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야구치 시노부의 영화를 무척 좋아합니다. 국내에선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초기작 [비밀의 화원]을 포함해 남학생들의 싱크로나이즈 도전기를 그린 [워터 보이즈]나 사랑스런 소녀들의 재즈 입문을 다룬 [스윙걸즈], 항공업계의 유기적인 관계를 코믹하게 엮어낸 [해피 플라이트]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독특한 소재와 훈훈한 이야기, 그리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유머로 관객들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번에 개봉된 [로봇 G] 역시 범상치 않은 소재와 웃음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야구치 시노부의 연출력이 정점에 올랐다는 느낌을 주는 영화입니다.
가전제품회사인 기무라전기의 평범한 직원 세 명이 사장의 명령으로 어렵게 로봇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만 이 로봇이 창문에서 떨어져 자살(?)하고 맙니다. 로봇 박람회가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그들은 로봇 속에 사람을 넣어 대역을 시키기로 결심, 구인광고를 통해 적임자를 모집하게 되죠.
ⓒ 브릿지웍스 엔터테인먼트㈜(배급), ㈜수키픽쳐스(수입) All rights reserved.
인형탈을 쓸 사람을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지원한 70대 노인인 스즈키는 자신이 로봇의 대역을 한다는 사실도 모른채 박람회에 참가했다가 그만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는데, 처음엔 자신을 속이고 로봇 행세를 하게 만든 것에 발끈하지만 이내 사람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이 일을 계속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기극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 개발자 3인방과 스즈키 할아버지에게 한차례 위기가 닥쳐 옵니다.
[로봇 G]는 [트랜스포머]나 [퍼시픽 림] 같은 디지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초대형 헐리우드 로봇물과 달리 매우 아날로그적이면서 소박한 감수성을 자극하는 로봇 영화입니다. 독거노인의 공허하고 무료한 일상을 소재로 여기에 첨단 과학의 산물인 로봇이라는 매개체를 대입해 노인문제에 접근하려 하고 있죠. 물론 이를 진지하거나 심각하게 다루진 않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영화는 매우 진부한 내러티브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익숙함이 주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는게 영화의 특징입니다.
ⓒ 브릿지웍스 엔터테인먼트㈜(배급), ㈜수키픽쳐스(수입) All rights reserved.
여기에는 주연을 맡은 믹키 커티스나 하마다 가쿠 같은 배우들의 역할이 큽니다. 이들은 마치 만화의 한 컷과 같은 과장되면서도 유쾌한 장면들을 연출하며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물론 감독의 연출력과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탄탄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죠. 황당하고 억지스런 설정이긴 합니다만 그럴듯한 내용으로 영화가 잘 포장되어 있기에 [로봇 G]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뻔한 이야기를 가지고 2시간을 시종일관 재미있게 이끌어 간다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한국에서의 개봉이 다소 늦긴 했지만 [로봇 G]는 헐리우드 오락물이 갖추지 못한 인간적인 훈훈함을 지닌 일본 영화의 강점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품입니다. 물론 국내에서의 흥행은 기대하기 힘듭니다만 이런 류의 힐링 코미디를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안성맞춤인 영화죠. 잔잔한 웃음과 함께 평온한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선택을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P.S:
1.일본 영화계의 미스터리라 불리우는 다나카 요지가 어김없이 출연합니다.
2.야구치 시노부 월드의 감초인 타케나카 나오토도 여전히 까메오로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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