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배우의 회환이 담긴 마지막 투혼
2011년 10월 21일, 87세의 노인인 레오 샤프는 자신의 링컨 픽업 트럭을 타고 디트로이트로 향하던 중 미시간 주 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된다. 놀랍게도 그의 혐의는 마약 운반. 고령인 나이에 대량의 마약을 운반했던 사실도 놀라운 것 이었지만 그가 과거 2차세계대전 참전용사로 동성무공훈장까지 받은 전쟁영웅이었으며 원예가들 사이에는 헤메로칼리스(day lily) 교배종을 개발한 원예가로도 제법 알려진 인물이었다는 내용이 <뉴욕타임즈>에 실리면서 큰 관심을 모았다. (샤프는 백악관에 초대받아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을 위해 로즈 가든에 꽃을 심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레오 샤프가 처음부터 마약 카르텔과 인연이 있었던 그런 불량한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 성공적인 원예가였던 그는 인터넷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파산의 위기를 맞이 했다. 재정적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마약 카르텔의 현금 수송에 손을 댄 그는 곧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마약 운반을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그의 마약 운반책 생활은 10년 넘게 계속 됐다.
분명한 건 레오 샤프가 동정을 받을 만한 인물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1kg당 1천 달러라는 거금의 운송비를 받기 위해 한 번에 300kg에 달하는 코카인을 운반 하기도 했고, 체포되자 징역을 피하기 위해 치매를 주장하거나 엉뚱한 제안으로 처벌을 면하려고 했다. 누구의 강요나 절박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노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라스트 미션]은 바로 이 이야기에 기반한 작품이지만 굳이 “실화에 근거한 작품”임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뉴욕타임즈의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살짝 언급할 뿐이다. 이는 실존 모델인 레오 샤프에 대한 어떠한 동정적인 입장도 취하지 않겠다는 제작진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일 게다.
실제로 각본가 닉 솅크가 차용한 부분은 표면적인 설정에 불과하다. 원예업을 하다가 인터넷의 등장으로 파산한 한 노인이 마약 운반을 하면서 결국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기본적인 줄기 외에 주인공 얼 스톤과 실존 인물 레오 샤프와의 공통점은 거의 없다.
백전노장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이후 4년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라스트 미션]은 노년의 회한이 물씬 풍기는 웰메이드 드라마다.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얼은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고 누구에게나 호인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버림 받다시피 한 인물이다. 하나 뿐인 딸의 결혼식 대신 올해의 원예가 시상식에 참석할 정도로 가족보다는 본인의 일에 더 충실한 남자다.
그러나 세월이 변해 사업도 망하고, 가족들도 등을 돌리자 그는 어떤 청년이 제안한 ‘운반’ 알바를 시작한다. 처음엔 자신이 운반하는 물건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한 것이었고,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일을 계속 하게 되면서 얼은 어느덧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거물 운반책’이 된다.
거금을 벌어들이면서 재정적인 압박에서 벗어난 얼은 노년의 삶을 즐기며 뒤늦게나마 가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지만 자신을 뒤쫒는 마약 단속반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한다.
제작자이자 감독, 그리고 영화배우로 평생을 바쳐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인생을 모두 쏟아 부은 듯한 [라스트 미션]은 그야말로 이스트우드만이 해낼 수 있는 영화다. 90줄에 접어든 꼬장꼬장한 마약 운반책을 ‘제대로’ 연기할 수 있는 헐리우드 배우가 그리 많지도 않을 뿐더러, (참고로 동년배인 진 해크먼의 경우 78세, 숀 코네리는 77세에 은퇴했다) 거장의 풍미를 뿜어내는 몇 안 되는 명감독이기 때문이다.
헐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중 한 명인 브래들리 쿠퍼나 마이클 페나, 로렌스 피시번, 앤디 가르시아 같은 낯익은 배우들이 등장함에도 이야기의 균형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중심으로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석양의 무법자]와 [더티 해리]를 넘어 이제 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노배우의 열연을 보노라면 그의 몸짓 하나 하나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모티브가 된 노인의 초상에 가족사를 얹어, 훨씬 더 입체감 있는 인물의 고뇌를 그려낸 [라스트 미션]은 가정에서도, 사회적으로도 존재가치가 사라져 가는 ‘노인’이 세상에 꼭 필요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노년의 성장극이다. 옹고집스런 현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을 과감하게 투영하는 이스트우드의 연출은 언제나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블루레이 퀄리티
이례적으로 [라스트 미션]의 촬영은 이스트우드의 전담 촬영감독인 톰 스턴 대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브루클린]의 이브 벨랑제가 맡았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 제작된 [15시 17분 파리행 열차]의 후반 작업 때문에 그렇게 된 듯. 아리 엘렉사 미니와 XT플러스로 촬영된 디지털 소스를 2K DI로 변환한 마스터 포맷으로 제작되었다. 화면비는 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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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조명 대신 자연광을 활용해 서정적이고 보다 리얼한 느낌을 화면에 담아낸다. 디지털로 촬영된 작품이지만 필름 라이크한 영상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데, 이는 다분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추구해왔던 아날로그적인 정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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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 장소인 뉴멕시코 위주의 야외 장면은 세밀함과 질감이 뚜렷하게 표현되는 편이다. 화면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차갑고 음침한 느낌을 주는데, 그 안에서도 피부톤의 표현이나 색상 구현력에 있어서 큰 문제는 발견되지 않는다. 압도적이고 인상적인 화질을 제공하는 건 아니지만 무난한 화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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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역시 DTS-HD MA 5.1 채널 규격의 평범한 사운드 포맷을 채택했다. 대화 중심의 드라마인데다 자동차의 내부 혹은 실내 장면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센터와 프론트에 사운드가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다. 반면 오프닝의 컨벤션 시퀀스 같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리어 채널을 적극 활용해 공간감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스페셜 피처
조금 아쉽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개인에게도 할 말이 참 많이 있을 법한 영화인데 부가영상으로 제공되는 건 10분 남짓되는 메이킹 빌름과 토비 키이스의 뮤직비디오가 전부다.
“Making of The Mule: Nobody Runs Forever”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라스트 미션]을 만들게 된 계기부터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진 영상이다. 이미 [그랜토리노]로 닉 솅크와 만난 바 있는 이스트우드가 그 당시 작업이 좋았었다며 닉에게 또 다른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 하던 차에 ‘우연찮게도’ 닉한테 먼저 연락이 와서 대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인공을 누가 맡으면 좋을까’ 라며 능청을 떨었다는 일화를 들으니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는 어르신인 듯.
거장이니 만큼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디테일한 요소들을 중요시한다는 점도 강조된다. 특히 마약 거래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데 코카인을 2.2 파운드씩 납작하게 소분해 포장하는 것이나 거래 일지를 표기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실제 마약상들이 하는 방법을 고스란히 재현해 리얼리티를 높혔다고 한다. 본인의 꼼꼼한 성격 탓인지 스텝들에 대한 기대치도 꽤 큰 편이라고.
끝으로 주인공 얼이 평범한 노인이었기에 그가 입은 의상을 담당하는 것도 고민되는 지점이었다. 다행히 이스트우드와 함께 일하던 의상팀은 과거 그가 입었던 옷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이스트우드가 영화 속에서 입었던 여러 옷들을 재활용했다. 영화의 마지막 재판 장면에서 이스트우드가 입었던 양복은 바로 그 유명한 [사선에서]에서 입었던 바로 그 양복이다!
총평
실제 가정사에 그리 충실하지 못했던 이스트우드 자신의 이야기가 투영된 듯한 본 작품은 모티브가 된 레오 샤프가 아닌 이스트우드의 자전적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친딸인 알리슨 이스트우드나 사위인 클립톤 콜린스 주니어 등 실제 ‘가족’을 등장시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듯 하다.
중의적인 의미를 닮은 원제인 ‘노새 (The Mule)’가 아니라 ‘라스트 미션’이란 상투적 제목을 선택한 것이 맘에 들지는 않지만 실패한 가장으로서 지난 날의 과오를 돌이켜 가족을 붙들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마지막 임무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변경된 제목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어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에게도 마지막 연기일지 모르는 [라스트 미션]의 여운은 엔딩 크레딧이 끝난 후에도 짙게 남아 있다.
작품 - ★★★★☆ 화질 - ★★★★ 사운드 - ★★★★ 부가영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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