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아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니까요. 나는 아이들이 읽을 수 없는 책을 선물한 셈이지요.
- 장 루이 푸르니에
한 2,3살 남짓한 어린아이가 입가에 아이스크림을 묻혀가면서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재밌다는 표정, 귀엽다는 표정,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웃음지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상황을 조금만 바꿔보자. 만약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 아이가 발달장애를 겪는 장애아라면 어떨까? 그래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사람들은 연민, 동정, 그리고 슬픔어린 표정을 짓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상황을 유머로 받아들이며 호탕하게 웃는 사람이 있다. 그는 장애아들을 '똥강아지'라고 부르며 막말을 서슴치 않는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그렇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인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들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남자는 스스로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아들 두명이 모두 정신적, 신체적 지체장애를 겪는 장애아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방송작가 겸 감독인 장-루이 푸르니에가 쓴 [아빠 어디 가?]는 실제로 두 아들을 장애아로 갖게 된 기막힌 사연을 가진 작자 본인의 자전적 양육일기다.
이 책이 독특한 이유는 절망적인 상황을 솔직담백하게, 그리고 유머로서 승화시키는 작가의 의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애써 미화하거나 동정의 여지를 남기려는 의도로 책을 쓰지 않았다. 때문에 책에 담긴 두 아들에 대한 표현은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직설적이다. 푸르니에가 주장하는 건 서론에서 언급한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상황이 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웃지 못할 상황이 되어야 하는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상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을법한 여러 가지 생활속 이벤트에 자기 아이들을 대입시켜 엉뚱한 상상의 결과물을 도출해 내곤 한다.
개울을 건널때 뚫어뻥 두 개를 각각 아들들의 머리에 씌워서 대롱대롱 들고 가면 편하겠다는 황당한 상상이나 아들이 다니는 의료교육원에 살고 있는 비둘기와 아이들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고 '새대가리들'끼리는 뭔가 통해도 통한다며 독설에 가까운 발언을 서슴치 않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 문장 하나하나에 아버지로서의 애뜻한 감정이 묻어나오기 때문이리라.
평상시 작품가운데서 특유의 풍자적 어법과 냉소적인 위트를 보여준 푸르니에가 40여년동안 남몰래 겪어왔을 두 아들의 양육과정은 어찌보면 신파로 흐를 여지가 다분히 있지만 그는 독자들이 타성에 젖을만큼 한가로운 감정의 사치를 허용하지 않는다. 장애에 대한 문제를 이처럼 과감하게 그리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가 남들은 하나도 벅차할 만한 일을 두 번이나 연거푸 겪으면서 얻게된 일종의 여유에서 오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가장 우수한 신인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페미나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따스함과 슬픔 ,너무 심각하고 우울한 것과 너무 적나라하고 비도덕적인 것 사이의 알맞은 균형을 위해 1년여를 고심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평생 지적장애를 가진채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들의 부모된 입장을 너무나도 솔직하게 그려낸 책이기에 미래의 부모, 특히 아빠가 될 남자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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