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슈퍼 로봇 열전] 두 권의 책을 내면서, 가장 간절히 원했던 바 중 하나는 사멸 직전의 콘텐츠를 무슨 수를 써서든 보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급적이면 더 많은 작품들을 발굴하고 재상품화시켜서 세상에 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쪽은 영상자료원에서 나름의 복원 사업을 통해 [홍길동], [호피와 차돌바위] 같은 작품들을 DVD화 시켰고, 이보다 더 좋은 해상도의 소스를 일반에 공개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만화책의 경우 이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시범사업으로 많은 고전 만화들이 복간되었지만 갈 길은 멀다. 수요는 있지만 사업성과는 별개의 문제고, 복간의 주체가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 곳이어서는 백년이 걸려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복간이라는 건 여러모로 힘든 법이다.
제작년 말 경, 이 같은 고민을 하다가 두 편의 작품에 대해 현실성 있는 복간에 대해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나 같은 일반인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거 자체가 뜬금없고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긴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논의라도 이루어지는 법이니까. 그 때 기획했던 한 편은 지금 시점에서 밝히기 곤란하기에 훗날에 기회가 되면 말하기로 하고, 또 다른 한편이 바로 이정문 화백의 [철인 캉타우]였다.
복간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복간에 참여한 정예멤버들의 의지와 순수성 만큼은 끝까지 유지되었다. 그건 일반적으로 이런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데, 특히 나처럼 직장을 가진 사람이 부수적으로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온전히 복간에 힘을 쏟을 수가 없어서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 해줘야 하고 그러한 상호간의 화학작용이 무보수(!)로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불화 없이 끝까지 가기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또 사람의 생각이란 다 다르기 마련이고, 내가 원했던 부분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또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결국엔 주도권의 다툼이나 책임 전가의 형태로 불거지면 대게 그 그룹의 연대는 깨져버리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철인 캉타우]의 복간팀에서는 그러한 문제들이 거의, 아니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힘든 시기를 맞이했던 나로서는 [철인 캉타우]의 복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들을 복간 멤버들과 함께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열심히 차려놓은 다 된 밥상에 밥숟가락 하나 얹은 셈이라 지금까지도 그분들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할 따름이다.
엊그제 1년 여의 여정 끝에 결실을 맺은 [철인 캉타우]의 애장판 세트가 도착했다. [철인 캉타우] 애장판은 크게 두 개의 판매 루트를 선택했는데, 하나는 클로버문고의향수 카페를 이용한 공동구매였고, 둘째는 텀블벅을 통한 클라우드 펀딩이었다.
패키지를 받고 나니 역시나 클라스가 다른 복간본임을 단박에 느끼게 된다. 구성품을 보자. 12종의 엽서세트, 빈티지 노트, A4사이즈의 팜플렛, 그리고 본 책 2권이다. 가격은 모두 다 해서 45,000원.
가장 중요한 본 책은 하드커버 양장본으로 나왔다. 겉표지와 속표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겉표지는 77년 당시 <소년생활> 별책으로 제공되었던 표지를 사용하였고, 하드커버의 본 표지는 오리지널 클로버문고의 표지를 재현했다. 단순히 비주얼적으로만 아니라 ‘매직 패브릭’이라는 특수 재질의 하드 코팅지를 사용해 질감 자체가 예전 클로버문고의 비닐 느낌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실로 꼼꼼하게 감성적인 부분까지 감안한 흔적이 돋보인다.
바다출판사 복간 당시의 어설픈 2도 인쇄를 다시 원래의 단색으로 복원시켰고, ‘마징가’로 변경되었던 부분도 원래대로 ‘마징카’로 복구했다. 이는 이번 애장판의 지향점이 바다출판사 판본이 아닌 클로버문고 판본으로의 회귀라는 증거다.
각 권의 마지막에는 [철인 캉타우]의 해제가 실려 있는데, 1권에는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사]의 저자이시고 이번 복간본에서 자문위원으로 열심히 일해주신 허인욱 교수님의 글이 실려 있고, 2권에는 부족하지만 내가 쓴 해제가 실려 있다.
스페셜 굿즈에 대해서는 굳이 별 얘기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마니아들에게 있어서는 만족스런 선물세트다. 특히 이정문 화백께서 손수 작업하신 캉타우 명장면들을 담은 엽서와 포스터는 어디가서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가치를 지니며, 컬러 팜플렛은 옛날 추억을 소환하는 소중한 자료다. 예상은 했지만 받아보고 나니 감동의 물결이 두 배로 몰려온다.
언제 다음 작품이 복간될지는 알 수 없다. 복간에 참여했던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고, [철인 캉타우]의 경험은 다음 작업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다. 부디 이러한 값진 경험이 누군가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보다 생산적인 복원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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