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무비 –조커에게 ‘히어로’라는 칭호를 붙일 수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조커는 어떤 의미로든 히어로가 맞다- 사상 최초로 전대미문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커]에 대한 기대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일단 폭망해 가던 DC에서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걷어 차 버리고 워너 산하의 독립영화 형식으로 조커 단독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느껴지긴 했다.
하지만 근 10년 사이에 관객들은 벌써 두 명의 조커를 접하지 않았나. [다크나이트]의 히스 레저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자레드 레토. 둘의 평가는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유망한 젊은 배우의 새로운 조커였다는 점에서 이미 보여줄 만큼은 보여주지 않았던가. 왜 또 다른 배우에게 조커를 맡기려는 것일까.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조커는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 비해 한층 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게는 ‘이름’과 직업이 있고, ‘가족’도 있으며, 조커의 시그니처인 웃음마저도 그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일종의 ‘질환’으로 묘사된다. 영화는 사회의 하류층이었던 사내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대왔던 것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면서 결국 희대의 빌런이 되어 버리는 조커의 기원을 유사 리얼리즘의 형태로 다룬다.
[조커]의 의외성이라고 한다면 조커를 혁명적인 인물로 묘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아니, 스스로가 그렇게 되길 원하진 않았지만 시대가 그를 필요로 하는 그런 존재로 승화시킨다. 그 이면에는 빈부격차의 심화, 복지 시스템의 부재,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과 같은 현대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놓여 있다. 비단 고담이라는 가상의 도시를 상정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고담 그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이 정치적인 투쟁과 폭력 시위의 정당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커라는 인물에게 관객의 감정을 이입시키려는 시도에서 분명 이 영화는 매우 위험한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북미 개봉시 상영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던 것도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확실히 한국보다는 미국같은 나라에 훨씬 더 위협적인 영화다.
영화 자체로만 보자면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는 사이코 범죄 느와르의 플롯을 따라간다. 이런 류의 영화가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오’다. 영화는 분명 ‘조커’라는 이름과 DC 코믹스의 캐릭터에 기초를 두었다는 점에서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배우 호아킨 피닉스에게도.
만만찮은 영화고, 이후에도 많은 담론을 생산해 낼 영화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불편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호불호의 갈림길에서 불호 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본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단 한가지 확신은 고담시의 이야기는 역시나 어둡게 가야 제대로 된 그림이 나온다는 점 일까나.
P.S
1. [코미디의 왕]에서 [택시 드라이버]에 이르기까지 마틴 스콜세지의 초기 걸작에 대한 오마주의 향연.
2. 가장 흥미로웠고, 또 가장 히어로 무비 같았던 장면은 역시나 브루스 웨인이 트라우마를 갖게 된 그 장면.
3. 확실히 DC는 팀업무비 같은 같잖은 마블 흉내보다는 캐릭터나 잘 신경써서 솔로무비로 재미를 보는 편이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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