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변치 않는 레트로 대중문화의 위력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본 관객의 반응은 둘로 나뉠 것이다. 하나는 ‘저 오글거리는 영화는 대체 뭐지?”. 또 하나는 “우왕 굿! ㅠㅠ”
필자는 당연히 후자였고, 아마도 8,90년대 게임,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대중문화를 향유한 DP 회원들 중 대부분은 필자와 동일한 심정이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블랙팬서]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 같은 쟁쟁한 작품들이 개봉되었고 또 앞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올 해 본 최고의 블록버스터를 꼽는다면 심정적으로는 단연 [레디 플레이어 원]에 기꺼이 한 표를 던질 것이다.
ⓒ Warner Bros. All rights Reserved.
본 작품은 어니스트 클라인의 동명 소설을 영상으로 옮겼다. 2045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암울한 시대에 오아시스(Ontologically Anthropocentric Sensory Immersive Simulation 존재론적 인간중심 감각 몰입형 시뮬레이션)라는 가상현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아시스의 창조자인 제임스 할리데이는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가상현실 속에 남긴 이스터 에그를 찾는 사람에게 상속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할리데이가 남긴 이스터 에그란 3개의 열쇠, 이 열쇠는 그가 생전에 매혹되었던 1980년대의 대중문화 코드 속에 숨겨져 있으며 이는 곧 소설의 서사를 구축하는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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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소설 <레디 플레이어 원>에 등장하는 상당수의 대중문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뤄 놓은 것인데, 가령 소설 속 주인공 웨이드는 성배를 찾기 위한 실마리를 수집한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며 이는 두 말 할 필요없이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에 대한 오마주다.
이러한 작품을 당사자인 스필버그가 다시 영화화했다는 건 마치 무슨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8,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어덜트 키즈에게 바치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위대한 헌정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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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달리 스필버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대중문화의 영역을 90년대까지 확장하며 더욱 폭넓은 관객층을 흡수하려 한다. 때문에 깊이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아이언 자이언트]를 보고 자란 세대까지는 그럭저럭 영화의 재미를 발견하는데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역시나 이 작품은 1980년대에 정점을 찍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다. 숨겨진 보물과 단서를 찾는 모험, 이를 쫒는 악의 세력, 평범한 10대 소년과 이를 돕는 친구들. 80년대 스필버그식 가족모험영화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재현한 [레디 플레이어 원]은 21세기의 총아인 CG로 말미암아 관객을 게임 속 가상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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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벌과 함께 하는 오아시스의 풍경은 환상적이란 말로도 부족하다. 레이싱 시작 전, 드로리안을 펼치는 장면으로 시작해 [아키라]의 가네다 바이크, 로보캅이나 처키, 배트맨과 같은 수많은 이스터에그의 향연은 눈이 호강하는 경험들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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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담과 메카 고지라, 아이언 자이언트가 뒤엉켜 전투를 치루는 격전장의 하이라이트는 두고두고 회자될 명장면이다. 원래 아이언 자이언트는 원작에서는 울트라맨이었지만 판권문제로 인해 설정을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미국 관객에게는 오히려 더 가슴 찡한 무언가를 남겼을 듯 하다.
(스필버그가 경외해 마지않는)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장면에 이를 때면 이 영화가 가진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다. 한 장씩 날아가는 타이핑 용지, 쌍둥이 자매, 복도에 쏟아지는 피, 욕실 도끼 씬 등 [샤이닝]의 명장면들을 재현한 스필버그의 덕력에 다시 한번 탄복하게 된다. 실제로 극장에서도 피가 복도에 쏟아지는 장면에서 ‘아!’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마치 ‘설마 저것까지 재현하다니!’라는 생각에 모두가 동기화 되는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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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레디 플레이어 원]은 이 세대 소년, 소녀들을 위한 영화가 아닌 그 부모들을 위한 영화다. 타켓이 명확하다는 건 그만큼의 한계도 있다는 의미겠지만 [레디 플레이어 원]은 본연의 목적에 매우 충실하다. 8,90년대 대중문화의 감성을 그 시절의 캐릭터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전율에 가까운 경험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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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메뉴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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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퀄리티
스필버그와 오래 협업했던 야누스 카민스키가 촬영을 맡은 본 작품은 오아시스 내부의 디지털 세계와 실제 세계의 시각적인 대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비주얼을 보여준다. 대체적으로 디지털의 세계는 화려하고 광택이 나며 역동적인 색상들에 매끄러운 화면처리가 특징이다. 반면 실제 세계는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듯 무채색의 낮고 어두운 톤의 색감이 주를 이룬다. 이 때문에 현실 세계의 장면은 의도적으로 선명도를 낮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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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타이틀의 화질은 2K DI 소스를 트랜스퍼한 것 치곤 놀라울 정도인데, 판자촌을 연상시키는 조밀한 ‘The Stacks’의 풍경, CG 캐릭터의 피부톤과 질감, 깨알 같은 이스터 에그를 포착해내는 디테일한 화면의 표현력이 매우 우수하다. 어두운 장면에서의 표현 역시 주목할만큼 뛰어나 블랙 레벨의 깊이 및 그림자의 디테일은 블루레이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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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는 풍부한 공간감에 특화된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한다. 미드 레인지에서 탁월한 음향을 자랑하는 둠 행성의 액션씬에서는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파편들과 같은 미세한 음원들이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킹콩이 날아다니고 티렉스가 쫓아오는 초반부의 경주 시퀀스에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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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 작품의 음향 설계가 진가를 드러나는 대목은 절제된 사운드가 소름끼치는 환경을 조성하는 [샤이닝] 시퀀스다. 스필버그 감독이 가장 공을 들였다는 것이 그냥 체감만으로도 느껴지는 장면. 여기에 [백 투 더 퓨쳐]의 앨런 실베스트리가 작곡한 (필자 주: 스필버그가 존 윌리엄스와 작업하지 않은 작품은 이번에 세 번째다) 복고풍의 사운드트랙과 8,90년대를 수놓은 올드팝의 향연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면서 감동의 도가니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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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 한 가지를 지적하자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자막 문제다. 특히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의 성격상 덕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디테일한 정보들을 손실없이 전달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것조차 무시한 듯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령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메카 고지라 (혹은 메카 고질라)’의 경우 고유명사인 ‘Mecha Godzilla’인데도 불구하고 극장에서 사용된 ‘메가 고질라 (Maga Godzilla)’라는 오역을 그대로 고수해 다소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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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본편에서 뿐만 아니라 서플먼드에서도 드러나는 문제이기도 한데 가령 ‘드로리안’을 ‘디로린’으로 번역한 건 단순한 오역의 문제가 아니라 성의의 문제처럼 보인다. 자막도 영화의 완성도에 일조한다는 인식이 보편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스페셜 피처
생각보다 스페셜 피처의 분량은 많지 않지만 실속있는 부가영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The '80’s: You’re The Inspiration”은 배우와 스텝들이 나와 어떻게 영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했으며 이야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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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시간 분량의 “Game Changer: Cracking the Code”는 사실상의 주요 메이킹 필름으로 어니스트 클라인의 원작에 대한 느낌, 80년대 문화에 대한 스텝과 배우들의 추억들, 유쾌한 촬영장의 분위기 등 제작 전반에 걸친 다양한 이야기들이 수록돠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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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ffects for a Brave New World”에서는 타이틀이 암시하는 것처럼 컨셉 아트와 CG 이미지 및 모션 캡처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효과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특수효과를 담당한 ILM과 디지털 도메인 직원들의 '영혼을 갈아 넣는' 작업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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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vel Up: Sound for the Future”는 음향 설계가 시각 효과를 보완하는 작업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가령 H와 헬렌은 가상 세계에서와 실제 세계에서의 목소리가 전혀 달라지는데 목소리를 변조하기 위한 작업에도 많은 노력이 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드로리안의 경우 예전 [백 투 더 퓨쳐]에서 사용한 음향 소스를 쓰지 않고 새로 녹음하는 쪽을 택했는데, 드로리안의 배기구에서 연기를 뿜는 장면의 효과음을 고민하던 중 스필버그가 “예전에 우리 소화기를 썼는데 그걸 써보라”고 제안해 그대로 적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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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 Score: Endgame”는 앨런 실베스트리의 음악에 대한 토론과 전설적인 영화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첫 번째 작업에 대한 기록이다. 사실 이번 작품에서 존 윌리엄스가 빠진 건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더 포스트]의 작업 일정 때문에 작업을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앨런 실베스트리와 스필버그의 인연은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했던 [백 투 더 퓨쳐] 삼부작으로 시작해 [왓 라이즈 비니스], [캐스트 어웨이]로 이어졌는데, 이는 공교롭게도 모두 로버트 저메키스의 작품이다. 하지만 직접 연출가와 작곡가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고, 다행히 실베스트리의 스케줄이 일정에 딱 맞게 비어서 제 때에 섭외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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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에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녹음 현장에 초대받은 어니 클라인이 자신의 싸인이 담긴 책을 앨런에게 건네며 ‘당신 음악을 들으면서 이 책 전부를 썼어요 ㅜㅜ’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로 형언하기 힘든 묘한 감동이 느껴지는 장면이다. 앨런은 그 책을 가보로 삼기로 했다고… 더 웃기는 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니가 준비해간 [백 투 더 퓨쳐] LP 석장에 모두 앨런 실베스트리의 사인을 받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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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설런트 어드벤처]의 원 제목을 패러디한 “Ernie & Tye's Excellent Adventure”는 원작자인 어니스트 클라인과 주연 배우 타이 쉐리던이 시사회를 준비하고 영화를 만들면서 함께 했던 시간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았다. 텍사스의 오스틴에 있는 어니 클라인의 집에서 진행되는 인터뷰 영상으로서 두 사람이 기억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메이킹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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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수많은 건담 시리즈를 봐 왔지만 눈물이 나올 정도로 흥분되었던 건 이 작품에서 다이토가 건담으로 출격하는 바로 그 장면에서였다. 아마 필자처럼 특정 캐릭터, 혹은 특정 영화나 게임에 대한 오마주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저마다의 감동을 느꼈던 관객들이 많았을 것이라 본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스티븐 스필버그는 모처럼 오락영화로 회귀해 자신이 이룩했던 과거의 영광 위에 기념비적인 이정표를 하나 더했다. 덕후가 세상을 바꾸는 기상천외한 모험담이야 말로 스필버그니까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덕후의, 덕후에 의한, 덕후를 위한 초강력 추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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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레디 플레이어 원 -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마크 라일런스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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