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흥행력있는 영화 위주로 상영관의 과반 이상을 채워버린 오늘날의 멀티플렉스를 보고 있자면 영화는 곧 산업이고 이는 다시 말해 돈을 의미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찍는데는 비용이 발생하고, 투자자들은 흥행을 담보로 제작비를 대지요. 배우와 스텝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리테이크를 하는 고된 중노동에 따른 댓가는 당연히 금전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는게 오늘날 영화판의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덩치를 키우게 되고, 사색보다는 흥미위주로 자꾸만 화려하게 치장해가고 있지요. 모두의 문제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흐름은 그렇습니다. 정작 영화라는 문화상품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도 이같은 성향을 극대화시킨 탓이겠지요.
그러나 혹자는 아직도 영화를 예술로 불리길 원합니다. 칸 영화제를 비롯한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흥행력 높은 영화보다는 독창적이거나 무언가 예술가의 정신이 담긴 작품에 점수를 주는 이유도 영화를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는 방증이겠지요. 무엇이 정말 영화다운 것인가를 판단하는 문제는 늘 딜레마를 남깁니다.
헌데 얼마전 정말 영화의 본질에 충실하다고 느낄만한 작품을 만났습니다. 바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입니다. 이 영화는 북미지역에서 개봉전부터 평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딱히 슈퍼스타가 출연한 영화라거나 흥미를 끄는 소재주의 작품도 아니지만 순전히 영화를 만든 제작방식의 독특함 때문에 주목을 받았죠.
2002년부터 12년간 동일한 캐스팅과 스탭이 오직 한 영화를 위해 촬영을 진행한 이 작품은 말 그대로 한 가족의 삶을 실시간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더블캐스팅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감독은 배우들의 실제 성장기를 고스란이 카메라에 담아냅니다. 사실 이러한 시도는 [후프 드림스]나 [56업]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먼저 시도했습니다만 극영화로서는 이 작품이 최초라해도 무방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특별한게 없습니다. 싱글맘이 키우는 두 자녀의 시선을 따라서 그들이 만나는 사람들과 겪게되는 평범한 일상의 일부를 통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정통적인 가족영화를 표방하고 있으니까요. 세월의 흐름 속에 벌어지는 만남과 이별, 기쁨과 환희, 그리고 슬픔... 남다를 것 없는 삶의 한 조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6살의 소년이 18세의 청년이 되기까지 나이를 먹어가며 변화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무서울 정도로 놀라운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마치 내 옆집에 사는 가족의 역사를 훔쳐보듯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지요. 보통의 영화라면 시간의 흐름을 가공한다는 느낌을 주지만 [보이후드]에서만큼은 아닙니다. 이런게 리얼리티죠. 피터 위어의 [트루먼쇼]가 실제로 펼쳐진다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저는 이 영화의 야심찬 기획도 그렇지만 12년간 1년에 15분간의 장면만 촬영하는 이 기나긴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는 헐리우드의 환경이 부러웠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나라의 영화판에서 누가 12년간 영화를 찍겠다고 한다면 누가 투자를 하겠습니까? 그것도 흥행성이 보장되지 않는 성장영화에 말이에요.
[보이후드]는 영화라는 매체만이 해낼 수 있고, 또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미 '비포 시리즈'를 통해 시간의 연속성에 큰 관심을 보여 온 리처드 링클레이터는 이 작품에서 시간의 누적으로 쌓여가는 인생의 생성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에서 오는 쾌감보다는 시간의 압축과 그 흐름을 감지하는 관객의 체험을 통해 한 차원 높은 영화 감상의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감히 2014 필견의 영화라고 말하고 싶군요. 아마 내년 아카데미에서 이 작품과 겨룰 만한 후보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P,S: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비록 애 엄마와 이혼하고 별 볼일 없는 직장을 전전하지만 아이들과의 연을 끊지 않고 그들 앞에 늘 좋은 아빠이길 포기하지 않는 에단 호크의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남편이지만 또 누군가와는 잘 맞지 않는 전 남편이 된다는 것... 이 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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