키려는 의도인 것 같다. 1972년 유신헌법(維新憲法)의 통과후 국내의 모든 언론을 통제하고 심지어 퇴폐문화를 조장하는 불손분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목하에 대중문화에도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했던 그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 http://blog.naver.com/gogo70_club (고고70 공식블로그)
국가안보를 핑계로 지속된 야간통행금지(자정~4시까지)라는 법이 존재하던 시절, 정작 모범을 보이셔야 할 몇몇 높으신 분들은 요정이나 호텔을 들락거리며 세상천하가 자기것인냥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거리를 마음껏 활보하며 그들만의 밤세계를 만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작 고된 업무와 살벌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반 서민들은 (언제나 죽어나는건 서민들이다) 이걸 해소할 만한 방도가 없었다.
[고고70]의 주인공인 그룹 '데블스'는 바로 이런 시기에 합법적인 24시간 영업이 가능했던 호텔 고고 클럽 (오늘날의 나이트 클럽) '닐바나'를 주 무대로 활약했던 락 밴드이다. 유난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한민족의 특성상 어찌보면 '놀아보고 싶은' 청춘들에게 있어 닐바나는 욕망의 분출구이자 해방을 의미하는 장소였으며, 음악적 열정을 불태우는 데블스에게는 꿈의 무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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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자촌을 전전하며 무명의 밤무대 업소 밴드로 전락할 뻔한 데블스는 서울로 상경해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이룬다. 밤이면 어김없이 닐바나를 찾아오는 젊은이들은 데블스의 자칭 '쏘울'이 담긴 음악에 열광하며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4시까지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고고 열풍을 일으키게 된다. 그들의 노래와 활동 무대는 비록 표면상으로는 금지된 것이었지만 억압하면 할 수록 하고 싶은 욕망은 더 간절해 지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결국 정부의 강력한 장발 단속과 금지곡 발표 (이 노래들을 금지시킨 이유가 나오는 대목에서는 정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고고장 일제단속 등 대대적인 '금지령'의 시퍼런 서슬하에서 데블스도 어쩔 수 없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 난다긴다 하는 대중 뮤지션들은 모조리 잡혀들어와 머리카락을 잘리고, 심한 구타를 당해가며 모진 고초를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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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우드스탁 무대에 섰던 가수들이 극찬을 받는 마당에 한국은 이들을 '딴따라'라고 경멸하며 퇴폐와 향락의 주범으로 몰고 갔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긴급조치 19호]가 실제 있었다고 말한건 바로 이런 부분이다. 한국 근대사의 가장 암울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그 살벌한 통금시절에 굳이 고고클럽까지 찾아가 춤추며 놀겠다고 하는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바람직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피끓는 청춘의 스트레스를 발산할 건전한 해방구를 제시하지 못한채 억압과 규제로서 억누르려했던 당시의 시대상은 정말 처량하기만 하다.
[타짜]이후 간만에 컴백한 조승우는 뮤지컬 '해드윅', '지킬박사와 하이드'로 단련된 보컬솜씨를 이번 작품에서 십분 발휘하며 뛰어난 연기를 선사하고 있다. 그외에 그룹 데블스를 구성하는 배우들도 아직은 조연이지만 하나같이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와일드캣츠'의 리더 미미 역의 신민아는 이번 작품으로 그동안 불거져왔던 연기력 논란에 한 획을 그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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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작품이 '실화'라는 컨셉으로 홍보되고 있는 것은 다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고고70]의 언론 시사회가 있은 직후 제작사 측에서 70년대의 실존 그룹 '와일드캐츠'를 왜곡 묘사한 부분에 대한 공식 사과를 발표했으며 극장 개봉에서는 이를 '와일드걸즈'로 수정해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실존 그룹을 조명하고 있음에도 상당 부분 각색이 이루어 졌다면 이는 당연히 실화가 아니라 '팩션'으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연출을 맡은 최호 감독의 지나치게 '진한' 표현력이다. 결코 마음편한 멜로물은 아니었던 [후아유]부터 날것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있는 [사생결단]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그의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부담스럽다. [댓 씽 유 두]처럼 약간의 상큼함을 집어넣었다면 훨씬 영화가 담백해졌을 것을... 락 앤 롤 본연의 경쾌함 보다는 '울분'의 감정이 느껴지는건 감독의 연출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적 상황의 어두운 면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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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시사회 때 주연인 조승우는 [고고70]에 대해 '드라마에 치중한 영화도, 완전한 음악영화도 아니고 시대만을 다루지도 않았다. 드라마, 음악, 시대 3박자가 조화를 이뤄 좋았다'고 말한 바 있지만 실상은 음악쪽에 다소 치우친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후반부에 이르러 영화의 탄력성이 떨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고고클럽에 와 있는 듯한 현장감을 전달하는 것은 좋지만 2시간을 한정되어 있는 러닝타임속에 관객이 앉은채로 길게 이어지는 70년대의 락음악을 소화해 낼 만한 체력적 한계가 어디까지 일지도 의문스럽고 말이다.
전반적인 복고풍 컨셉의 완성도와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문화를 소재로 한 음악영화라는 점에서 [고고70]의 시도는 고무적이다. 아직은 거칠고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느낌도 들지만 영화가 가진 에너지 또한 대단하다. 하지만 갈곳 많고 즐길 것이 눈만 돌리면 세상 도처에 널려 있는 오늘날의 세대에게 있어서 오로지 그 시간 한 장소에서 고고댄스에 올인하는 그 시절의 정서가 과연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P.S: 하긴 미국에도 한때 금주령이라는 것이 있었다. 무분별한 음주로 각종 사고가 발생하자 술 자체를 '공공의 적'으로 지명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금주법의 시행으로 인해 밀주, 밀수 등으로 어둠의 세계를 장악한 마피아들의 세력을 확장시킨 결과를 낳았다.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던 셈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이 뭔 죄냐, 술이 웬수지'라는 말을 아주 싫어한다.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니까) 결국 억압만 가지고는 욕망을 잠재울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 [고고70]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보경사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우드스탁 1969 (ⓒ http://www.woodstock.com), 신문기사 (ⓒ 고고70 공식블로그), 그룹사운드 데블스 2집 앨범(ⓒ 아세아 (ALS-22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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