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만화가 강풀의 '순정만화 시즌3: 그대를 사랑합니다'에서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호상,호상 하지 말란 말이야.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어떻게 잘 죽은거란 말이야!'. 삶과 죽음. 인간을 비롯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반드시 한번씩은 거치는 필연의 과정이지만 멀쩡히 살았던 사람을 화장터로 보낸다는게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일은 아니다. 아무리 고인이 천수를 누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영화 [굿'바이]는 항상 죽음을 접하고 살아가는 납관사의 직업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독특한 일본 영화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소재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미리 가질 필요는 없다. 오히려 [굿, 바이]는 죽음을 매우 일상적인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도록 관객을 설득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다.
1.줄거리 |
제목이 주는 뉘앙스와 두 남녀가 마주보고 있는 포스터의 분위기로 봐서는 단순한 멜로물로 생각하기 쉬운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굿'바이]는 사뭇 다른 영화다. 첼리스트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는 어렵사리 들어간 오케스트라가 하루아침에 해산되는 바람에 직장을 잃는다. 프로용 첼로를 구입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대출받은 그로서는 아내의 얼굴을 볼 면목도 서질 않는 상태다. 그러나 이해심 많은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는 의기소침해져 있는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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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온 다이고는 6살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가 남긴 가게를 거처로 삼아 직업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이때 문득 그에 눈에 들어온 NK 에이전시의 구인광고. 경력 무관에 고수익을 보장하는 여행의 도우미라는 문구에 혹한 다이고는 면접을 보러 NK 에이전시를 방문하고, 1분도 걸리지 않아 채용된다. 알고보니 NK는 "납관"의 이니셜로 다이고는 얼떨결에 납관사의 어시스턴트가 된다.
그러나 항상 시체를 만지며 살아야 하는 납관사의 직업이 일반인들에게 있어서 좋게 보일리가 없다. 아내에게 조차 이 사실을 숨기고 납관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다이고는 차츰 고인을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이 매우 의미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직업에 프라이드를 갖기 시작한다. 그러나 곧 이 사실을 알게된 아내의 반대와 주변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갈등을 겪게 되는데....
2.잔잔함이 주는 일본영화의 매력 |
흔히들 일본영화에 대해 갖는 거부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서적으로 거부감이 느껴지는 일본인 특유의 난해함이 두드러지는 영화 때문. 또 하나는 지나친 과장이 점철된 괴작급의 영화들이 난립한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역시 일본영화가 가장 돋보일때는 잔잔한 일상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카모메 식당]이나 [러브레터]가 그렇듯 과장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소재를 요리하는 기술만큼은 한국영화계가 본받아야 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경우가 많은데, [굿'바이]에서도 죽음이라는 소재와 납관사라는 직업을 통해 일본의 한 시골마을의 풍경을 매우 잔잔하고도 매력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3.배우들의 호연 |
이미 [으랏차차 스모부]에서 코믹한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 모토키 마사히로는 이번에도 역시 특유의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캐릭터를 매우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다. '납관일을 하는 첼리스트'라는 독특한 캐릭터인 만큼 시체를 염하는 몸동작 하나하나도 매우 그럴듯하게 연기하고 있으며, 또한 첼리스트로서 연주하는 모습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또한 [철도원]이래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던 히로스에 료코의 출연 역시 팬들에게 있어서 맘 설레이는 소식일텐데, 헌신적인 아내이자 사랑스런 여인으로서의 마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보이고 있다. 다만 영화 자체가 모토키 마사히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영화속 히로스에의 비중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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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NK 에이전시의 사장으로 다이고에게 납관사의 직업적 긍지를 느끼도록 도와주는 멘토의 역할을 맡은 야마자키 츠토무도 오랜 연륜이 묻어나오는 깊이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으며, TV 드라마와 스크린을 오가며 감초 연기를 보여주는 요 키미코도 일드를 즐겨보는 관객에게는 반가운 얼굴일 듯.
4.적절한 웃음의 효과 |
[굿'바이]의 오프닝은 어느 상갓집의 고인을 염습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죽음이 가진 어두운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던 납관절차는 갑자기 예상치 못한 폭소를 유발하는데, 관객에게는 긴장을 풀게 만드는 장치로서 그리고 향후 이 영화가 죽음앞에서의 숙연함을 얼마나 유연성있게 다룰 것인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이후 [굿'바이]는 비교적 진지한 극의 전개 속에서도 분위기를 가라앉히지 않도록 곳곳에 따뜻한 유머가 적절히 배치되어 있으며,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 도가 지나치치 않는 범위내에서 효과적으로 웃음을 컨트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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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훈훈한 웃음을 주었던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는 신파조의 감동적인 흐름으로 전환되지만 그럼에도 영화 전체의 밸런스는 별로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만 기승전결의 결에 해당하는 부분이 완만한 쌍곡선을 그리며 두 번의 감동을 연거푸 요구한다는 것에서 영화의 호흡이 길어지는 단점이 발견된다.
5.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 |
어차피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이라면 고인을 배웅하는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영화의 주장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살아생전 고인과 아무리 많은 갈등을 겪었어도 죽음앞에서는 그 어떤 애증의 감정도 무위로 돌아가는 법. 고인을 떠나보내는 납관절차를 통해 남겨진 자들의 삶과 인생의 의미를 돌이켜보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잔잔하게 와 닿는다. 말그대로 '굿바이'(이별)가 아닌, '굿'바이'(좋은 헤어짐)가 되기 위해 정성껏 시체를 닦아 옷을 입히고 생기를 불어넣는 납관사의 손길이 유독 아름답고 고귀해보이는 것도 [굿'바이]만이 보여주는 독특한 시선이다.
6.기억할 만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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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떠난 후 홀로 남은 다이고가 후지산을 배경으로 첼로를 켜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 사단의 음악 전담이자 키타노 다케시의 음악적 페르소나인 히사이시 조의 감성적 선율과 함께 빛을 발한다. 서정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영화의 느낌을 아주 잘 대변하는 명장면.
7.총평 |
[굿'바이]는 죽음의 이별에 대한 낙관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다소 부담스런 소재를 가지고도 무겁거나 우울하게 치장하지 않았으며, 감상적으로 치우치는 우를 범하지도 않는다. 일본영화 특유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면서도 진부함을 드러내지 않는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며, 특히나 캐릭터의 내면을 섬세하게 이끌어내는 배우들의 연기도 탁월하다.
아울러 표면적인 것만으로 직업의 귀천을 따지려 드는 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이 영화가 주는 교훈점이다. 감동과 웃음, 그리고 교훈까지 포함된 이런 웰메이드 영화를 보고나면 새삼 일본영화가 가진 무시못할 저력을 발견하게 된다. 32회 몬트리올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 17회 중국 금계백화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 주연상 수상작.
* [굿'바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Shochiku Company/Shogakukan.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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