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페니웨이 (admin@pennyway.net)
특이점이 온 배트맨 무비
2013년에 만들어진 OVA [레고: 배트맨 더 무비]를 기억하는가? 베스트셀러 게임 ‘레고 배트맨 2: DC 슈퍼 히어로즈’를 영상으로 옮긴 이 작품은 레고 무비의 상업적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검증한 바 있다. 실제로 레고 무비 속 배트맨의 캐릭터는 제법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는데, 이듬해 대성공을 거둔 [레고 무비]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해 감칠 맛 나는 연기(?)를 보여준 바 있다.
이제 대형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배트맨의 첫 번째 솔로 무비가 나왔다. [레고 배트맨 무비]는 2013년 작 [레고: 배트맨 더 무비]와 비슷한 제목이지만 내용이나 세계관에 있어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작품이다. 오히려 [레고 무비]의 스핀오프격인 작품으로서 전작에서 조연으로 등장한 배트맨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왔다. (성우도 [레고 무비]에서 배트맨 역을 맡았던 윌 아넷이다) 최근 유행하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레고 버전이 시작되는 셈이다.
ⓒ Warner Bros./ LEGO All rights reserved.
본 작품에서 배트맨은 내면의 트라우마를 나르시즘의 형태로 표출하는 외골수다. 제 잘난 멋에 살며, 누구도 자신의 영웅놀이에 발들이지 못하게 하는 배트맨은 희대의 악당 조커마저도 자신의 호적수로 받아들이지 않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다. (엉뚱하게도 배트맨이 생각하는 호적수는 슈퍼맨이다 -_-;;) 이런 배트맨의 까칠한 성격에 알프레드는 우려를, 그리고 조커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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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많은 사람들은 [다크 나이트]의 취조씬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한 “You Complete me” 라는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이 한 마디는 조커와 배트맨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명대사라해도 과언이 아닌데, 사실 [다크 나이트]에서 처음 쓰인 대사는 아니다. 원래는 [제리 맥과이어]에서 사랑에 빠진 톰 크루즈가 르네 젤위거를 향해 던지는 닭살돋는 대사로서 본 작품에서의 배트맨은 자신의 저택에 마련된 전용 극장에서 홀로 낄낄거리며 [제리 맥과이어]를 감상한다. 이는 [레고 배트맨 무비]의 주제 의식을 관통하는 측면에서 “You Complete me”를 재정의함과 동시에 [다크 나이트]에 대한 우회적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고담시를 위기에 빠뜨려도 좀처럼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자, 조커는 스스로 아캄 수용소에 들어가는 길을 택한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한 배트맨은 안절부절 하다가 급기야 슈퍼맨의 팬텀존 프로젝터를 훔쳐 조커를 팬텀존에 가둬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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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실은 이 모든 것이 조커의 계략이었으니, 팬텀존에 들어간 조커는 희대의 악당들을 전부 데리고 나가 고담시를 완전히 파괴시키려고 한다. 더 이상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인 상황. 배트맨은 자기 주변의 바바라 고든, 알프레드, 로빈의 힘을 빌어 이 난관을 해쳐나가야만 하나 마음 속 깊이 봉인된 그 어떤 감정에 의해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레고 완구 올드팬들의 감성을 따뜻하게 감싸안았던 [레고 무비]와는 달리 [레고 배트맨 무비]는 전형적인 블록버스터의 형태다. 눈높이는 아이들에 맞췄고, 기존 ‘배트맨’ 실사물과는 다르게 캐릭터의 재해석과 비틀기에 방점을 찍었다. 수많은 레고 블록들로 표현되는 각종 액션씬은 실사영화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의 스펙타클을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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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규모의 까메오들과 깨알같이 쏟아지는 대사들, 그리고 그 안에 내포된 각종 배트맨 시리즈에 대한 비틀기 등 사실상 배트맨의 세계관을 총망라하는 작품으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격언이 딱 들어맞지만 이 모든 걸 즐기기 위해 미리 챙겨봐야 할 작품이 한 두개가 아니라 조금은 과잉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배경 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호불호의 입장이 갈릴 가능성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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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고 무비]에서의 실사 화면이 감동을 위한 장치로 사용되었다면 [레고 배트맨 무비]에서는 웃음의 극대화를 위해 쓰인다. 지나간 배트맨 무비들을 회고하는 장면 가운데 '유일하게' 실사로 소개되는 작품은 [배트맨 (1966)]과 [배트맨과 로빈]인데, 특히 [배트맨과 로빈]의 경우 개봉 당시 화제가 되었던 배트 슈트의 '니플' 논란에 대한 희화화다.
하지만 배트맨의 캐릭터만큼은 성공적으로 재구축되었다. 암울한 고담시의 흑기사 이미지에서 자뻑에 빠진 배트맨의 모습은 귀여우면서도 사랑스러우며 레고의 세계관 속에서 까칠함을 나름의 매력으로 승화시킨 캐릭터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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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타인과의 관계, 그 속에서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나은 나를 발견한다는 테마는 다소진부하지만 어렸을 적 부모를 잃었던 배트맨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훌륭한 해법으로 다가온다. 계속되는 헛발질로 팬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는 DCEU의 작품들과는 달리 레고 무비의 DC 캐릭터들은 이질적이지만 성공적인 방향으로 탈바꿈 중이다.
블루레이 퀄리티
먼저 1080p MPEG-4 AVC 코덱으로 인코딩 된 화질을 살펴보면, 평균 23 Mbps의 준수한 비트레이트 수치를 가진다. 특히나 레고 블록이 지닌 원색적인 색감에 높은 선예도가 더해져 사물들이 더욱 또렷하게 보이는 느낌이 든다. 상당히 많은 오브젝트가 화면을 가득 메우는 장면들에서도 정보의 왜곡이나 손실없이 균형을 잘 갖춘 화면을 보여주며, 어두운 공간을 비추는 광원 사이로 먼지가 떠다니는 장면, 레고 블록의 이음새나 스크래치까지 잡아내는 화면을 보노라면 굉장히 섬세한 표현력을 지닌 작품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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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비 애트모스/ TrueHD 7.1 채널을 지원하는 사운드도 인상적이다. 돌비 애트모스의 수록 자체는 현 시점에서 일반적인 스펙이 되어가는 분위기인데, 이 작품에서 애트모스 사운드 특유의 공간감을 채험할 수 있었던 장면은 폭발음이 난무하는 액션씬이 아니라 의외로 정적인 고요함이 감도는 장면에서였다. 가령 혼밥을 즐기는 배트맨이 홀로 랍스터를 씹어먹을 때 ‘와사삭!’하는 효과음이 적막을 깨고 넓은 공간으로 두루 퍼져나가는 장면에서 놀라우리만큼 생생한 공간감이 전해진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상당히 정신없는 분위기 이지만 다양한 효과음과 대사의 분리도 역시 뛰어나며 균형감도 준수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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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레고 배트맨 무비] 정발판 블루레이의 최대 미덕은 바로 한국어 더빙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DD 5.1 채널의 다소 아쉬운 스펙이긴 하지만 워낙에 많은 대사량을 가진 본편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빈약한 자막보다는 한국어 더빙으로 보는 것이 필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레고: 배트맨 더 무비]를 리뷰할 당시 필자는 배트맨 전담 성우인 이정구씨의 더빙을 듣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쓴 바 있는데, 이번에는 실제로 이정구씨가 참여한 고퀄리티의 더빙을 들을 수 있어서 눈물이 나올만큼 행복했다.(‘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의 느낌이랄까)
스페셜 피처
제법 다양한 부가영상이 수록되어 있어 소장욕구를 높힌다. 우선 삭제장면을 살펴보면 총 4개의 장면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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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장으로 변장한 배트맨이 악당들을 일망타진 한 후 짐 고든이 배트맨에게 전화를 걸어 미리 계획을 알려주지 그랬냐고 하자 혼자 일하는게 자신의 모토이자 특허라고 말한다. 이어 짐 고든이 자신의 은퇴식에 배트맨을 초대하면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장면. 고독을 싫어하지만 혼자만을 고집하는 배트맨의 모순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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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령 1576번(아마도 애완견에게 목줄을 걸지 않는 행위)을 위반한 강아지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는 배트맨의 좌충우돌 추격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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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트맨이 시장과 바꿔치기 하는 장면의 추가씬. 이 장면이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나이트 호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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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전소를 침입한 클레이페이스가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
그 외 살펴볼 만한 부가영상 중에서 가장 볼만한 건 메이킹 필름에 해당하는 “One Brick at a Time: Making the Lego Batman Movie”이다. 본 영상에서는 대본과 스토리보드, 레고 모형 제작 등 기발하고 신기한 제작 과정을 보여준다. 모형을 조립하기 위해 ‘레고 디지털 디자이너’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며 실제 레고처럼 사용 중에 생기는 흡집이나 상처, 먼지, 산화 과정 등을 더하는 작업도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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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k by Brick: Making of the LEGO Batman” 역시 메이킹 필름 중 하나로, 성우들의 더빙 현장과 인터뷰를 담았다. 배트맨 역의 윌 아넷을 비롯, 알프레드 역의 랄프 파인즈, 바바라 고든 역의 로사리오 도슨 등이 출연해 자신들이 맡은 배역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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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 본 블루레이에는 여러 편의 레고 단편 영화가 수록되어 있다. 그 중 “The Master: A LEGO Ninjago Short “는 [레고 무비]의 두 번째 스핀오프 [레고 닌자고 무비]의 프롤로그 격인 작품이다. 닌자고의 전설적인 전사 우사부와 닭 한마리의 사투(?)를 코믹하게 그린 단편으로 향후 개봉될 [레고 닌자고 무비]의 대략적인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우 사부 역으로 캐스팅이 확정된 성룡이 목소리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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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DCEU, MCU, 몬스터버스, 다크 유니버스 등 저마다의 세계관을 확장해가는 헐리우드의 격전지에서 [레고 배트맨 무비]의 선전은 ‘레고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성공에 청신호를 밝혔다. 또한 로튼토마토 스코어는 현재 신선도 90%를 유지하고 있을 만큼 매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으나 유독 한국에서는 다소 들쑥날쑥한 평가가 오가고 있다.
이는 아마도 미국식 유머코드에 특화된 작품의 성격이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마주의 남용으로 인한 산만함, 저연령층에 맞춰진 내러티브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같은 레고 무비라 해도 [레고 무비]와 [레고 배트맨 무비]의 지향점은 확연히 달라서 [레고 무비]를 좋게 봤던 관객들도 [레고 배트맨 무비]는 취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그 반대이거나.
수많은 배트맨 무비 중에서 아무도 이를 코미디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았지만 [레고 배트맨 무비]는 근래에 만들어진 배트맨 관련 영상 중에서도 가장 유니크한 작품이며 배트맨 무비의 계보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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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레고 배트맨 무비 (1disc) - 크리스 맥케이 감독, 로자리오 도슨 외 목소리/워너브라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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