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괴작열전(怪作列傳) : 긴급조치 19호 - 깨지지 않는 방어율, 1점대 평점의 비밀

페니웨이™ 2007. 11. 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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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작열전(怪作列傳)  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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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에 무비스트에서 '네티즌이 뽑은 2000년대 최악의 한국영화 Best'라는 글이 올라와 한동안 인터넷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베스트에 뽑힌 영화들의 목록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걸작(?)들로만 이루어져 있더군요. 지난 괴작열전에서 소개한 [클레멘타인]을 비롯해 같은 김두영 감독의 [주글래 살래]도 올라와 있고, [아 유 레디?], [도마 안중근]등 그야말로 쟁쟁한 작품들이 선정되었습니다. ㅡㅡ;;

과연 그 중에서 '킹왕짱' 1위에 오른 영화는 무엇일까요? 바로 [긴급조치 19호]라는 작품입니다. 귀에 많이 익으시죠? 그런데 이 작품을 실제로 본 사람은 몇이나 될지 그것이 더 의문입니다. 암튼 봤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평가는 여지없이 0점 아니면 10점 만점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만한 괴작이 한국영화사상 또 있을까요?

출처: 무비스트

깨지지 않는 평점 1점대의 신비. [긴급조치 19호]


 사실 [긴급조치 19호]는 기획 초기부터 말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잠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과거 [납자루떼]에 올인해 함부로 영화만들면 패가망신한다는 모범적인 전례를 세웠던 개그맨 서세원이 오랜만에 영화판에 돌아와 제작한 영화. [조폭 마누라]로 큰 성공을 거두자 'SS1 시네마' 라는 배급사를 세우게 됩니다. [긴급조치 19호]는 바로 SS1 시네마의 두번째 배급작이었던 것이지요. (첫번째는 [4발가락])

연예계에 발이 넓은 서세원의 역량 덕택에, [긴급조치 19호]는 상당수의 인기가수들을 섭외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면 물불 안가리는 10대 팬들만 극장으로 모아들여도 상당한 수익이 될 것이라는 얄팍한 상술이 배후에 깔려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실제로 서세원 프로덕션측은 첫 배급작인 [4발가락]이 신통치 않은 성적을 올렸기에 [긴급조치 19호]에 거는 기대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제작자인 서세원은 [긴급조치 19호]의 홍보성 멘트를 해주는 대가로 PD들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되었고, 이 사건은 2000년대 초반 SM 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와 더불어 가장 큰 연예계 스캔들을 일으키고 말았지요. 결국 서세원은 1년동안 해외도피 생활을 하다 귀국, 법정에 서는 등 갖은 망신을 당함과 동시에 기대와는 달리 영화가 쪽박을 차면서 순식간에 20억원대의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하긴 [조폭 마누라]가 그렇게 대박을 터트린 것도 이해가 안가지만, 역시 관객의 눈은 정확했달까요. [4발가락], [도마 안중근]만 봐도 서세원이 참여한 영화치고 제대된 영화가 없다는 얘깁니다.


ⓒ ㈜ SOURCE ONE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납자루떼]의 대실패 이후 서세원이 감독으로 컴백한 [도마 안중근].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주연인 유오성의 배우 경력마저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작품.



사설이 길어졌습니다만, 아무튼 [긴급조치 19호]는 서세원 측에서 볼때 야심작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었다는 얘기를 하기위해 이 긴 설레발을 치게 되었군요. ㅡㅡ;;; 그럼 일단 [긴급조치 19호]의 내용을 함 들여다 볼까요?

미국의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전세계의 대권을 가수들이 휩쓸자, 한국의 청와대는 혼란에 휩싸입니다. 일이 커지기 전에 가수들을 싸그리 잡아들이고, 유행가를 부르는 일도 일체 금지시키는 '긴급조치 19호'를 발동하자는 안건이 통과되지요. 결국 가수들은 계엄령 하에 모조리 끌려가게 되고, 홍경민(본인 역) 역시 콘서트 도중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연행되는 위기에 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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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홍경민 팬클럽의 회장이자, '긴급조치 19호' 발동의 주역인 비서실장(노주현 분)의 딸 민지(공효진 분)이 이 상황을 그냥 보고 있진 않았지요. 당장 열혈 팬클럽을 동원해 홍경민의 연행을 결사적으로 제지합니다. 마침 홍경민 콘서트의 게스트로 참석하기 위해 현장에 온 김장훈도 얼떨결에 같이 도망을 나오게 됩니다.

........뭔가 스토리를 더 쓰고 싶은데, 쓸 수 있는 스토리는 여기까지군요. ㅡㅡ;; 이후의 스토리는 없습니다. 홍경민과 김장훈의 은둔생활, 그리고 가수들의 연행상황이 번갈아 나오면서 영화는 코미디 단막극의 양상을 띕니다. 그러다가 급기야 홍경민 팬클럽을 위시한 전국의 가수 팬클럽 회원들과 군인들의 대치상황으로 치닫다가, 사이가 안좋은 부녀인 비서실장과 민지가 화해한다.. 뭐 이런 얼토당토않은 초절정 황당무계 시츄에이션으로 마무리 되는 거지요.

먼저 [긴급조치 19호]의 단점을 지적하자면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극도로 빈약한 스토리 라인입니다. 사실 전세계의 국가원수를 가수들이 차지한 것으로 위기감을 느낀다는 설정은 별로 신선하지도 않습니다. 과거 1999년,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코미디 죽이기'라는 연극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연극의 소재는 가수대신 코미디언이 그런 입장에 놓인다는 얘기입니다. 플롯 자체는 완전히 똑같은 것이지요. (사실 개인적으로 '코미디 죽이기'는 엄청 재밌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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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10대들을 타겟으로 했다지만 절대 10대들에게 보여줘선 안될 대사들의 난무입니다. 이 영화는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는 현역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그 인물들이 쌍욕을 무더기로 남발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거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요즘 아이들, 욕을 입에 달고다니는게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으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아이돌로 여겨지는 이들이 그런 쌍욕을 거침없이 내뱉고 그걸 유머라고 주장하는 [긴급조치 19호]의 개념상실은 정말 용서하지 못할 부분입니다.

놀랍게도 이 두가지만 빼면 [긴급조치 19호]는 나름대로 봐줄만 합니다. 한가지 단서를 붙이자면, '명절용 TV 단막극'으로 말이죠. 개그우먼 송은이가 자기도 콘서트까지 한 가수라며 자수하러 오는 장면, 핑클의 성유리가 배가 고파서 무를 갉아먹는 장면, 베이비 복스와 샤크라가 성명을 발표하며 자신들을 '베지밀 박스'와 '사쿠라'로 칭하는 장면들은 아주 기발하지는 않지만 안방극장용 유머로는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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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대로 표현이 덜 되서 그렇지 군사정권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정치에 대한 풍자, 세대차이의 갈등, '빠순이'로 대변되는 왜곡된 팬 문화 등을 우회적으로 그리려 한 흔적도 보이긴 합니다. 무엇보다 꽤 높은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윤은혜, 정려원, 에릭 등 가수출신 배우들의 스크린 데뷔작이라는 면에서도 남다른 의미가 있지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긴급조치 19호]에 출연했던 까메오의 리스트들을 첨부합니다. 양이 많으니 펼쳐서 보시길 바랍니다.


하지만 한국영화사상 유래없는 까메오들이 대거 등장했음에도 극장용 영화를 TV의 스케일에 맞추어 가수들의 자기 PR용 오락물로 전락시킨 [긴급조치 19호]를 평가해 보자면, 아무리 생각해도 괴작의 탈을 쓴 졸작이라고 봐야할 듯 합니다. 혹시나 감독이 누군가 하고 봤더니, 과거 김민종, 허준호, 독고영재 등 나름 호화 캐스팅을 가지고도 영화는 날림으로 만들었던 [마지막 방위]의 김태규 감독이더만요. 역시 괴작은 아무나 만드는게 아니라니까요.


* [긴급조치 19호]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 SOURCE ONE 프로덕션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도마 안중근(ⓒ ㈜ SOURCE ONE 프로덕션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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