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추리물이 봇물 터지듯 출간러쉬를 이루고 있는데, 제대로 옥석을 가리기란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마쓰모토 세이초(松本淸張)의 작품들은 트릭의 간파와 알리바이 파괴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중에서도 [점과 선](点と線)은 세이초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서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의 선구작으로 불린다. 1955년 후반부터 일본은 진무천황이래 최대의 경기호황기에 돌입한다. 이 호경기가 일본 경제의 큰 순풍이 되어, 이른바 '삼종의 신기' (세탁기,냉장고,텔레비전)라는 말로 표현되는 가전기기의 전성시대가 열리는 등 경제대국으로서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이와 동시에 조선 비리사건, 도쿄도청 비리사건, 매춘 비리사건 등 일련의 비리사건들이 연쇄적으로 터져나온 것도 이 시기다. 특히나 조선 비리사건은 당시 법무장관이 지휘권 발동을 실시해 뇌물수수 용의자인 국회의원의 체포연기를 지시하는 과정에서 교통과 과장의 직속 보좌관이 자살하는 대형 정치 스캔들로 일본 사회를 크게 뒤흔들었다.
추리소설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트릭의 간파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반전의 쾌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미 범인을 드러내놓고 시작하는 도서추리방식의 소설이 만만찮은 인기를 얻는걸 보면 역시나 미스테리의 핵심은 퍼즐을 푸는 과정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점과 선]은 바로 이러한 일본사회의 격변기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는 작품이다. 후쿠오카의 해변가에서 발견된 남녀의 사체. 누가 보더라도 연인의 동반자살처럼 보이는 이 사건에 노장 형사 토리카이가 한가지 의혹을 품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커다란 도화지 위의 작은 점처럼 보잘 것 없는 단서를 추적해 그 점들을 하나한 연결해 나가면서 결국 사전의 전말이라는 길다란 선을 잇는 이 작품은 완벽에 가까운 알리바이를 무너뜨리는 형사의 집념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범인의 윤곽은 처음부터 드러나지만 철벽같은 알리바이를 대면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좌절에 가까운 느낌을 경험한다. 하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은 몇 번이고 도전한다. 단 5분의 시간마저도 가볍게 취급하지 않는 치밀한 조사과정을 통해 발견된 바늘구멍같은 틈을 파고들며 전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보노라면 무릎을 절로 탁치게 될 정도다. 이에 더해 본 사건을 수사하는 토리카이와 사건의 이면에 놓인 정치계 비리사건을 수사중인 본청의 미하라 경위가 릴레이식 수사를 펼치는 것도 [점과 선]의 독특한 전개방식이다.
토리카이 형사와 미하라 경위. 두 캐릭터는 훗날 [시간의 습속](時間の習俗)이란 작품에서 다시 한번 조우한다.
익숙하지 않은 일본의 철도노선과 지명 등 국내 독자들에게는 가뜩이나 복잡한 트릭에 더해 추가적으로 외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내러티브의 견고함만큼은 그 어떤 추리소설과 견주어도 뒤쳐지지지 않는다. 아울러 추리의 묘미 외에도 사회적 현실에 기인한 동기를 중시하는 점은 이 작품의 왜 '사회파 추리소설'의 대표작이 되었는지를 깨닫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점과 선]이 단순한 추리소설 이상의 문학적 가치를 지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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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사이트: 아사히 TV [점과 선]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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