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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아웃 - 21세기 형설지공의 현주소

영화/ㅂ 2013. 10. 21. 09:00 Posted by 페니웨이™

 

 

 

고전이 되어버린 1951년 영화 [지구 최후의 날]에서 외계인 클라투는 지구인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지구의 전기가 30분간 정지되는 상황을 만듭니다. 고작 30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이 시간동안 전 세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또 한편의 영화 [트리거 이펙트]는 어느날 갑자기 전기가 끊겼을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스릴러물입니다. 이 작품 역시 며칠동안 전기가 끊기는 것 만으로도 상상못할 비극이 벌어지는 미국 사회를 그려내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영화였지요.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더웠던 한 해였습니다. 뉴스에서는 기상 기록 경신에 대해 거의 매일 같이 보도했고, 최악의 전력대란을 우려한 정부 차원에서 냉방 자체를 촉구하는 캠페인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기도 했죠. 여름만 되면 시민들을 협박하다시피해 전기 사용을 줄이도록 요구하는 행정당국의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하는 EBS 국제다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블랙아웃]은 천연자원이 풍부해 서아프리카의 저수지라 불리는 기니의 현실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밤만되면 전기가 끊기는 블랙아웃이 일상화된 기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포커스를 맞춥니다. 학교가 끝나고 저녁이 되면 과제나 시험공부를 위해 불빛이 있는 곳을 찾아나섭니다.

그곳은 주유소나 공항같은 시설입니다. 학생들은 유일하게 밤에 빛을 비추는 이 곳을 찾아 수 킬로미터씩 이동하여 21세기판 형설지공을 실천합니다. 여학생들은 강간이나 폭행 등 각종 범죄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 먼길을 오가야 하는데,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건 이들에게 있어 공부만이 이 현실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 Animal Monday, HSI London, Odd Girl Ou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1990년대만 하더라도 기니에서는 전기가 끊기는 일은 없었답니다. 그러나 오랜기간 독재와 내전, 부정,부패 등으로 정치적 불안에 시달린 기니는 결국 발전소 부품 수급이 어려워질만큼 제정이 악화되었고 결국엔 저녁에 전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게 됩니다. 국민들은 통치자를 뽑아줄 때마다 이번에는 믿을 수 있거라는 희망을 갖지만 결국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렇게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고 있지요.

아이러니한 사실은 기니가 원자력 발전의 근간이 되는 우라늄의 생산국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우라늄을 채취해 가는건 기니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부유국들의 거대 회사이며, 그 혜택은 기니 국민들에게 전혀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국가의 자원이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이렇게 형설지공의 학구열을 불태우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어 대학진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인데, 유학갔다 온 아이들은 취직이 수월하지만 국내 대학졸업자들에게는 그나마 취업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치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 Animal Monday, HSI London, Odd Girl Out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이같은 기니의 현실은 그저 제3자의 입장에서 강건너 불구경하듯 눈요기로 삼을만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들의 현실이 놀랄만큼 우리와 흡사하기 때문이지요. 지금 현 시점에서 우리 중 누구도 한국에서 전기없는 저녁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2011년, 불시에 찾아온 '블랙아웃'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서두의 영화화 같은 끔찍한 사태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해프닝은 블랙아웃이 남의 일이 아니라 실제 우리에게 벌어질 수 있는 '현실'임을 절감케 했습니다.

[블랙아웃]은 국가의 시스템이 망가지고 정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수많은 국민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를 고발하는 작품입니다. 개인의 힘만으로는 결코 바뀔 것 같지 않는 이 현실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끈을 놓치 않고 어두운 조명 불에 한 글자라도 더 읽으려는 아이들의 모습이 못내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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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oun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편한 진실에서는 마지막에 대안을 제시하는 반면 블랙아웃에서는 그 대안조차 제시되지않고 너무나 현실적이라 마음이 먹먹하네요

    2013.10.21 12:39
  2. <투머로우>김기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잖아도 이번에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다녀오신 의사 샘 인터뷰를 실었습니다.
    돈 몇백 원짜리 약이 없어 목숨을 잃어야 하고,
    상처 부위에 물 한 바가지 부어주는 간단한 치료로
    얼마든지 병을 낫게 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인들이 워낙 무지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손가락만 빨고 있다지요.

    과거 그들을 지배했던 서구 열강 등이
    국민들 간에 갈등을 조장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도 한다고...
    한국에 태어난 게 새삼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2013.10.21 13:32
  3. 칼있으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회도 참 병들고 문제점 투성이긴 하지만 이런 국가에 태어나지 않은게 천만다행 이군요...쩝
    그냥 학구열에 불타는 학생들이 아니라 거의 인생의 전부를 공부에 걸어야 하다니...아 줄거리만 들어도 막막하군요..

    2013.10.21 17:20
  4. 강냉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거 보면서 정말 남의 일같지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부패, 빈부격차, 교육부재, 취업난.... 한국이 그저 조금 더 잘살고 있을 뿐이더군요. 옛날엔 필리핀이 한국보다 더 잘살았다죠? 앞일은 누구도 모르는 법입니다.

    2013.10.21 17:47
  5. 케르베로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게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이겠지요.

    픽션이 아니라서 더욱 절망스러운 게 현실이니까 말입니다.

    다른 분들께서 이미 지적하신 것처럼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더 소름끼칩니다.

    결국 신분 상승의 유일한 끈은 고학력 전문직이니까요. 복지, 부정부패 없는 정치, 사회 시스템,

    이걸 무슨 이상론이나 시혜로 착각하는 정치인들이 대한민국 최대의 적이고

    투기적 집값 상승 떡밥에 낚여서 부화뇌동하는 노땅 세대들이 다음의 적이지요.

    기니가 안됐다는 것보다, 자국을 향한 비판으로 돌아서게 되는 게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는 양날의 칼이 아닐까 싶네요.

    2013.10.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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