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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신들과 왕들 - 출애굽기의 인본주의식 해석

페니웨이™ 2014. 12.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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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갓난아기가 대학살을 살아남아 학살을 자행한 이집트 왕실에서 자라나고 훗날 성인이 된 그 아이가 신의 계시를 받아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성서 ‘출애굽기’의 내용은 널리 알려진 사건입니다. 영화계에서는 [십계]로 더 이상의 사족을 달 수 없을 정도로 완성된 작품을 만든 바 있지요.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는 이를 재활용한 수준이었고요.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니만큼 이를 새롭게 해석한다는 건 큰 부담입니다. 이미 대런 아로노프스키의 [노아]가 소모적인 논쟁에 휩싸인것 처럼 종교적인 사건을 가공하는 일에는 늘 시련이 뛰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나마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이 기대를 모았던 건 고전 서사극에 일가견있는 명장 리들리 스콧이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일 겁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라면 뭔가 거장의 이름에 걸맞은 결과를 내놓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있었으니까 말이죠.

결론부터 말해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그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영화입니다. 서사도 밋밋하며 인물들의 갈등 구조도 단순화되어 잘 짜여진 드라마로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기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혹자는 성서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라가 헐리우드 자본을 쥐고 있는 유대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고까지 표현하더군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관점에서 조명한 출애굽기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주요 사건의 발생은 모두 성서의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이 영화는 많은 사실관계(적어도 성서의 기록을 팩트라고 보는 관점에서)에 있어 적지 않은 왜곡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령 모세가 우발적인 도망자가 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당한다는 점, 신의 계시를 받은 후 람세스와 담판을 짓는 과정에서 그의 형 아론의 역할이 삭제되었다는 점, 미리암과 더불어 모세의 유년기에 그의 생모가 유모 신분으로 함께 지냈다는 사실이 빠진 점, 파라오가 남아 살육을 지시하고 이 과정에서 모세가 살아남는 상황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 등 수많은 사실들이 교묘히 왜곡되어 있거나 은폐되어 있지요. 

ⓒ Chernin Entertainment, Scott Free Productions, Babieka. All rights reserved.

오히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밀물과 썰물의 자연현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나 이집트인 해설자
(?)가 등장해 열가지 재앙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끼워 맞추는 장면 등 여러 면에서 이 영화는 출애굽 당시의 벌어진 초현실적인 현상에서 신의 역할을 배제하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절대자의 이름인 여호와는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지요) 신을 어린아이의 형태로 의인화 시켜 모세의 미숙한 이중적 자아처럼 모호하게 처리한 것은 모세라는 인물이 과연 실제로 신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인지, 아니면 단순히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인지 관객에게 선택지를 제시하는 시도로 보입니다.

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의도 때문인지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도저히 불가능한 에피소드는 역시나 과감히 생략해버리는데,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해 이집트 주술사들의 뱀을 모조리 먹어버리는 사건이나 파라오 군대의 맹추격을 받을 당시 광야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호한 점 등은 전부 빠져있습니다. 만약 리들리 스콧이 성서 원전에 충실하길 원했다면 오히려 드라마틱하고 시각적 스펙터클을 살리는데도 훌륭한 소재가 될 수 있는 이런 장면들을 굳이 뺄 이유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이런 시도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는데, 가령 열가지 재앙의 9, 10번째 재앙과 같이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들은 여전히 신앙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감독의 연출이 일관성있게 전개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맙니다. 입맛대로의 편집때문에 극의 흐름도 부자연스럽고요. 결국 감독 나름대로는 출애굽이라는 상황설정을 통해 종교와 신앙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지극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여주려하지만 감독 스스로의 모호한 종교적 입장 때문인지 영화도 그러한 스탠스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적지않은 분량의 서사를 제한적인 시간안에 다루기 위해 꽤나 빠른 전개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인물간의 관계가 기존의 [이집트 왕자]식 라이벌 구도에만 안주하다보니 드라마적인 재미가 반감되어버린 건 가장 큰 아쉬움입니다. 좋은 배우와 스케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서 전체에 걸쳐 가장 흥미진진한 소재를 썼지만 종교인, 비종교인을 떠나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는 어느 쪽이든 만족시키기 어려운 작품입니다.

P.S

1.토니 스콧을 위한 추모작이더군요. R.I.P

2.시고니 위버나 벤 킹슬리 같은 좋은 배우가 왜 이리 소모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입니다.

3.본문에서 많은 생략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중에서도 모세가 태어난 시점에 자행된 파라오의 남아 대학살 장면이 빠진 건 좀 그렇더군요. 람세스가 10번째 재앙 이후 '도대체 어떤 백성이 그런 신을 섬기느냐'고 표현했지만 실은 이집트의 모든 장자를 죽인 그 재앙이 자신의 선대 파라오가 저지른 죄악의 업보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신의 무자비하고 잔인한 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에 치중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달까요. 저는 람세스의 그 대사가 감독이 말하려는 핵심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습니다. 적어도 서로 공평한 입장에서 이 주장을 하고 싶었다면 영화는 양쪽 모두를 보여주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확실히 비교적 근래에 들어 가장 잘 만든 종교영화는 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인 것 같습니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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