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을 따라잡지 못한 드라마
[와호장룡], [헐크],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색, 계]…. 서로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은 이 작품들이 모두 한 감독에게서 나왔다는 점은 솔직히 말해 경이롭다. [센스, 센서빌리티]로 영어권 세계로 들어간 이안 감독은 장르와 작품의 규모, 국적을 막론하고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활약을 보여주었다.
배타적인 성향의 헐리우드 바닥에서 동양인 감독이 이만큼의 성과를 올린 건 가히 기념비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텐데, 그런 이안 감독이 [헐크] 이후 다시금 블록버스터급 오락영화로 돌아 온 작품이 바로 [제미니맨]이다.
고인이 된 커티스 핸슨, 토니 스콧 같은 쟁쟁한 감독들이 90년대부터 눈독을 들였던 이 작품은 은퇴한 DIA 최정예 요원이 자신의 마지막 임무였던 암살 작전에 특정 집단의 이익이 개입되어 있음을 감지하고 나서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내용으로서 이제는 헐리우드의 흔한 클리셰가 되어 버린 복제인간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작품이 처음 기획될 당시만 해도 CG의 기술력이 온전히 발현되지 않아 연기된 케이스다.
[제미니맨]의 딜레마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제미니맨] 프로젝트가 적당한 시기를 기다릴 동안, 이미 헐리우드에서는 [아일랜드], [6번째날], [더 문]과 같은 유수의 작품들에서 이 복제인간 소재를 써 먹었다. 영화의 셀링 포인트로 삼았던 윌 스미스 vs. 윌 스미스 컨셉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는 얘기다.
사실 동일한 배우가 한 화면에서 1인 2역을 하는 건 굳이 최첨단 CG가 아니더라도 촬영 트릭에 의해 구현되었던 고전적인 영역이다. 당장 1967년 [더블 맨]을 보더라도 두 명의 율 브린너가 한 화면에 잡히는 장면이 별로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처럼 관객들이 느낄 만한 진부함을 상쇄할 요소들이 있다면 이안 감독이라는 걸출한 장인의 연출력과 그가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자신 있게 활용했던 기술적인 성과, 그리고 윌 스미스의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연기력 정도가 되겠다.
아쉽지만 [제미니맨]은 영화가 지닌 여러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올리는 데는 실패한 듯이 보인다.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아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한 묘사 등 이안 감독이 기존 작품들을 통해 추구해 온 테마는 표면적으로만 보여질 뿐 강도 높은 액션에 녹아 들지는 못한다. 몇몇 신들의 미장센과 액션 연출에서 제법 쓸만한 장면이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헐크]에서 처럼 다소 정적이고 루즈한 흐름에 탄력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반면 킬링타임용 영화로는 즐길만한 요소들이 더러 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오토바이 추격 시퀀스는 스피디한 연출과 기발한 액션 안무가 돋보이는 명장면이다. 콜롬비아의 항구도시 카르타헤나의 풍광을 담아내며 거리를 질주하는 이 장면만으로도 이안 감독이 나름 액션에 일가견이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차라리 드라마 부분을 과감히 쳐 내고 2시간을 이런 액션으로만 우직하게 채워 넣었더라면 장르적 완성도가 훨씬 더 좋아졌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 내적인 면보다 120fps의 촬영 기법이나 디에이징과 같은 헐리우드 최첨단 기술의 테스트 버전 같이 되어 버려 내심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블루레이 퀄리티
전술했듯이 [제미니맨]은 이안 감독의 전작인 [빌리 린의 롱 하프타임 워크]에 이어 다시 한 번 초당 120 프레임 촬영에 도전한 영화다. 사실 어떤 면으로는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 더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화는 120fps의 활용도에 목표를 둔 장면들이 눈에 들어온다. 블루레이는 아리알렉사 SXT M와 팬텀플렉스 4K 카메라로 촬영해 4K DI한 마스터 소스를 사용해 24fps로 다운 트랜스퍼 시켰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원래 감독이 의도한 화면을 맛보기 위해서는 4K/60fps 돌비 비전으로 수록된 UHD로 가는 게 맞는 선택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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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나친 예단은 금물. [제미니맨] 블루레이는 원본 소스의 버프를 제대로 받아서인지 블루레이 매체의 한계까지 끌어올린 해상력과 탁월한 색감을 표현하고 있다. 디테일은 분명하고 섬세하다. 50대 윌 스미스의 희끗희끗한 모발과 잔주름은 확연하게 세월의 흐름을 인지시키며, 얼굴의 윤곽과 상처의 질감까지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콜롬비아 로케이션 장면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인상적인 색상과 암부 장면에서의 블랙 레벨 역시 최적화 된 결과물을 보여준다. 평균 비트레이트가 약 27Mbps로 매우 준수한 수치.
다만 UHD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디에이징 기술을 사용한 20대 윌 스미스의 매끈한 피부 톤에서 드러난다. 4K 60fps에서 젊은 윌 스미스의 표정 변화는 세부적인 얼굴 근육과 피부 주름 등에 의해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반면, 블루레이 에서는 그러한 특징들이 미묘하게 날아가면서 이른바 ‘언캐니 밸리’를 느끼게 한다. 작지만 큰 차이를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라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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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D와 동일한 포맷이 수록된 [제미니맨] 블루레이의 사운드는 강렬하고 매력적인 돌비 애트모스의 향연이다. 각 채널에 분배된 서라운드 효과는 정확한 사물의 위치 정보를 제공하며, 총성과 타격음이 혼합된 액션 시퀀스 내내 고품질의 현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마지막 액션 장면의 로켓 피격 장면이나 이어지는 머신건 난사 장면에서의 사운드는 집중적이고 디테일한 움직임을 포착하다가 이윽고 무대 전체에 확산되는 폭발적인 음향효과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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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처
비교적 무난하면서 평균적인 수준의 부가영상을 수록했다. 먼저 ‘Alternate Opening’은 최종 편집에서 사용되지 않은 또 다른 오프닝 장면으로 중년의 윌 스미스가 암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과 클론인 윌 스미스가 비오는 밤에 또다른 암살을 수행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다음으로는 부다페스트에서 촬영된 삭제장면으로, 유리와 브로건이 조우하는 장면이다. 실제 영화에 삽입된 장면은 10개월 뒤 뉴욕에서 바뀐 대본으로 유리 역의 배우가 교체되어 재촬영되었다.
‘The Future Is Now’는 영화 속 특수효과에 대해 다루는 부가영상이다. 본 작품에서 특히 관심있어 할 부분은 바로 윌 스미스의 1인 2역일텐데, 이 작품에서는 게다가 한 명은 원래 나이로, 다른 한 명은 젊은 모습으로 나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둘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 장면의 경우 모션 캡처 단계에서 윌 스미스가 주니어 역을 하게 되고, 실제 영상에서는 원래 윌 스미스가 연기한 화면 위에 주니어를 연기한 윌 스미스 부분을 제거하고 100% CG로 만들어 낸 캐릭터를 입혀 장면을 만들어 낸다.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저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윌 스미스만 1인 2역을 하느라 고생한 것이 아니라 배경처럼 서 있는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도 같은 장면을 두 번씩 촬영하느라 똑 같이 고생했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디에이징 기법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고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Setting The Action’은 액션 장인으로서의 이안 감독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영상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콜롬비아 추격신의 경우 도로를 60~80개를 봉쇄하고 작업용 트럭 70대와 500명의 스텝을 동원한 대대적인 촬영작업이었는데, 특히 초반 오토바이가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롱테이크의 경우 CG가 아니라, 실제 바이크에 무거운 촬영 장비를 달고 찍은 장면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놀랍다.
‘Facing Your Younger Self ‘ 역시 윌 스미스의 1인 2역에 대해 다루는 영상인데, 여기서는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라 윌 스미스의 연기와 그의 소감에 대해 보다 초점을 맞춘다. 윌 스미스는 자신이 경험 많은 배우 였기에 가능한 연기였으며, 만약 자신이 20대의 배우인 입장에서 50대 분장을 해서 1인 2역을 하는 것이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부가영상 목록
- Deleted Scenes(4:33)
- The Genesis of Gemini Man (2:53)
- Facing Your Younger Self (5:39)
- The Future Is Now (18:31)
- Setting The Action (15:45)
- Next Level Detail (3:42)
- The Vision Of Ang Lee (6:02)
총평
[제미니맨]이 그저 그런 고용감독과 적당한 규모의 B급 액션 영화였다면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안 감독이라는 거장과 A급 스타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대자본이 들어간 대형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 좀 더 관객이 납득할만한 결과를 보였어야 할 작품이다. 이는 프로젝트가 수 년간 지연되면서 다양한 작가들에 의해 시나리오가 첨삭이 된 탓도 있겠지만 그것이 이안 감독에게 온전한 면죄부를 제공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 이안 감독에게 있어 블록버스터라는 관문은 조금 버거운 것이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일지도 모른다. 다만 기술적 한계를 시험한 이안 감독의 도전이 반드시 어리석은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120fps의 이질감을 많이 극복한 데다 현실적인 화면을 재현하기 위해 한 노력들은 추후 액션 영화에서 중요한 테크닉으로 발전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액션의 부조화에도 불구하고 하이테크적인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감상해 볼 가치는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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