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은 늘 한결같다. 벌써 80을 바라보는 노인이지만 잔뜩 찌부린 미간에서 풍겨나오는 그의 마초적 포스는 과거 '무법자 시리즈' 시절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체인질링]에 이어 발표한 [그랜 토리노]는 역시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작품에서의 클린트와 크게 차이날 것이 없는 캐릭터인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사나이(물론 이젠 나이를 먹은 노인이지만)가 어찌되다보니 마을의 영웅적인 존재로 변모한다는 그런 얘기로서 기존 작품들의 틀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매번 반복되는 아메리칸 히어로의 모습이 지겹지 않은 이유는 거장으로서 노련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클린트의 노련한 연출력과 연기가 훌륭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 아닐까. '영웅본색' 이라는 말처럼 아무리 늙어 버린 액션 히어로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미국인들의 히어로로서 부족함이 없다. 노인네가 주연인 드라마에서 이 정도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배우가 가진 아우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해주지 않는가.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흥미로운 사실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맡은 19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보면 공통적인 한가지 설정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인데, 총 5편의 더티 해리 시리즈 중 유일하게 직접 감독까지 맡았던 [서든 임팩트]는 기존의 시리즈와는 달리 한 여인의 개인적인 복수극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이스트우드식 리얼리즘 서부극의 출발점인 [페일 라이더]는 악당을 해치우는 사연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어떤 과거에 대한 복수극이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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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뿐만이 아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내내 무기력한 늙은 총잡이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복수의 화신이 되어 마을 전체를 쓸어 버리는 괴력을 발휘하며, [미스틱 리버]에서 살해당한 딸아이에 대한 한 남자의 복수심은 끝내 남자들의 우정을 파멸로 몰아넣을만큼 치명적이다. 이렇게 '복수'라는 코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작품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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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 토리노]에서도 복수는 극의 클라이막스를 이끄는 중요한 감정적 매개체다. 가족과의 관계마저 소원한 늙은 백인이 겨우 이웃 사람들과 마음을 여나 했더니, 마을의 갱단에게 심한 린치를 당한 이웃집 소녀를 보면서 복수심에 불타는건 당연지사. 그러나 이번 [그랜 토리노]에서는 '복수'를 다루는 방법이 조금은 다르다. 아마도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신의 나이만큼 어떤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영화내내 은퇴한 '더티 해리'마냥 하드보일드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주인공 코왈스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가 선택한 최종복수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는 영화 속에 주어지는 몇몇 복선을 통해 일부 예측이 가능하긴 하나 그동안의 행적에 비한다면 다소 의외인건 사실이다. 그걸 확인하는 건 물론 관객들의 몫이니 가급적 눈으로 직접 확인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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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용서받지 못한 자]를 통해 과거 '마카로니 웨스턴' 시절 총잡이의 모습을 지워버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랜 토리노]에서 속죄의 길을 택한 폭력적인 히어로의 결말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여전히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볼때면 'Go ahead, Make my day'라는 대사를 언제 내뱉는다해도 이상할게 없지만 이제 원숙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노배우의 눈가에는 어느덧 자상한 이웃집 할아버지의 선량함마저 느껴진다. 1
* [그랜 토리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arner Bros.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서든 임팩트(ⓒ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 의외로 많은 영화 리뷰어 및 평론가들이 아직까지도 잘못 인용하는 대사 중 하나가 'Go ahead, Make my day'인데 대부분 이를 [더티 해리]의 명대사로 착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대사는 [더티 해리] 1편에 나오는 대사가 아니라 4편에 해당하는 [서든 임팩트]에서 사용된 대사다. 1편에서는 'Do I feel lucky? Well, do ya, punk?'라는 대사가 두번 언급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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