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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강탈자들 시리즈 No.1










*. 주의! 본 리뷰는 영화의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화의 내용을 미리 알기 원치 않으시는 분은 읽지 마시길 권합니다.


[인베이젼]의 개봉을 앞두고 잭 피니의 소설 '신체 강탈자들(The Body Snatchers)'을 원작으로 한 작품들을 회고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무엇이 이 작품을 4차례나 영화화하게 만들었을까? 한 작품이 리메이크되는 경우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자그마치 4번이나 리메이크 된 전례없는 기록을 세운 이 작품은 B급 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낸 돈 시겔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그 작품이 바로 [우주의 침입자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다.

주로 실험적 성향이 강한 작품을 선보였던 돈 시겔은 당시의 미국 사회를 우회적으로 묘사할 기회로 삼는데 잭 피니의 소설이 적격이라고 생각했다.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공포감이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감독이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다 선명히 구별할 수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야밤의 경찰서에 자신의 이야기를 믿어달라며 절규하는 남자의 사연을 듣기위해 정신과 의사가 도착한다. 이 남자는 자신을 의사라고 밝힌뒤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것이지만 절대로 나는 미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기가 겪은 놀랄 만한 이야기를 회상형식으로 진행한다.

ⓒ Walter Wanger Productions/Artisan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의사인 마일즈(케빈 멕카시 분)는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자신의 가족이 '변했다'는 것이다. 겉모습, 목소리, 습관, 기억 등은 동일하지만 그 속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로 바뀌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에 왠지모를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집단적인 심리현상 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마을의 친구인 잭이 어느날 급한 용무로 불러 찾아간 후 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인간의 모양을 한 무엇인가가 잭의 집 당구대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 생명체는 곧 집주인인 잭의 모습으로 변화하고, 이것이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느낀 마일즈는 연인인 베키(다나 윈터 분)의 집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생물체가 베키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하고 베키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도 이상한 씨앗모양의 괴생명체가 놓여있었고 이내 그것들은 자신들의 모양을 복제해 서서히 자라고 있었다!

마을은 점점 복제된 사람들로 채워지고 있었고, 그들은 정상인들을 강제로 잠재워 신체를 빼앗는 행동을 반복한다. 마을을 탈출하고자 하는 마일즈와 베키는 복제인간들의 추격을 받으며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는데...

ⓒ Walter Wanger Productions/Artisan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앞으로도 소개할 '신체 강탈자들' 영화들 모두가 동일한 소재로 신체를 강탈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각각의 영화들에 쓰인 배경과 내용은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돈 시겔의 [우주의 칩입자]는 1956년에 제작된 만큼 당시의 미국사회의 '어떤 사건'을 영화에서 은유적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바로 '메카시즘'의 확산이었다. 1950년 2월 상원의원 J.R 메카시가 "미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 폭탄발언을 통해 이후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는데, 미국민이 은연중에 갖고 있던 공산주의 세력의 팽창에 대한 두려움은 이 발언을 통해 광기로 치닫게 되었다.

마구잡이식 공산주의자 색출작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 졌고, 이 집단적 광기의 소용돌이는 그럴듯한 명분을 얻은 채 마녀사냥을 해나갔으며, 상당수의 지식인들이 누명을 썼다. 이 가운데는 유명한 영화인 찰리 채플린도 포함되었다. (메카시즘에 대한 또다른 영화로 조지 클루니 감독의 [굿 나잇, 앤 굿 럭]을 추천한다)

바로 [우주의 침입자]에서의 씨앗은 "메카시즘"이며, 이로인해 감염되는 마을 사람들은 '메카시즘'에 동요한 미국인들, 그리고 감염을 피해 달아나는 소수의 인간들은 집단적 극우주의에 의해 고발당하는 수많은 무고한 지식인들을 상징했다.

ⓒ Walter Wanger Productions/Artisan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물론 이같은 영화의 해석과는 반대로 [우주의 침입자]는 냉전시대 급속도로 번져가던 공산주의 그 자체에 대한 공포감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는 시각도 있다. 씨앗으로 인해 번져가는 복제인간은 바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의미하며, (기실 공산주의는 다분히 전체주의적인 사상이 주를 이루므로 이같은 해석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민주 진영의 자유주의자들을 묘사한다는 해석이다.

어쨌거나 이같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당시에 B급 영화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SF영화에 접목시킨 돈 시겔의 안목은 탁월했다. 굳이 이 영화속에서 메카시즘의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적과 아군을 구분하기 힘든 극도의 혼돈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들의 사투는 오락적 재미로 볼때도 충분한 서스펜스와 스릴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결국 [우주의 칩입자]들에서 쓰인 여러 가지 재료들은 후에 제작된 '신체 강탈자들' 시리즈 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에이리언'류의 영화들에서 쓰여졌으며, 인용되었다.

다만 [우주의 침입자]에는 몇가지 오류가 눈에 띄는데, 씨앗에서 복제된 인간이 완전체가 되었을 때 오리지널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며, 잠깐 잠들었다가 눈을 뜬 오리지널이 그 자체로 복제인간의 성격을 띄게 된다는 앞뒤 논리가 안맞는 설정 등이다. 이같은 오류는 리메이크를 통해 점차 보완되어 '신체 강탈자들' 영화의 특징을 완성시켜 나가게 된다.

돈 시겔의 [우주의 침입자]는 화끈한 결말을 내지 않는다. 다만 주인공의 말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희망적인 암시와 함께 영화는 끝이 난다. 감염된 숙주들을 어떻게 처리하는가가 이 영화의 관건이 아니라 감염의 과정과 전체에서 벗어난 소수의 무력함, 그들이 느끼는 공포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결말은 4편의 '신체 강탈자들' 시리즈가 모두 다르므로 각각의 엔딩을 비교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P.S: 이 작품에는 훗날 '폭력의 피카소'로 명성을 날리는 셈 페킨파 감독이 찰리 역으로 출연한다.


* [우주의 침입자]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Walter Wanger Productions/Artisan Home Entertainm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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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노몰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보든 보수든 어차피 양극단은 똑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구성원이 획일화되는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은 언급하신 것처럼 양쪽을 다 은유하고 있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정작 돈 시겔이 그것을 의도했는지는 그만이 알겠습니다만.

    작품의 재해석과 파생은 결국 수용자의 몫이겠지만, 그런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주변인들을 믿지 못한다는 영화의 설정은 오락적으로도 굉장히 뛰어난 효과를 준다고 봅니다.

    저는 70년대 리메이크 작인 필립 카우프만의 영화를 어렸을 때 보았는데, 아직도 그 때의 충격이 생생해요. 캄캄한 방에서 혼자 주말의 명화로 봤던 것 같은데, 자신이 알고 있던 사람들을 점점 믿지 못하게 상황이 바뀔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죠. 지금이야 너무 흔할지도 모르지만 순간의 반전이 일어나는 마지막 엔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다른 얘기지만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때 이후로 신체를 강탈당하는, 혹은 주변인을 믿지 못하는 상황의 영화들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그중 최고작은 단연 카펜터의 "the thing"!!

    2007.09.18 19:49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말하려는 바를 정확히 짚으셨군요. 역시 제노몰프님의 문장력이 저보다 낫습니다^^ 오늘 글 하나 쓰는데 왜 이리 버벅이던지, 계속 겉돌기만 하고...

      필립 카우프만의 리메이크작은 다음에 소개할 예정입니다.^^

      2007.09.18 23:33 신고
  2. 은사장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정작 공산당사냥을 주창했던 맥카시는 말년이 불운했고 동료 닉슨 의원이 이름을 얻어 대통령까지 했습니다. 영화도 풍자하고 있지만 참 암울했던 시기 같습니다.

    2007.09.19 14:38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문제는 아직도 미국인들의 이러한 집단적 폐쇄성과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과잉보호적 사고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거지요. 시대는 흘렀지만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언급되었듯이 타인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은 미국인(특히 백인계)들의 특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07.09.19 14: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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