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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영화계의 화두는 단연 [놈놈놈]이다.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라는 제목이 알려주듯, 이 작품은 과거 [석양의 무법자] (원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 가져온 한국식 서부극이다. 물론 [놈놈놈]은 단순히 마카로니 웨스턴을 복사한 복제품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의 모티브는 1970년대 초의 만주 웨스턴 [쇠사슬을 끊어라]에서 나왔다.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을 침체된 한국영화계의 불씨를 살려냄과 동시에 잊혀진 추억의 장르물을 부활시키려는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올 여름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과 이목을 끌고 있는 [놈놈놈]은 과연 어떤 작품인 것일까?


 

    1.[쇠사슬을 끊어라]의 오마주  


김지운 감독 스스로도 [놈놈놈]은 [석양의 무법자]보다 [쇠사슬을 끊어라]에 가까운 작품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점은 근래 보기드문 한국 서부극인 [놈놈놈]의 기원이 헐리우드 영화가 아닌 한국영화라는 사실을 말하려는 듯 하다. 물론 만주 웨스턴이 헐리우드 영화와 그밖의 외국장르물에 기초한 국적불명의 혼합장르이긴 하지만 말이다.

ⓒ (주)한국영화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놈놈놈]은 [쇠사슬을 끊어라]가 보여준 3인의 대립구조와 만주벌판에서의 독립군 활동을 접목시킨 설정을 채택했다. 맥거핀을 쫓아 여러 무리들이 가세해 좌충우돌하는 모습은 [쇠사슬을 끊어라]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놈놈놈]쪽이 좀 더 현대적 영화기법으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다만 [놈놈놈]이 한국영화계를 재도약시킬 기폭제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오마주 이상의 성격을 띄어야 했을텐데.. 과거 만주 웨스턴에 대한 감독의 애정은 분명하게 드러나지만 아쉽게도 그 한계가 눈에 보인다.  


 

    2.막강한 캐스팅  


[놈놈놈]에는 그야말로 난다긴다하는 주조연들이 스크린을 점령한다. 주연인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 3인방은 각자가 한 영화의 원톱으로 나서도 손색이 없는 스타급 배우들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오달수, 손병호, 류승수, 윤제문 등의 배우들도 내로라하는 연기자들이 아닌가. 여기에 특별출연하는 엄지원이나 비중은 작지만 이청아, 송영창 같은 낯익은 배우들도 보인다.

한마디로 [놈놈놈]은 배우들의 이름값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또한 아직까지 흥행참패를 경험하지 않은 김지운 감독의 신작이 아닌가. 영화의 내실은 둘째치더라도 겉모양이 이토록 화려한 작품에는 아무래도 관객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이토록 화려한 캐스팅의 절반은 낚시다.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불필요한 캐릭터가 남발되는 가운데 이름값에 비해 비중이 턱없이 낮은 경우도 있어 특정 배우의 연기를 기대하고 온 관객들은 적잖이 실망하고 돌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3.[놈놈놈]의 핵심은 액션  


[놈놈놈]의 플롯은 단순하다. 보물지도를 따라 모인 탐욕스런 인간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내용 말이다. 반전코드나 스릴이 양념처럼 들어가 있다면 더할나위없이 만족스럽겠지만 [놈놈놈]은 아쉽게도 스토리에 있어서는 많은 헛점을 드러낸다. 아니 굳이 헛점이라고 할것까지는 없더라도 줄거리가 말그대로 싱겁다. 긴장감이 결여되어있고 갈등구조도 완만하다.

결국 [놈놈놈]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이라곤, 속된말로 '간지나는' 액션 뿐이다. 특히 '좋은놈'으로 나온 정우성은 정말 그림이 나온다. 필자 뒤에 앉아있던 한 여성관객은 장면 장면마다 입에서 '와~ 멋있다~'가 그냥 튀어나오더라. 유유자적 말타는 자세에서도 장총을 재장전하는 시퀀스는 마치 [터미네이터2]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면서 샷건을 재장전하는 모습에 비할 정도로 폼난다.

ⓒ CJ Ent./Barunson/Grimm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그뿐만이 아니다 정우성이 암시장 지붕위에서 도르레 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장면도 대단한 장관을 이룬다. 이쯤되면 [반지의 제왕]의 '올랜도 블룸 띄워주기'와도 맞먹을 정도다. 후반부 10여분간에 걸쳐 이어지는 추격전의 스팩터클은 또 어떠한가. 여기저기 정신없이 터져나가고 박진감도 있다. 돈들인 티가 팍팍난다. 근래 한국영화에서는 정말 보기드문 장면이긴 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놈놈놈]은 영화의 8할정도를 '보여주기 위한' 연출에 할애하고 있다. 결국 [놈놈놈]의 핵심은 액션이다.


 

    4.배우들의 연기  


앞서 설명했듯이 정우성의 '좋은놈'은 그다지 대사가 많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는 멋진 액션동작을 보여준다. 반면 이병헌의 경우는 생애 처음 악역에 도전하고 있는데, 보스급 악역 캐릭터로서는 장악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쉬움을 남긴다. 이병헌은 분명 잘생겼고, 발성도 A급인 좋은 배우이지만 연기의 색깔이 너무 한정적이다. 좀 더 쉽게 말해 그는 언제나 진지한 연기만을 한다. '나쁜놈'을 연기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는 있으나 진정한 악역은 눈알을 부라리고 얼굴에 칼자국 낸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발산하는 아우라를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다시금 느끼게 해줄 뿐이다.

ⓒ CJ Ent./Barunson/Grimm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반면 [놈놈놈]에서의 송강호는 단연 발군이다. 그 이유는 영화 오프닝 타이틀에 송강호 이름 석자만 나왔는데도 관객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송강호라는 배우가 쌓아올린 캐릭터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며 다른 두 배우보다 현저히 높은 비중을 통해 [놈놈놈]을 사실상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다. 비록 코믹한 연기가 그의 연기력을 한정짓는 부면도 없진 않으나 뭐 어떠랴. 배우 송강호에 대한 관객의 기대는 바로 그것인 것을.


 

    5.[놈놈놈]이 지루한 이유  


[놈놈놈]의 러닝타임은 무려 139분. 2시간 20분에 달하는 비교적 긴 시간이다. 감독은 관객들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최종 편집에서 2분정도를 삭제했다고 밝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놈놈]는 다소 지루하다. 영화가 정말 ㅎㄷㄷ할 지경의 재미를 선사한다면 이 정도의 시간은 정말 후딱 지나갈 터인데, 액션도 풍부하고 유머도 있고, 볼거리도 많은 이 영화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특히나 후반 10여분에 걸쳐 정신없이 퍼붓는 액션공세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피로도가 증가하는 원인은 뭐냔 말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처럼 러닝타임이 긴 영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네러티브의 호소력 부재다.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의 긴박함, 예측 불가능한 반전과 완급의 조절이 모두 무시된 채 오로지 한방향으로만 질주하는 폭주기관차처럼 혼자 달리다 지쳐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매끄럽지 못한 편집상의 문제와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캐릭터들의 남발로 영화는 한층 더 산만해졌다. 한마디로 2시간 이상을 끌고갈 만한 스토리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차라리 예고편 만큼의 간결함으로 살을 쏙 뺐더라면 훨씬 나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6.지나친 폭력성  


필자가 [놈놈놈]을 보면서 정말 놀라웠던 것은 이 작품이 15세 관람가라는 점이었다. 극장문을 나서면서 다시한번 확인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이 영화는 폭력의 수위가 의외로 높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유머코드가 그점을 희석시키기위해 꽤나 애쓰고 있긴해도 여전히 이 영화는 18금 수준의 폭력성을 띤다. 때론 고어스런 장면도 나오며 특정 신체부위를 공략한 부분의 유머씬은 그 내용만으로 볼 때 상당히 잔혹하기까지 하다. (코믹잔혹극을 표방한 [조용한 가족]의 감독이니 이해는 간다만....)

실제로 '연소자 관람불가' 등급이었던 [쇠사슬을 끊어라]와 비교해 보면 [쇠사슬을 끊어라]는 아동용 영화처럼 보일 정도다. 비록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가치관의 변화라는 것이 그렇게도 큰 것인지, 과거에는 보여줄 수 없었던 장면을 이제는 허용해도 된다는 그 기준이 무엇인지 참으로 아리송할 따름이다. 물론 [놈놈놈]은 '현재의 기준'이란 잣대로 보더라도 유난히 폭력에 관대한 국내의 심의기준을 의심하게 만든다.


 

    7.총평  


전체적으로 볼때 [놈놈놈]은 오락영화로서 크게 떨어지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기대주로서 합당한 위치를 점할만큼의 자격이 있는지는 다소 의구심이 생긴다. 물론 [놈놈놈]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놈놈놈]이 최초의 한국 서부극인줄로만 알고 있다가 과거에도 만주 활극으로 알려진 한국식 웨스턴 무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과거 장르물의 재발견은 향후 침체되어 있는 한국영화계에 어떤 이정표를 제시해줄런지도 모른다. 어차피 헐리우드도 이미 소재가 고갈되어 리메이크가 아니면 만화,게임 원작의 영화화라는 지루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놈놈놈]의 시도는 고무적이다.

먼 훗날 김지운 감독이 거장의 소리를 들을 즈음에 [놈놈놈]과 같은 작품을 다시한번 찍는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깊이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놈놈놈]에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나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를 한번 더 봐야겠다.


P.S. 

1. 기대치는 다소 낮추고 관람에 임할 것.
2. 송강호의 '올드보이' 비틀기는 꽤나 웃겼다.
3. 칸느에서 극찬을 받았다는 문제의 그 결말을 보고 싶어졌다.
4. 제발 극장에서 핸드폰 확인 좀 하지 말것. 앞 사람이 거의 10분에 1번 간격으로 폴더 열어 제끼길래 그 놈의 핸드폰 정말 뽀샤버리고 싶었다.
5.사운드에 확실히 문제 있다. 초반부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움에 소름이 끼친게 필자만이 아니더라.


2008/07/12 - [영화에 관한 잡담] - 한국의 서부극, 만주 웨스턴 무비의 세계


*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J Ent./Barunson/Grimm Picture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쇠사슬을 끊어라(ⓒ (주)한국영화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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