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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처음 갖게 된 PC는 삼성에서 출시한 SPC-1000이라는 제품이었는데,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장장치로 카세트테이프레코더를 사용했던 특이한 녀석이었다. 뭔 게임을 할라치면 30분 정도의 로딩시간을 기다려야하는 실로 엽기적인 물건이었다. 당시 PC계는 대세였던 애플 II와 MSX, 그리고 마이너리거였던 SPC로 구분되었는데, 왜 하필 우리집은 SPC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여튼 이 녀석은 하등 쓸모없는 애물단지였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그 당시 가정용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당연하게도) 주로 게임이었다. 하지만 롬팩 형태의 값비싼 MSX 소프트웨어 대신 플로피 디스크로 값싸고 간편하게 복사해 쓸 수 있는 애플이 상대적으로 더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내 주변에도 게임에 특화된 MSX대신 애플 II를 보유한 집이 많았다. [카멘샌디에고는 어디에?]를 비롯해 [카라데카], [울티마 IV], [아콘], [레스큐 레이더스], [스파이 대 스파이] 등 실로 주옥같은 명작들을 접한 것도 대략 이 시기다. (물론 몇몇 MSX 기기는 플로피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주로 롬팩을 사용했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러하듯 아주 단순한 게임이 아닌 담에야 오늘날 공략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해법이 필요한 법. 특히나 [울티마] 시리즈 같은 경우는 공략집 없이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어서 이러한 공략은 당시 게이머들 사이에서 매우 유용한 자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최초로 공략집이 나온 게임은 무엇일까?

아마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초창기 PC업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컴퓨터 잡지인 <월간 컴퓨터학습> 1984년 1월호에서 "제비우스 1000만점 돌파, 비법 공개"라는 제목의 권말부록으로 나왔던 것이 그 시초가 아닌가 싶다. 당시 오락실에서 초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제비우스 공략에 관한 나름의 기획기사였던 것이다. 

한편 PC게임을 전문적으로 파헤친 건 같은 해 11월호에서 창간 1주년 특집 게임분석이라는 기사로 [로드 러너](당시 표기는 로우드 런너)를 실었던 것이 최초의 PC 게임 리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게임은 미국 일렉트로닉스 게임지 선정 1983년 최우수 컴퓨터 게임으로 선정되었는데, 단순한 인터페이스의 탈출게임이지만 플레이어 스스로가 각 스테이지를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다는 최대의 장점이 있었던 기념비적인 게임이었다.

 

[로드 러너]의 게임 리뷰를 기점으로 <월간 컴퓨터학습>은 매월 인기 게임의 분석기사를 정기적으로 게재했고, 보다 딱딱하며 전문적인 느낌을 주었던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는 달리 대중적인 컴퓨터 월간지로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애플용 게임을 위주로 분석했지만 차차 MSX용 게임도 다루면서 점자 저변을 넓혀갔는데, 분석한 게임의 분량이 제법 늘게 되면서 마침내 1986년 8월, 국내 최초의 리뷰 모음집을 별책부록으로 내놓았다. 아래의 사진은 바로 그 리뷰 모음집으로 어머니의 손에 학살된 수많은 만화책과 미니백과들의 비명횡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기특한 녀석이라 하겠다.

먼저 첫번째 게임으로는 앞서 언급한 [로드 러너] 리뷰가 실렸고, 다음으로 [팔레스타인 보물찾기], [태양의 가면], [울티마 III: 엑소더스] 등 당대 이름을 날렸던 쟁쟁한 게임의 분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글은 바로 [울티마 IV]였는데, 이 리뷰에는 시리즈 1편부터의 모든 배경 스토리가 상세하 기술되어 있어서 [울티마]라는 게임의 방대한 세계관과 드라마틱한 구성이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에는 몇몇 MSX용 게임의 분석기사가 실려 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왕가의 계곡]이나 [레릭스] 같은 게임 등이 눈에 들어 온다. 지금봐도 참 정겨웠던 게임들이다.

이후로 <월간 컴퓨터학습>은 IBM이 대세가 되었던 1990년에 <마이컴>으로 이름을 바꾸어 재창간 형식으로 계속 발행되었고 게임 리뷰 또한 분량을 대폭 늘렸다. 그러다가 PC용 게임이 호황을 맞이한 1993년 무렵에는 <게임컴>이라는 별도의 부록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가정용 PC의 급격한 보급을 맞이해 컴퓨터 관련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쏟아졌고, 여기에 게임만을 전문으로 다루는 게임리뷰 전문지가 등장하면서 <마이컴>은 서서히 갈길을 잃고 1998년 IMF로 민컴 출판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폐간하고 만다.

아쉽지만 내가 즐기던 PC게임이 시들해져간 것도 대략 이즈음인 것 같다. 그래픽도 좋아지고 비주얼이 화려해진 게임들이 속속 등장했지만 내게는 여전히 명령어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했던 시에라의 어드벤쳐 시리즈나 스컴바 방식의 루카스 어드벤쳐 게임이 훨씬 더 정겨웠으니까.

지금은 영화블로거로 자리잡았지만 한 때는 고전게임 전문 리뷰어가 될까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처음 발간된 것도 게임관련 도서였었다. 20년전쯤 에이스출판사라는 곳에서 소리소문도 없이 시에라의 [폴리스 퀘스트 4]의 공략을 겸한 영어 학습책을 출판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머릿말을 써준 게 바로 나였다. 지금 읽어보면 좀 오글오글한 글이지만 어쨌거나 책 한 부분에 내 글이 실렸다는 사실만으로도 뿌듯해하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레트로 게임에 대한 추억을 되새기니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게 새삼스레 와 닿는다. 여러모로 풍족해진 인터넷 디지털 세대의 아이들은 결코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할 그 시절의 촌스러운 기억들은 여전히 내게는 소중하다. 서재 한켠에 꼼꼼히 스크랩해놓은 고전 게임 분석글이 수북히 쌓여있는걸 보니 괜시리 흐뭇하다.

Inspired by 007 Stealth Affiar의 기억

 

P.S: 게임에 대한 썰을 풀고 나니 갑자기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졌다. 비정규적이 되겠지만 아마도 [게임의 추억]이라는 코너로 종종 레트로 게임에 대한 글을 올리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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