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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리언 3]는 어떻게 표류했나 -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과 진짜 에이리언 3 이야기 (4부)

페니웨이™ 2025. 12. 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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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 사이에서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원래 [에이리언 3]로 만들어질 뻔 한 진짜’ [에이리언 3]의 각본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수년 동안 존재했지만 한 프레임도 영상화 되지 않았고 버려진 시나리오 초안으로만 존재하는 [에이리언 3]. 바로 사이버펑크 문학의 거장 윌리엄 깁슨이 1987년에 쓴 [에이리언 3]의 초기 각본이었지요.

 

일반적으로 프로덕션 과정에서 폐기된 각본들은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 각본은 팬들 사이에서 유출본이 암암리에 돌아다니게 되었고 이내 컬트적 지지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닐 브롬캄프의 [에이리언]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커버넌트]가 어정쩡한 반응을 얻은 이후 다크호스 코믹스는 윌리엄 깁슨의 제작되지 않은 각본을 원작으로 한 5부작 그래픽노블로 다시 각색해 출간합니다.

 

ⓒ Dark Horse Comics. All Rights Reserved.

△   [에이리언 3: 제작되지 않은 각본] 그래픽노블. 조니 크리스마스가 각색과 일러스트를 담당한 이 작품은 다크호스에서 출시되어 제작되지 않은 깁슨의 [에이리언 3]를 시각적으로 보여준 첫 작품이다.

 

뒤이어 작가이자 감독인 더크 매그스는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에이리언 2]의 직계 후속작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선보일 계획을 세웁니다. 물론 이를 영화화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부담을 최소화 하고, 대신 확실한 팬서비스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을 시작했지요. 에이리언 40주년인 2019 5 30, [에이리언 III]라는 제목의 (정식 시리즈의 영문 표기는 [Alien³]로 일반적인 시퀄의 표기법과는 다르다) 오디오 드라마가 공개됩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에이리언 III]의 스토리는 이러합니다.

 

LV-426 행성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싣고 있던 술라코 호는 UPP(Union of Progressive Peoples: 진보민중연합)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우주 공간에서 표류하게 됩니다. UPP 소속의 특수요원들은 술라코 선내에 진입, 냉동수면 상태에 있던 비숍의 절단된 허리 부분에 숨겨진 페이스허거를 발견합니다. 페이스허거의 공격으로 UPP 요원 한 명이 사망하지만 이들은 페이스허거를 우주로 발사하고 이 과정에서 두뇌가 손상된 비숍을 데려가 추가 연구를 진행합니다.

 

한편 술라코는 계속 우주를 표류하다가 쇼핑타운 겸 우주정거장인 앵커포인트에 도착합니다. 사실 이 앵커포인트는 웨이랜드-유타니가 운영하는 유전공학 연구 시절이었지요. 웨이랜드 소속의 과학자들과 해병대원들은 술라코 호의 선 내에서 숨어있던 제노모프와 대치, 이 과정에서 힉스와 리플리, 뉴트는 구조되지만 수면 중에던 리플리는 냉동수면 기기의 손상으로 코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 Dark Horse Comics. All Rights Reserved.

한편 술라코 선채 내에서 에이리언에 감염된 조직을 발견한 웨이랜드의 고위 연구진은 이 조직을 기반으로 에이리언을 유전적 병기로 재설계 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에이리언의 DNA를 이용한 생물학적 무기를 생산하려는 전략이었지요. 그동안 UPP는 자체 연구를 진행하며 비숍을 수리합니다.

 

기운을 차린 힉스는 앵커포인트의 기술자들과 친분을 가지게 되고, 이를 통해 웨일랜드와 UPP가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에이리언이 매우 위험한 존재이며 연구를 계속하다간 앵커포인트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는 경고도 하게 되지요. 웨일랜드의 수상한 움직임에 위험을 감지한 힉스는 뉴트를 지구로 안전하게 도피시킵니다.

 

힉스의 경고는 현실이 되어 연구를 감행하던 웨이랜드 연구소에서 마침내 대형 사고가 발생하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전통적으로 알에서 부화한 페이스허거가 숙주에게 달라붙는 루트가 아닌 감염의 형태로 숙주를 즉각적으로 변형시키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지요. 에이리언이 단순한 생물이 아니라 생체=유전적 감염체란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겁니다.

 

에이리언에 감염된 연구원들은 빠르게 생물학적 변이를 일으키면서 기존의 에이리언과 완전히 다른 형태의 괴생명체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앵커포인트는 이내 아비규환 상태에 들어가고 순식간에 붕괴될 위기에 처합니다. 바이오 하자드와 같은 초대형 감염 재난이 발발한 것이지요.

 

 

이제 힉스는 앵커포인트의 생존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한 편, 그 와중에 수리를 끝마친 비숍과 재회합니다. 그리고 코마 상태에 빠져 있던 리플리도 서서히 의식을 회복하지요. (물론 큰 활약을 하지는 못합니다)

 

앵커포인트의 중심에서 에이리언의 변종 유기체가 대량으로 생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힉스는 중앙 반응로의 과부하를 이끌어내 이를 폭발시켜서 에이리언 변종을 괴멸시킬 계획을 추진합니다. 이 작전은 성공하여 앵커포인트는 완전히 붕괴, 감염체와 변이 생명체 모두 소멸하게 됩니다.

 

탈출 셔틀로 살아남은 힉스 일행은 UPP측의 선박과 합류,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손을 잡게 되면서 긴장 관계에서 벗어납니다. 리플리도 의식을 회복해 힉스와 대화를 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지만, 에이리언의 전염력이 우주로 퍼졌는지, 완전히 소멸되었는지에 대한 결론은 내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이렇듯 깁슨의 각본에 토대를 둔 [에이리언 III]는 앞서 언급했듯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 2]를 그대로 계승하는 직계 후속작의 성격을 띕니다. 다만, 여기에서도 장르적 변주가 이뤄졌는데 리들리 스콧의 1편이 코즈믹호러 풍의 음산한 SF 공포물이었다면 카메론의 2편은 액션 블록버스터에 가까웠던 것처럼 깁슨의 3편은 다분히 [에이리언 2]의 세계관을 확장한 SF 정치 스릴러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사실은 [에이리언 2]의 주역이었던 힉스 역의 마이클 빈과 비숍 역의 렌스 헨릭슨이 다시 돌아왔다는 점입니다. 특히나 랜스 헨릭슨은 자신이 내 인생의 정점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면서 이번 작품에 참여한 것을 매우 기뻐했다고 하지요. 아마 슬럼프 이후 이젠 잊혀진 배우가 된 마이클 빈도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 20th. Century Fox. All rights Reserved.

[에이리언 III]는 오디오 드라마로 제작이 된 만큼, 깁슨의 각본에 담겨져 있던 대형 스케일의 액션 장면을 제거한 톤 다운 버전이지만 귀로 청취하는 드라마의 특성에 맞게 시네마틱한 공간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긴장감과 속도감을 잘 유지하는 방향으로 연출하였습니다. 영화화 되지 못한 원안을 이토록 완성도 높은 드라마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팬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입니다.

 

특히나 '에이리언=감염체'라는 새로운 설정은 무척이나 참신한데, 이 아이디어는 외전격인 게임 [에이리언: 콜로니얼 마린스]와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에도 사용되었지요. 그 밖에 상대적으로 무기가 부족한 환경이나 동물 숙주로 인해 탄생한 제노모프와 같은 콘셉트는 데이빗 핀처의 [에이리언 3]에서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 20th. Century Fox / SEGA. All rights Reserved.

아직도 일부 팬들은 [에이리언 2] 이후의 연속성을 중요시하는 기획이었던 닐 브롬캄프의 [에이리언] 프로젝트가 좌초된 것을 아쉬워 합니다. 그만큼 힉스와 비숍, 뉴트의 생존은 전작 [에이리언 2]의 중요한 지점이었고, 이를 무시했던 3편의 결과가 기대 이하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한 것이겠지요. 이제 [에이리언 3]의 리부트 버전 혹은 왓이프 버전이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러한 아쉬움은 [에이리언 III]로 어느 정도 달래 볼 수 있을 겁니다.

 

에필로그

개인적으로 이렇게 긴 장문의 리뷰를 쓴 건 lennono님이 기획했던 [외계에서 온 우뢰매] 블루레이 리뷰를 비공식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썼던 이후로 거의 2년 만인 거 같습니다. 사실 영화 리뷰의 메인 플랫폼이 유투브와 같은 영상 미디어로 넘어간지 꽤 되었던데다  대부분의 영화 관련 사이트에서도 더 이상은 예전과 같은 긴 문장의 글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진 탓에 이런 류의 글은 현재의 트렌드와는 맞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하지만 그 옛날 김정대 님을 비롯한 강호의 고수들이 득실거리던 시절의 영화 컬럼들을 생각하면, 요즘은 너무 단편적인 정보 위주의 콘텐츠만이 소비되는 듯 하여 조금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독자의 취향과 글쓰기의 지형도 변화해가는 것이겠지만요. 문득 그 시절이 그리워 이번 [에이리언 3] 시리즈를 쓰게 되었습니다.

왜 [에이리언 3]인가를 묻는다면, 순전히 제 즉흥적인 결정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에이리언 :어스]의 공개 직후부터 조금씩 구상하고 있었고요,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에이리언 III]의 존재를 소개하려다가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아예 [에이리언 3]의 제작비화를 소개하는 콘텐츠로 빠져 버려서 한 2부 정도에 나눠서 쓸 글을 4부로 연장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적당한 선에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으면 한 8부작까지 쓸 뻔 했습니다)

이젠 저도 나이가 들어서 책상 앞에 오래 앉아 글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막상 쓰고 보니 또 나름의 재미가 올라오네요. 또 필 받으면 글을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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