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담의 절대악은 어떻게 탄생했나
DC 코믹스의 팬들에게 있어 그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DC의 행보는 답답하기가 서울역에 그지없었다. (-_-;;;) 팀업무비의 결정판이 되었어야 할 [저스티스 리그]는 헨리 카빌의 콧수염처럼 팬들의 기억에서 지워졌고, 빌런들의 팀업무비인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최종 빌런의 쌈바춤과 함께 장렬히 산화했다. [원더우먼]의 선전과 [아쿠아맨]의 흥행성공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하긴 했지만 로드맵을 전면 수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우선 DC는 팀업무비를 잠시 보류하고, 개별영화에 주력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거품을 잔뜩 걷어내고 만든 [샤잠!]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품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파란을 일으키게 된다. 바로 워너 산하의 독립영화 형식으로 제작된 [조커]가 코믹북 원작으로는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이다.
사실 근 10년 사이 관객들은 [다크 나이트]의 히스 레저와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자레드 레토가 연기한 서로 다른 두 명의 조커를 스크린에서 만난 바 있다. 두 배우의 캐릭터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 둘 다 유망한 배우의 젊고, 신선한 조커였다는 점에서 이미 보여줄 만큼은 보여주지 않았던가. 왜 굳이 또 다른 조커를 보여주려 한 것일까.
호아킨 피닉스가 열연한 조커는 히스 레저가 연기한 조커에 비해 한층 더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에게는 아서 플렉 이라는 이름과 광대라는 직업이 있고, 가족도 있으며, 조커의 시그니처인 웃음마저도 그 자신이 주체할 수 없는 일종의 질환으로 묘사된다.
이렇게 [조커]는 사회적 약자, 하층민으로서의 ‘one of them’이던 사내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자신이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기대어 왔던 것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면서 결국 희대의 빌런이 되어 버리는 기원을 유사 리얼리즘의 형태로 다룬다. 조커라는 캐릭터 위에 호아킨의 열연과 사실적인 배경이 곁들여지면서 [조커]는 밀도 높은 범죄 드라마로 재탄생 했다.
무엇보다 [조커]의 의외성이라고 한다면 조커를 혁명가와 같은 인물로 그렸다는 점일 것이다. 자의적이든 그렇지 않든 대중들은 조커의 행동에 반응하며, 그 이면에는 빈부격차의 심화, 사회 복지 시스템의 부재,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과 같은 현대사회의 병폐가 고스란히 놓여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는 고담이라는 가상의 도시로 고스란히 치환된다.
영화가 지향하는 지점이 정치적인 투쟁과 폭력 시위의 정당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커라는 인물에게 관객의 감정을 이입시키려는 시도 때문에 [조커]는 영화 외적으로도 많은 논란을 낳았다. 폭력장면의 절대 수위는 높지 않지만 목적으로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의 당위성을 부여할 만큼 영화의 흡입력이 뛰어난 탓이다. (필자 주: 참고로 [조커]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당시 총기 사건으로 12명의 사망자를 낸 콜로라도 주 오로라 극장에서는 상영하지 않았다)
이런 복잡한 담론을 떠나 [조커]는 훗날 배트맨이 되는 브루스 웨인과 그의 반대편에 선 조커의 관계를 재해석한 점에서도 흥미롭다. 극 중 브루스 웨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적지만, 그간의 영화들에서 어떤 식으로든 배트맨이 조커의 탄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묘사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 반대의 측면에서 두 사람의 관계를 조명한 것이 신선한 느낌을 준다.
히스 레저라는 역대급 조커의 그늘 아래서 누구도 시도하기 쉽지 않았을 또 하나의 조커를 각인시킨 호아킨 피닉스는 본 영화의 최대 공로자다. 얼굴 표정과 대사 뿐만 아니라 피골이 상접한 온 몸으로 열연을 보여준 그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조커]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블루레이 퀄리티
로렌스 셔 촬영감독이 아리알렉사 65 카메라로 촬영한 결과물을 4K DI로 피니쉬한 마스터소스를 사용한 [조커] 블루레이는 1.85:1의 화면비로 수록되어 있다. 평균 비트레이트가 약 20Mbps의 다소 평이한 수치임에도 4K 소스를 효율적으로 트랜스퍼한 덕분에 결과물 자체는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1980년대 뉴욕의 디테일한 이미지와 영상에 담겨 있는 텍스처가 1080p의 스펙에서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한 해상력을 지니고 있다. 조커의 우울하고도 섬뜩한 표정을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 화면에서의 피부질감과 색조는 현실적이고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비교적 어두운 장면이 많은 편이지만 암부 디테일을 뭉게는 일 없이 안정적인 콘트라스트를 보여주며 미학적인 성취도가 꽤 높은 작품이니만큼 색조의 표현력 또한 우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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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사운드의 경우, 극장에서 느꼈던 ‘creepy’한 느낌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대사전달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고,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 세워지는 디테일한 음향 효과가 공간을 에워싼다. 여기에 힐더 구드나도티르가 작곡한 사운드트랙이 상승효과를 낳는데, 첼로를 중심으로 한 불협화음은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대단히 훌륭한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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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피처
영화의 화제성에 비해 수록된 부가영상은 단촐한 편. 먼저 “Joker: Vision & Fury”는 약 23분 간의 영상으로 메인 서플먼트에 해당하는 영상이다. 여기에서 감독인 토드 필립스는 [조커]의 목적에 관해서 언급하는데, “오늘날 세상의 문제점을 거창하게 지적하는게 아니라 악당은 어쩌다 악당이 되었는지 그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DC 영화들과는 달리, [조커]가 워너의 큰 간섭없이 진행된 작품이라는 점이다. 정해진 규칙없이 토드 필립스가 아이디어를 던졌고 이를 제작사에서 수락한 것. 어찌보면 지금까지의 DC 영화들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Please Welcome...Joker!’ 에서는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에 대해 다룬다. 즉흥적인 연기를 구사하는 호아킨의 스타일이 오히려 [조커]에 걸맞았다고 하는데, 가령 머레이쇼에 초대받아 무대로 들어서는 아서의 등장씬만 해도 각각의 테이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찍을 때마다 연기가 달라지는 바람에 편집하는데 아주 애를 먹었다는 후문.
‘Becoming Joker’는 1분 짜리 영상으로 조커를 연기하기 전 호아킨 피닉스의 리허설(?) 장면으로 보이는 영상들이 편집되어 있다.
끝으로 ‘Joker: A Chronicle of Chaos’ 는 영화 속 명장면들을 담은 일종의 고화질 스틸 갤러리이다.
총평
토드 필립스의 인생작 이라고 불릴 만한 [조커]는 곧 있게 될 아카데미 시상식에 최우수 작품상을 포함해 모두 11개 부분에 이름을 올렸다. 흥행에 불리한 요소로 알려진 R등급 영화로선 최초로 10억 달러 고지를 점령하며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 이만하면 2019년 최고의 화제작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결과다.
분명 [조커]는 이후로도 수많은 담론을 생산할 영화다. 영화 속에 내제된 파괴적인 에너지를 차치하고서라도 [배트맨] 프렌차이즈에서 파생된 빌런이 스스로 자립할 만한 스타성이 있음을 입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히어로물의 틀을 깨고 빌런이 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그럴듯하게 보여준 DC의 수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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