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채선당 임산부 폭행사건'은 SNS의 위력과 부작용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일화다. 가해자가 오히려 피해자처럼 둔갑해 버리는 상황, 어떠한 검증 절차없이 감정적으로 거대한 여론을 만들어 상대방을 유죄로 단정해버리는 SNS의 마녀사냥식 파괴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할 정도다.
물론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과 같이 그냥 그렇게 묻혀질 뻔 한 사건을 공론화시켜 관성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려 했던 사법기관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순기능도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물론 이 경우에도 자칫 용의자가 아닌 엉뚱한 BMW 차량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나긴 했지만.
영화 [백설공주 살인사건]은 한 미모의 직장여성이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다.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뛰어난 미모로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여성이 끔직하게 피살된 채로 발견된다. 때마침 방송국의 계약직 직원은 피해자와 같은 회사에 다니던 대학동기를 통해 범인으로 의심받는 또다른 동료에 대한 제보를 접한다. SNS를 통해 신상이 까발려지고, 방송에서는 용의자를 추적해나가며 마녀사냥의 불을 지핀다.
ⓒ 제인앤유, 컨텐츠 1986/ 씨네룩스
영화가 주목하는 건 누가 범인이며 왜 살해당했는지가 아니다. 용의자로 떠오른 직장동료가 어떻게 SNS에서 난도질당하며, 이를 기성 보도매체들은 어떻게 부추기고 있는가를 통해 현대판 마녀사냥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도 관심갖지 않던 평범한 여성이 순식간에 악마처럼 묘사되고 사생활과 유년기의 행적까지 그럴싸하게 보이는 거짓 추리를 통해 더욱 뒤틀리는 과정을 보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여론이란 괴물앞에 한 개인은 얼마나 나약하고 작은 것인가를 느끼게 한다.
영화 [고백]으로도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원작을 영상화한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매체로 떠오른 SNS의 폐해와 시청율을 목표로 여과되지 않는 의혹을 부풀리는 방송의 무책임함을 폭로한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같은 사건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라쇼몽]식 서술 트릭 기법을 이용한 전개방식도 흥미로우며 결국 '인간은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말한다'는 극 중 인물의 대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의 히로인인 이노우에 마오는 [꽃보다 남자]의 달달한 이미지를 벗고 소심하며 내성적인 피의자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더불어 실제 트위터를 실시간을 보는듯한 화면으로 구성된 전개 방식도 제법 신선하다. 자신이 트위터 중독자라면 꼭 봐야할 필견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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