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그녀의, 우리 모두의 성장통
한 엄마와 딸이 있다. 여느 집안의 모녀 관계가 그러하듯이 둘은 티격태격하다가도 살갑게 대화를 나누며 차를 타고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어딘가를 달린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된 설전. 그런데 분을 참지 못한 딸내미가 그만 달리는 차의 조수석 문을 열고 뛰어 내린다. 뒤이어 들려오는 엄마의 절규, “아아아악!”
ⓒ Scott Rudin Productions,Entertainment 360,IAC Films. All Rights Reserved.
영화 [레이디 버드]의 오프닝은 사뭇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좀 더 다듬어 말하자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엄마와 딸의 만만찮은 대결(?)이 예상되는 한 편, 이 영화에 담긴 갈등의 양상도 사뭇 복잡하리라 추측되는 순간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가장 묵직하게 와 닿는 오프닝이랄까.
배우 출신의 여성감독 그레타 거윅이 두 번째로 연출한 [레이디 버드]는 개봉 초반부터 아카데미를 거의 혼자 씹어 먹을 기세로 엄청한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비록 아카데미 5개부문 노미네이트에 무관의 제왕으로 아쉬운 결과를 낳았지만 이 리뷰를 쓰는 시점(북미 개봉 기준 9개월이나 지난)에서도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99%를 기록 중이니 이 영화가 가진 저력은 실로 대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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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크리스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에게 지어 준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을 더 선호하는 한 여고생의 성장통을 담아낸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성장한 크리스틴은 이제 이 지긋지긋한 고향을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이다. 궁극적으로는 뉴욕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꿈이지만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살림꾼 엄마와 이 문제로 사사건건 충돌한다.
가톨릭 계열의 사립 고등학교 역시 자유분방하고 언제 튀어나갈지 모르는 성격의 크리스틴에겐 너무 고루한 공간이다. 그 안에서의 일탈을 맛보기 위해 연극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남자 친구도 사귀어 보지만 결과적으로는 실망 뿐. 그렇기에 뉴욕으로의 탈출은 크리스틴에게 더 절박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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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버드]는 10대 시절을 새크라멘토에서 보낸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필자 주: 그러나 정작 그녀의 ‘경험담’은 아닌, 그녀의 ‘고향과 유년기의 정서’만을 담았다고 회상한다)로서 그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고향 생활의 애정어린 찬사가 묻어나는 영화이기도 하다. 비록 자전적인 이야기라고는 하나 [레이디 버드]의 크리스틴은 어디서나 있음직한 10대 소녀의 보편적인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관객들의 공감대를 대폭 키운 작품이다.
10대 소녀의 성장영화라고 해서 뭔가 달달하더거나 로맨틱한 감수성이 지배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영화는 집요하게 현실적인 삶을 파고든다. 실직자 가정의 고충과 그저 그런 평범한 일상에 몸서리치는 청소년의 고민과 좌절, 그리고 반항을 부모와 자식 간의 형연할 수 없는 그 어떤 미묘한 감정적인 교감을 매우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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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관 35세의 신예 감독이 만든 작품이라고 하기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만듦새가 좋은데, 각본도 훌륭하지만 고작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 안에 수없이 많은 (잘게 쪼개진) 장면들과 에피소드, 대사들을 때려 넣고도 산만한 느낌없이 쉽고 재미있게 하나의 완전체를 구성하고 있어서 대중적인 독립영화를 꿈꾸는 이들에겐 하나의 교본과도 같은 영화다.
가끔씩 훅하고 들어오는 유머와 정교하게 설계된 캐릭터, 시얼사 로난을 비롯한 헐리우드 유망주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가운데, [빅 뱅 이론]의 마리 로퍼 역으로 유명한 로리 멧칼프의 억척스런 연기는 근래 보아 온 스크린의 그 어떤 엄마보다도 진짜 같은 연기를 선사한다. 특히 딸과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눈물을 삼키며 딸을 만나러 달려가는 후반부의 공항씬은 필자가 꼽은 영화의 명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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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로리 멧칼프는 본 영화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들을 연기한다. [매기스 플랜]에서 그녀와 함께 출연한 에단 호크는 그레타 거윅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멧칼프를 캐스팅한다면 진정한 연기가 뭔지 보게 될 거요. 그녀가 보여주는 건 진짜니까”.
10대 소녀가 주인공이자 모녀의 갈등이 영화의 주요 서사인 까닭에 아무래도 남자들보다는 여성관객에게 더 어필할 부면이 많지만 결국 우리의 삶은 남녀 성별을 떠나 언젠가는 성장하고 부모를 떠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인생임을 생각해보면 누구나 공감하고 좋아하고, 즐길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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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케이스
초도한정으로 제공되는 아웃케이스 버전은 블루레이 본편 외에 8종의 스틸컷 엽서 세트가 예쁜 봉투에 담겨 제공된다. 아웃케이스의 퀄리티도 좋은 편으로 시얼사 로난의 얼굴과 타이틀이 유광 앰보싱 처리되어 있어 보다 고급스런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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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퀄리티
1.85:1의 화면비를 가진 [레이디 버드]는 아리 알렉사 미니를 사용해 촬영한 디지털 소스를 트랜스퍼했으나 감독이 의도적으로 원본을 수정, 왜곡한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는 이에 따라서는 필름으로 촬영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뚜렷한 그레인이 눈에 띈다. 본래 아련한 듯 투박한 과거의 이미지를 투영하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니 만큼 이러한 부분의 의도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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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클로즈업 장면에서 선예도 및 해상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발견되지만, 오히려 그레인 필터를 적용한 덕분에 아날로그적인 풍미가 더해지는 효과를 낸다. 때론 과도한 색감도 느껴지는 데, 가령 노란색과 녹색, 핑크 같은 원색 계열의 색상이 두드러지게 강조되는 인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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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의 경우 DTS-HD 5.1의 평범한 스펙을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명확하고 명료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학교의 뮤지컬 오디션 장면이나 파티에서의 왁자지껄한 장면에서 간간히 역동적인 사운드를 내기도 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는 다소 빈약하다. 대부분 일상적인 장면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고 퀄리티의 사운드를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는 못하는 편에 속한다.
스페셜 피처
스페셜 피처는 부실한 편이다.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는) 그레타 거윅 감독과 촬영 감독인 샘 레비의 음성 코멘터리가 제공되며, 부가영상으로 “Realizing Lady Bird”라는 제목의 메이킹 필름이 수록된 게 전부다. 이야깃 거리가 많을 것 같은 작품에 비해 참 아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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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zing Lady Bird”에서는 주로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의 코멘터리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의 고향을 부정했지만 그곳이 정말 아름다웠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 그레타 거윅의 이야기를 통해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가 무엇인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이걸 보면서 느낀 건 감독이 연출력도 좋은데 생각이 깊고 연기도 잘하고 이쁘기 까지….. 게다가 이름도 멋있다…. 세상은 확실히 불공평한 거 같다.
총평
올해의 발견이다 싶을 정도로 괜찮은 영화다. 흔히들 헐리우드의 젊은 배우층이 빈약하다느니, 영화가 너무 히어로물 같은 블록버스터에 치중되어 있다느니 하는 우려를 나타내지만 분명 실력 있는 젊은 배우들이 있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춘 내실 있는 저 예산 독립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이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자칫 싸구려 감상에 빠질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도 품위 있고 세련되게 담아낸 그레타 거윅의 솜씨에 새삼 탄복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왜 그토록 극찬을 받았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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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레이디 버드 : 초도한정 아웃박스 - 그레타 거윅 감독, 시얼샤 로넌 외 출연/유니버설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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