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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트 오브 킬링 - 학살의 가해자와 함께 떠나는 순례

페니웨이™ 2014. 11. 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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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의외다. 1년이나 지난 작품을, 그것도 흥행성과는 거리가 먼 다큐멘터리인데다 무엇보다 현 정부의 성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 영화를 이제서야 개봉하다니.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공산주의자 대학살을 다룬다. 1965년에 발생한 G30S 쿠데타 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로 몰고간 수하르토 정권의 흑색선전으로 인해 1백만명 이상의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명목상의 공산주의자 숙청이었으나 실제로는 이념이나 사상과는 무관한 사람들이 상당수 포함된 참극이었다.

수하르토 정권이 붕괴된지 한참의 시간이 흘렀으나 살육을 진두지휘했던 당사자들은 단죄는 커녕 현재도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과거 자신들이 행한 범죄를 영웅시하며 말이다. 학살을 자행한 조직은 '판차실라 청년회'로 불리는 사병 단체로 발전해 극우파 행동 조직으로서의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펜하이머 감독은 당시의 학살에 대한 밀착 취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대신에 [액트 오브 킬링]은 기발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학살의 내면을 들춘다. 희생자가 아닌 가해자의 시선에서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기로 한 것이다. 감독은 학살에 관여했던 사람들에게 '당신들의 업적을 기리는' 재현하는 영화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인 대학살의 장본인들은 신이 나 있다.

ⓒ Final Cut for Real, Piraya Film A/S, Novaya Zemlya. All rights reserved.

폭력과 불법적인 수단으로 돈벌이를 하던 '극장 갱스터'로 시작해 학살의 선봉에 섰던 안와르 콩고는 겉보기엔 맘씨 좋은 노인네다.[각주:1] 영화 초반, 그들이 어떤 식으로 학살을 자행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무 거리낌없이 효율적으로 고안해 낸 살해 방법을 알려주며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레 얘기한다. 죄의식과 후회라고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콩고와 그 동료들의 무용담(?)을 듣자니 소름이 끼친다. 마치 장난을 하듯 학살을 재현하고 과거의 행적에 대해 서슴없이 말하는 그들의 대화에서 당시 벌어졌던 학살극의 참상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그 끔찍한 상황과 대비되는 가해자들의 평온한 모습은 더욱 무시무시하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을 넘어설 무렵, 변화가 일어난다. 그간 어떠한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던 안와르 콩고가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평생 양심의 소리를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인지, 아니면 그 순간 갑자기 생겨난 것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희생자들을 목졸라 죽이던 장소에서 상황을 재현했던 그는 더 이상 같은 장소에서 웃지 못한다. 괴로움에 사무쳐 구역질을 해대는 콩고의 모습은 가히 드라마틱한 반전이다.

[액트 오브 킬링]의 내러티브는 상당히 독특하다. 스스로를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학살의 재연이라는 과정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그럼에도 또다시 이를 정당화하는 과정을 비춘다. 영화는 희망을 암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울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애국이라는 허울좋은 구실로 포장된 악행의 발자취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담한 발상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오펜하이머 감독은 결국 희생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도네시아의 비극을 카메라에 담아내는데도 성공했다. [액트 오브 킬링]의 속편인 [침묵의 시선] 또한 이 작품과 함께 감상해야 할 필견의 영화다.
 

*  본 리뷰에 사용된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해당 저작권자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단, 본문의 내용은 작성자에게 저작권이 있습니다.


 

  1. 안와르 콩고가 직접 살해한 사람의 수는 어림잡아 천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말이 천명이지 어지간한 연쇄 살인마는 명함도 못내밀만한 숫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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