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깁슨의 각본이 진행될 당시 감독으로 섭외 중이던 리들리 스콧은 [블랙 레인], [델마와 루이스] 등으로 도저히 시간을 내지 못해 결국 합류하지 못하는데, 그를 대신할 사람으로서 [나이트 메어 4]로 헐리우드의 주목을 받고 있던 레니 할린 감독이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영화의 방향성을 크게 두 가지로 잡고 싶어했는데 하나는 에이리언의 모성으로 향하는 시나리오, 또 하나는 에이리언이 지구로 침공하는 시나리오를 원했지요.

△ 레니 할린이 구상했던 시나리오 중 하나는 에이리언이 살았던 행성이 어떤 곳이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 할린은 에이리언이 사악한 피조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외계 행성을 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 프로젝트는 폐기되었고, 에이리언의 기원에 대한 프로젝트는 먼 훗날 리들리 스콧 본인이 [프로메테우스] 연작을 통해 어느 정도 실현하였다. 물론 레니 할린이 구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지만.
제작진은 깁슨에게 할린과 함께 각본을 수정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이미 이 시기는 깁슨의 두 번째 수정 초안도 나온 상태였습니다) 깁슨은 제작 지연 및 제작진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하면서 공식적으로 [에이리언 3]에서 하차합니다. 이에 레니 할린은 [죽음의 키스 Near Dark]의 각본을 썼던 에릭 레드에게 일을 맡깁니다. 에릭 레드는 나름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공포물에서 재능을 드러낸 작가였지만, 불행히도 그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제작사에서 초안을 완성해 달라고 요구한 기간은 불과 두 달 정도 였습니다.
레드의 각본에는 시작부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리플리가 주인공이 아니어야 한다"는 사실만을 전달받았기 때문에 힉스와 비숍, 뉴트, 리플리 까지 아무런 개연성 없이 배제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의 각본에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종류의 에이리언이 등장하며 전편의 생존자들 전원이 사망한 것을 해병대 특수부대가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후 영화는 미국의 소도시 캔자스를 재현한 군사 식민지 노스 스타로 무대를 옮기고, 여기서 마을 사람들과 에이리언 간의 전투가 벌어진다….는 식으로 전개되지요.

△ "안타깝지만 유포된 [에이리언 3]의 대본은 제 대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쓰레기 조각"은 몇 주 동안 스튜디오와 히스테리컬한 회의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었고, 그 결과는 완전히 끔찍했죠" - 2001년 '애로우 인 더 헤드' 인터뷰에서 에릭 레드가 실제로 한 말.
간략한 줄거리에서도 느껴지듯이 이 각본은 기존 시리즈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에 대놓고 거절당했고,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은 내가 쓴 대본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로 집필 과정에서 간섭도 많았고 시간에 쫓긴 채 성급하게 내 놓은 결과물임을 인정했습니다. 훗날 레드는 “내가 5주간 참여했던 그 기간의 가장 큰 문제는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토로합니다.
에릭 레드의 뒤를 이어 그 다음으로 섭외된 작가는 오늘날 [리딕] 시리즈로 잘 알려진 데이빗 토히 였는데요, 토히의 경우는 완전히 각본을 새로 쓰는 것이 아닌, 윌리엄 깁슨의 각본을 토대로 재구성하라는 임무를 받게 됩니다. 토히는 깁슨의 각본에서 배경이 되는 우주정거장 앵커포인트(Anchorpoint) 대신 불법 실험에 사용되던 감옥 행성으로 설정을 변경했지만 레니 할린은 이 접근 방식이 이전 작품과 너무 비슷하다고 느낍니다.

문제는 벌써 세 명의 각본가를 거치면서 프로젝트가 지체되는 바람에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폭스 측이 레니 할린을 [록큰롤 탐정 포드 The Adventures of Ford Fairlane]의 감독으로 보내 버리고, 그 사이에 토히의 각본은 그 당시 20세기 폭스의 사장이었던 조 로스에게 전달되면서부터 제대로 꼬이기 시작합니다. 로스는 리플리의 신봉자였으며 [에이리언] 시리즈에서 오직 리플리만이 이야기를 이끌어갈 중심 인물이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리플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려 했던 당초의 계획과는 달리, 다시금 극의 중심에 서길 바랐던 로스의 지시로 인해 토히는 수정 각본에서 리플리를 중심으로 한 내용으로 열심히 뜯어 고치게 됩니다. 훗날 [에이리언 3]가 그토록 어색한 형태로 완성되었던 건 애초에 리플리의 비중을 최대한 줄이려던 브랜디와인 측의 의도에서 출발해 다시 리플리를 주인공으로 세우려던 폭스 측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생긴 불협화음의 결과물이었던 셈입니다.
한편 월터 힐은 [중세에서 온 사람들 Navigator: A Medieval Odyssey] 시사회를 계기로 알게 된 호주출신 감독인 빈센트 워드를 레니 할린의 후임으로 점 찍게 됩니다. 처음에 프랜차이즈의 속편 따위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워드는 삼고초려 후에야 프로젝트를 수락하는데, 그는 애초부터 토히의 각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대신 리플리의 탈출 포드가 수도원 같은 위성에 불시착하는 내용을 담은 아이디어를 떠올립니다.

LA행 비행기 안에서 이 아이디어를 구상한 워드는 경영진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폭스 측의 승인을 받게 되었고 정식으로 [에이리언 3]의 감독으로 발탁됩니다. 이어서 토히의 각본을 뒤엎고 새로 이야기를 쓰게 될 인물로 월터 힐이 감독한 [48시간 2]의 각본을 썼던 존 파사노를 영입하지요. 이러한 일은 각본을 쓰던 데이빗 토히의 양해 없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토히는 폭스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한편 프로젝트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됩니다.
네 번째 각본가로 합류한 존 파사노는 워드와 함께 나무로 만들어진 행성에 살고 있는 수도승들이 리플리의 탈출 포드를 발견하는 내용의 각본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이 각본에서는 남자들만 살고 있는 공동체에 여성인 리플리와 에이리언이 들어오면서 이 상황을 일종의 종교적 시련으로 해석하려는 신도들의 흔들리는 믿음으로 묘사합니다.

사실상 파사노와 워드가 함께 쓴 각본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데이빗 핀처의 [에이리언 3]와도 상당히 유사한 틀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자들만 살고 있는 행성이라든지, 다분히 종교적인 색체, 리플리의 희생을 담고 있는 결말 부분까지 전체적인 기틀은 이 각본에 담겨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요.

그러나 빈센트 워드와 존 파사노의 각본에 대한 제작진의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브랜디와인 측은 나무로 만들어진 행성이라는 논리적으로 말이 안되는 배경 설정에 대해 태클을 걸었고, 폭스 측은 이 각본이 상업용 블록버스터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예술적인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에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합니다. 이 과정에서 행성을 광석 정제소 바꾸고 수도승을 죄수로 바꾸는 아이디어도 나오게 되었습니다만, 워드는 이 수정안을 거부했고 결국 감독직에서 하차합니다. 화창한 미래를 꿈꾸며 시작했던 [에이리언 3] 프로젝트에 점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된 것이지요.
- 3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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