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고영훈 작가(닉네임 Nasty Cat)의 신작 [장마]는 그동안 한국만화계에서 비교적 취약한 장르로 분류되어 왔던 스릴러물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최근들어 웹툰의 성장세가 본격화되면서 유독 미스테리/스릴러물이 두드러진 강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인데,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비롯 벌써 4시즌이나 계속된 강풀의 '미스테리 심리 썰렁물' 등 다양한 소재와 한국적 정서를 접목시켜 일본만화 부럽지 않은 탄탄한 내러티브를 가진 작품들이 대거 쏟아져나와 뿌듯하기까지 하다.
[장마]의 이야기는 경상도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두 건의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누구 집에 밥숟갈이 몇 개 있는지도 다 알만큼 뻔한 동네에서 노인들만을 노린 살인사건이라 마을은 큰 충격에 휩싸인다. 장마가 한창인 궂은 날씨에 비만 오면 벌어지는 살인사건. 게다가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유력한 용의자의 특징은 곡괭이를 질질 끌고 다닐만큼 작은키다. 따라서 마을엔 범인이 아이일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다.
ⓒ Nasty Cat/ Daum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마을에는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아이들이 여럿있고, 키가 어린애처럼 작은 어른도 있으며, 사건현장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광녀(狂女)도 살고 있다. 용의선상에 오를 만한 이들은 있으나 동기가 없다. 키작은 아이가 곡괭이를 끌고 가는걸 봤다는 구멍가게 할머니의 증언외에는 그 어떤 증거도 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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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러티브의 주축을 이루는 두 인물은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장동준과 동네 백수인 그의 동생 동석이다. 살인사건과는 별개로 이 형제의 집안은 하나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 1년전 아버지가 집을 나간후로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조부 때문에 집을 나간거라고 생각하는 동석은 할아버지와의 관계가 험악하고, 조부는 아들의 실종이 최근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다. 이와 함께 다른 마을사람들의 개인사도 내러티브 속에 촘촘히 자리잡아 중요한 복선을 띄며 의혹을 증폭시킨다.
ⓒ Nasty Cat/ Daum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얼핏 영화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의 스산함이 느껴지는 [장마]는 이처럼 잘 짜여진 각본이 독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만 더욱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은 작가가 시도하는 독특한 연출의 방향에 있다. [장마]는 마치 실제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작화나 컷의 분할 및 배치에 있어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웹툰의 특성을 십분 발휘해 BGM, 즉 작품의 분위기와 절묘한 매치를 이루는 음악과 빗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온다는 점도 [장마]의 신선한 시도다.
ⓒ Nasty Cat/ Daum Communications. All rights reserved.
스릴러 만화의 거장 우라사와 나오키의 작품이 2% 부족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항상 급조한듯한 엔딩에 있듯이, 적당히 얼버무렸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인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이후의 전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지만 이야기의 흡입력이 워낙 뛰어난데다 캐릭터의 표현이 꼼꼼한 탓에 잘 만하면 걸작 웹툰으로서 기억될 가능성이 농후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장마]는 스릴러물 본연의 묘미, 비주얼의 잔인함이 아니라 심리적인 공포로 긴장감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장마]의 영화적 연출을 경험하고 싶다면 웹툰의 연재를 사수하기 바란다. 단행권으로 출간될 것이 확실하긴 해도, [장마]의 진짜 묘미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만화에서의 BGM 효과라는 색다른 시도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웹툰의 성장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출판만화의 침체를 넘어 국산만화의 대안으로 떠오른 웹툰시장은 바야흐로 두 번째 도약을 맞이한 듯 하다.
P.S: 유독 독자와의 소통에 적극적인 작가로부터의 전언. "[장마]를 보실때 만큼은 [트레이스]를 잊어주세요"
* [장마]의 모든 일러스트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Nasty Cat/ Daum Communications.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추후 정식 발매본을 애용하거나 해당 웹사이트에서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본 리뷰에 사용된 일러스트는 고영훈 작가님의 동의를 구해 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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