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열전(怪作列傳) No.27
1958년작, [이국정원(異國情鴛)]이란 작품을 아십니까? 전창근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김화랑 감독의 [천지유정]과 더불어 국내 최초의 한국-홍콩 간 합작영화로 국내 영화사에 기록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저도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 그 이후로 한국영화계는 홍콩의 간판 영화사들과 함께 [여간첩 에리샤], [망향] 등 한-홍 합작영화 시대를 열어나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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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홍 합작영화는 1970년대 까지만해도 꽤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홍콩 무술영화에 한국 배우가 심심찮게 등장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 박스오피스를 석권한 [죽음의 다섯손가락] 같은 히트작의 경우는 한국인 정창화 감독이 연출을 맡았던 작품입니다. 이렇게 연출이나 스탭, 배우들까지 한국영화와 홍콩영화의 상호 왕래는 꽤나 자유로웠던 편입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면서 이러한 일이 거의 뜸해졌는데요, 아무래도 정치적 격동기를 맞이한 국내의 여건과도 관련이 있었겠지요. 그러다가 1990년대가 되면서 조금씩 합작영화가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관객들의 기대치가 높아친 이 시기의 합작물은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지존무상2]의 두기봉 감독이 연출한 [언픽스]는 당시 청춘스타로 발돋움 중이던 한재석과 [천장지구]의 신데렐라, 오천련을 캐스팅해 대대적인 홍보에 들어갔던 작품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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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로도 현재까지 [칠검], [묵공] 등의 작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는 있으나, 생각만큼 큰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의 '괴작열전'에 뽑히게 된 [천사몽] 역시, 2000년대에 들어 제작된 한-홍 합작영화 중에 하나인데요, 안타깝게도 [긴급조치 19호]나 [클레멘타인]과 동급의 레벨에 랭크되어 있는 대표적인 영화로서, 소문은 무성하나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극소수라는 전설의 작품입니다.
모든 합작영화가 그렇듯, [천사몽] 역시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인기배우를 캐스팅해 마케팅에 전략적으로 사용한 작품입니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인기배우 여명과 신세대 여배우로서 장래가 촉망되던 유망주 이나영을 캐스팅한 이 작품은 초현실적인 SF판타지라는 매우 거창한 장르를 선택하면서 관객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그러나 배우 이름만 믿고 영화가 성공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경기도 오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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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실험장치에 들어가 전생의 연인을 구출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고향인 딜문을 지켜내는 형사 성진(여명 분)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서포 김만중의 고전소설 [구운몽]에서 힌트를 얻었다고는 하나, 자그마치 8년이나 구상하였다는 시나리오 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괴상한 코스튬 차림으로 똥폼잡고 서 있는 주인공들의 포스터만 봐도 쌈마이 냄새가 팍팍 풍기는 [천사몽]은 도무지 이 영화가 이나영의 스크린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절한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그렇다고 돈이 적게 들었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천사몽]에는 자그마치 38억원의 순 제작비가 투입되었는데요, 아마 저예산 아동무비의 거장 남기남 감독님께 [천사몽]을 맡겼다면 그 돈으로 '천사몽 쿼드롤로지(4부작)'에다가 '천사몽 비긴즈'까지 가뿐히 완성시켜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ㅡㅡ;;;
여명은 국내에서 '마지막 사랑'이란 노래를 한국어로 유창하게 부르며 인기를 얻은 만큼, 한국어 대사도 제법 소화해 낼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요, 그 기대를 가볍게 즈려 밟아 버리더군요. ㅡㅡ;; 웅얼웅얼 뭔소리지 모를 대사를 읖조리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다 알아듣었다는 듯, 다음 대사로 넘어가는 상대 한국배우들을 보면서 이렇게 안쓰러워지기는 처음입니다. 결국 '얼굴마담'으로 등장한 여명은 [천사몽]의 주연임에도 불구하고, 액션, 대사, 감정이입 등 모든 면에서 최악의 연기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때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무간도3]에 여명이 나온다는 얘길 들었을 때 "집어치워!"라고 소리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기우였습니다만..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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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주인공처럼 홍보된 이나영은 사실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습니다. 놀랍게도 그녀가 맡은 역할이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닌, 전사(戰士)의 한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는 팔자에도 없는 액션연기를 하느라 죽을 고생을 합니다. 아마도 그녀의 액션을 볼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생각할 때 [천사몽]은 이나영에게 있어 매우 흥미로운 필모그래피를 남겨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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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천사몽]에 쓰인 CG는 싸구려가 아니었습니다. 아시아권 영화로는 최초로 첨단 특수효과장비인 ‘INFERNO’를 도입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영화속에 쓰여진 CG만 무려 250여 컷. 시간상으로는 거의 1시간 분량의 장면에 CG가 사용되었다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천사몽]은 주류 영화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과감한 CG분야에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꽤 화제가 될법한 작품이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최첨단 기술도 쌈마이급 각본과 완성도 앞에서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한다는게 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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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면에서 합작영화라는 것은 영화 외적인 크로스오버라는 점에서 관객이나 영화인 모두에게 특별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작품의 내실에 신경쓰기 보다는 흥행성이라든지, 그밖의 요인들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정작 영화를 만드는 당사자들의 마음에 칠갑산 콩밭에 가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면에서는 다국적 시스템에 익숙한 헐리우드의 제작 환경이 부럽긴 하군요.
* [천사몽]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주니파워픽처스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 참고 스틸: 언픽스 (ⓒ 정명영화㈜ All rights reserved.), 이국정원 (ⓒ 한국연예주식회사/ Show Bro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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