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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 감성적인 스페이스 오딧세이

페니웨이™ 2014. 11.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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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이 영화가 무슨 과학적 고증이니 영화를 찍다가 논문까지 발표하게 되었다느니 하는 식의 홍보방식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자칫 영화가 극사실주의적인 과학영화로 인식된다면 관객들은 영화에 드러나는 비논리적인 부분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니까요. 물론 영화의 흥행이나 흥미유발을 위해서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은 있습니다만 작품의 본질을 호도하는 정도에 이르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다크 나이트]에서 보여주었듯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스타일이 리얼리티에 바탕을 두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터스텔라] 역시 이런 스타일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현실 속에 있을 법한 그럴 듯 함, 허구이긴 하나 이만하면 허황되지 않는다는 느낌에 더 가까운 유사 리얼리즘이죠. 엄연히 다큐멘터리적인 현실감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다른 영화평을 찾아보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콘택트],[그래비티]같은 선배 SF 영화들의 제목이 자주 거론됩니다. 그만큼 [인터스텔라]의 소재나 이야기의 구성 자체가 신선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인터스텔라]의 미래 세계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룬 대부분의 영화가 그러하듯 암울합니다. 인류는 무언가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주로 눈을 돌리게 되고 때마침 그 계획을 수행할 주인공이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합니다. 인류가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찾기 위해 주인공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뒤로 하고 기약없는 우주탐사의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이 우주탐사에서 관객은 웜홀이나 블랙홀 상대성 이론 등 말로만 들어왔던 물리이론들에 대한 실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그것이 영화에서 주장하는 과학이자 실제처럼 포장된 허구인 셈이죠. 이 허구라는 말을 저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려는 것이 아닙니다. 허구이긴 하지만 대형 화면을 통해 경험하는 허구의 천체물리학은 굉장한 경험입니다. 이미 [그래비티]를 통해 우리는 유사한 우주의 신비를 경험하긴 했으나 [인터스텔라]의 경험은 훨씬 더 광범위한 차원입니다.

ⓒ Legendary Pictures, Lynda Obst Productions, Paramount Pictures . All rights reserved.

[그래비티]가 조난을 당한 한 인간에게 주어진 척박한 환경으로서의 우주를 묘사했다면 [인터스텔라]의 우주는 인간이 개척해야 할 미지의 신세계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맞닥드렸을 때의 황홀함, 경외심이 모두 담겨 있지요. 따지고 들어가보면 여러 헛점이 있겠지만 굳이 그걸 들추지 않더라도 우주를 소개하는 방식이나 표현 모두가 매우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진정한 핵심인 감성적인 부분 즉 가족애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영화가 꽤나 흔들린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엄연한 블록버스터입니다. 기존의 [다크 나이트]나 [인셉션]이 다른 블록버스터가 지니지 못한 놀란 특유의 거대한 서사와 뚝심있는 연출력으로 모든 단점을 커버했음을 떠올려 보면 감성적인 부분이 더 많이 노출되는 이번 작품에선 상대적으로 이러한 단점들이 더 크게 보입니다.

이를테면 전반부가 너무 장황하고 길며, 액션이 극히 절제되어 있는 점 등이지요. 이러한 놀란의 성향, 액션의 임팩트가 약하고 뚜렷한 기승전결식 전개를 쓰지 않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에겐 어필할 수 없는 부분일 겁니다. 여기에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과학적 고증이란 수식어가 만들어내는 기대감에 의해 실망하는 관객들도 생기겠지요.

저는 [인터스텔라]가 크리스토퍼 놀란에게 있어 실험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전 세계가 주목하는 거장의 위치에 다가간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아직 ‘진짜’ 야심이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보단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만드는 일에 더 몰두하는, 그래서 자기가 잘 하는 것에 집중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그 실험이 아직까지는 대중과 크게 거리감을 두고 있지 않다는 점에 '매우' 안도하고 있습니다.

P.S

1.예상치 못한 네임드 배우들이 막 튀어 나오더군요. 매튜 맥커너히나 앤 해서웨이, 제시카 채스테인만이 전부라고 생각치 마시길. 확실히 놀란은 좋은 배우를 선별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더 놀라운 건 이런 배우들을 주연이 아닌 조연급으로도 막 굴릴 수 있는 능력이지요.

2.시간의 상대성에 대한 설정만큼은 안노 히데아키의 [톱을 노려라!]만큼 화끈하고도 충격적인 경험을 넘어서진 못하더군요. 그래도 [인터스텔라]는 최대한 그에 근접한 경험이었습니다.

3.영화가 굉장히 진지하고 때론 울적한데, 그 와중에 깨알같이 삽입된 영국식 유머는 정말이지… 놀란 형제의 영화니까 가능한 것이겠지요.

4.허구이긴해도 [인터스텔라]의 과학적 고증은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닙니다. 영화의 토대가 된 물리학 이론을 알고 보느냐, 모르고 보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해하기 어렵고 분석적인 과학적 지식을 대중적인 텍스트인 영화에 표현하기 위해 영리한 방식으로 시각화 시킨겁니다. 저도 천체물리학 지식은 미약하기 그지없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정말 경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을 보여주더군요.

5.전 대니 보일의 [썬샤인]이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막판에 삽질만 좀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하드 SF의 명작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는데요.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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