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한 잡담

사형제도에 대한 영화속 세상 엿보기

페니웨이™ 2007. 10. 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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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10.10)는 세계 사형폐지의 날이었다. 이것 때문에 말이 많다. 사형제의 존속이냐, 아니면 '국민정서'에 비추어 아직은 시기 상조냐.. 중요한건 이미 한국은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12월 30일 사형수 23명에 대해 대규모 사형을 집행한 이래 10년간 단 한건의 사형집행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 여기서 중요한 의문이 생긴다. 그놈의 '국민정서'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일례로 살인마 유영철에 대한 사형이 선고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인과응보', 응당 치뤄야 할 대가라는 것에 동감하며 판결자체를 속시원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그 사형이 실제로 '집행'되었는지에 대해선 대부분의 사람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형판결'을 받은 것 자체에 그저 만족을 나타내고 곧 잊어 버릴 뿐이다. 집행되지 않는 사형판결과 사형제의 폐지 사이에 결과적으로는 어떤 차이가 있는것일까? 참으로 아리까리한 문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사형제 찬반은 '국민정서'라는 감정적인 면을 뛰어넘어 사형제에 대한 본질적인 부분을 검토해야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인썸니아]와 [데드맨 워킹]은 같은 사형제도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제시하는 영화다. 먼저 [인썸니아]부터 살펴보자. 사실 [인썸니아]는 사형제도와는 별 상관이 없는 스릴러물로 여겨질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형제를 지지하는 모종의 메시지를 눈치챌 수 있다.


* 주의! 이 후의 글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윌 도머(알 파치노 분)는 범인을 잡고야 마는 근성있는 베테랑 형사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과 더불어 살인사건의 수사를 위해 도착한 알래스카의 백야현상으로 인해 심한 불면증에 시달린다. 마침내 꼬리를 드러낸 살인범을 추격하는 와중에 도머는 그만 몽롱한 가운데 동료 형사를 쏴죽이고 만다. 그 사건의 목격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범인인 핀치(로빈 윌리암스 분). 도머는 이 오발사고를 핀치의 소행으로 몰고가 사건을 은폐하려 한다.

ⓒ Summit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사형의 당위성에 대한 간접적인 암시를 보여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썸니아]. 이 작품에서 '살인자'들은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 죄값을 치룬다..


도머에 의해 희생된 형사의 유족은 도머에게 반드시 살인자를 잡아서 '반드시 죽여달라'고 애원하고, 도머 형사는 그러한 유족의 부탁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핀치가 정신병적 살인자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손에 쥔 도머와 도머의 우발적 과실치사를 목격한 핀치와의 관계. 서로가 살인자인 이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결국 [인썸니아]에서 살인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윌 도머가 괴로워 했던 과거의 사건은 증거 불충분으로 난항을 겪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사형시키고자 윌 도머가 증거조작을 행한 일(이 역시 어떤 면에서는 '사법적 살인'의 단초를 제시한 것이다)에 대한 죄책감이었음이 영화 말미에 가서 드러나고야 만다. 결국 [인썸니아]가 제시하는 해법, 희생자의 유족에 대한 최상의 심리적 응보는 범죄자에 대한 사형이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구약 성서시대 율법의 정당성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데드맨 워킹]은 어떠한가? 이 작품이야말로 사형제도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라는 면에서 많은 화제를 몰고왔던 작품이다. 그저 사형수에게 마음의 짐이나 덜어주고자 생각했던 헬렌 수녀(수잔 서랜든 분)은 그녀의 도움을 요청했던 사형수 매튜(숀 펜 분)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인간 쓰레기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인종 차별주의자에 자신의 죄에 대한 일말의 뉘우침은 없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매튜는 그럼에도 자신이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고 정작 주범은 변호사 선임을 잘한 덕에 사형을 면했다고 항변한다.

ⓒ Polygram Filmed Entertainment /Working Title Films. All rights reserved.

사형제도에 대한 진지한 성찰. 팀 로빈슨 감독의 [데드맨 워킹]


인간적으로 경멸해야 할 대상임에도 매튜의 사형만은 면하게 해주고 싶은 헬렌은 사방으로 열심히 방법을 알아보지만 유죄가 명백한 강간 살인범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희생자의 유족은 헬렌이 살인범에게 동조한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다. 결국 사형집행 전 6일간 매튜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헬렌은 돈많은 사람이 좋은 변호사를 구해 빠져나가는 사형제도의 본질, 그리고 살아있는 한 인간을 죄인이라는 명목하에 또다른 '사법적 살인'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심한 갈등을 느낀다.

[데드맨 워킹]이 설득력있는 이유는 매튜라는 캐릭터를 매우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처럼 그는 '억울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살인과 강간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며 영화는 플래쉬백 기법을 통해 그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비록 그가 가난 때문에 좋은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가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매튜는 뉘우침은 고사하고 자신은 억울하다고만 주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매튜에 대한 사형집행은 일말의 재고조차 필요없는 당연한 처사일까?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독극물 주사로 산 자에서 죽은자가 되어가는 매튜의 모습을 보고 마음 한구석이 게운치 않은 이유는 영화가 지나치게 매튜에게 동정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용서하기는 힘들어도 사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겠다던 한 유족의 대사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처럼 각기 상반된 주장이지만 사형제도에 대한 생각은 각자의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을 가늠하기가 매우 어려운 문제다.  현재 한국내에는 아직도 64명의 사형수들이 살아있다. 어제 사형제도 찬반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연쇄살인마 유영철에게 노모와 아내, 4대 독자를 모두 잃은 한 유족이 그의 구명을 위해 힘쓰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과연 사형은 '필요악'인 것일까? 판단은 여러분의 몫이다.

P.S: 그밖에도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는 이나영, 강동원 주연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있으며, [살인에 대한 짧은 필름]과 [데이비드 게일]역시 사형제도에 대해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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