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엔가 TV에서 이경규가 진행하는 몰래카메라를 보게 되었다. 그 에피소드는 한 텔런트가 친한 감독을 대신해 빚보증을 서주는 각본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는데, 다소 무리가 있어보이는 이 몰래카메라에 그 텔런트가 깜빡 속아넘어간 것은 빚을 독촉하는 사내들의 외모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뭐 외모상으론 영락없는 조폭이었으니까. 그 사람들이라고 그렇게 원해서 태어났겠느냐마는 살면서 오해도 많이 받았을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옳든 그르든 간에, 인간인 이상 외모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말도 있지 않은가. "이쁘면 모든게 용서된다"고. 옛말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마음으로만 평가하는게 그 어디 쉬운일이더냔 말이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지닌 만화나 영화가 나오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배우 김아중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미녀는 괴로워]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상을 담아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지만, 원작 만화의 주제를 살짝 빗겨가 '그래도 이쁜게 제일이야'라는 식의 씁쓸한 뒷마무리는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하는 부분이 있었던게 사실이다. ⓒ KM컬쳐 All rights reserved.
그런 면에서 [엔젤전설 (エンジェル伝説)]이란 만화는 훨씬 담백하다. 최근 [클레이모어]란 작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야기 노리히로의 초기작인 [엔젤전설]은 악마적인 외모를 지녔으나 심성은 천사처럼 착한 기타노란 고등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짙은 다크서클, 올백머리, 눈썹없는 눈매, 창백한 얼굴.. 모든 것이 기타노를 마왕같은 이미지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기타노는 정말 악의없이 순수한 학생이지만 주위 친구들과 선생들은 오로지 그의 '악마적 외모' 하나 때문에 그를 무시무시한 문제아로 단정짓는다. 게다가 기타노의 행동 하나하나는 우연찮은 일로 꼬이고 꼬이게 되어 단번에 그를 학교의 캡장으로 만드는 불행(?)을 낳게되고 본의아니게 캡장의 위치에 오는 그는 가뜩이나 공포스런 외모에 더해 캡장이라는 직위까지 주어져 끊임없이 주위의 도전을 받게 된다.
ⓒ 八木教広/ 集英社 All rights reserved.
얼핏보면 전형적인 학원폭력물의 범주에 있는 것 같지만 [엔젤전설]은 다르다. 폭력의 정도와 주인공의 강인함과 승부욕에 초점을 맞춘 여느 작품들과는 달리 [엔젤전설]은 오로지 주인공의 외모 때문에 선입견을 갖는 주위사람들의 반응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포복절도할 유머는 보너스다. 결국 모든 오해를 풀고 우정을 쌓아가는 기타노의 내면에서 나오는 힘이야 말로 그 어떤 외압적인 무력으로도 이길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이 작품은 잘 말해주고 있다.
'키에에에에에~'하며 뛰어가는 기타노의 모습에 사색이되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넘어진 선배에게 손을 내밀며 '괜찮아요?'라고 묻는 기타노를 보고 '내 눈알을 후벼파려 했다'며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들은 사람을 오로지 외모로만 평가하려는 우리들의 선입견에 과감한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八木教広/ 集英社 All rights reserved.
폭력을 미화하지도, 잔인한 장면도 없고 오로지 폭소와 감동만이 존재하는 [엔젤전설]이지만, 아름답고 보기좋은 그림체를 기대하지는 마시라. 악마적인 외모의 기타노처럼 그림 자체는 정말 엉성하고 초반부과 후반부의 그림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만큼 작가의 초보적인 모습이 엿보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듯 그림체로 만화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15권의 비교적 짧은 길이이지만, 깔끔한 결말에 보는내내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을만큼 웃기면서도 따뜻한 감동을 전달하는 작품은 흔치 않다는 걸 명심하시길.
* [엔젤전설]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八木教広/ 集英社.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아울러 [엔젤전설]의 국내 판권은 ⓒ ㈜학산문화사 에 있습니다. 정식 발매판을 이용합시다.
* 참고 스틸: 미녀는 괴로워 (ⓒ KM컬쳐 All rights reserved.)
'도서, 만화 > ㅅ,ㅇ'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어디 가? - 장애아의 아버지는 슬프지만 즐겁다 (6) | 2009.06.03 |
---|---|
이끼 - 한국형 스릴러 만화의 방향성을 제시한 걸작 (55) | 2009.02.04 |
이니셜 D - 당신의 질주본능을 일깨워줄 레이싱 드라마 (33) | 2008.07.14 |
순정만화 시즌1 - 사랑의 치유력에 관하여 (13) | 2007.12.12 |
슬램덩크 - 농구의 저변을 확대한 걸작만화 (16) | 2007.08.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