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미국계 슈퍼히어로들의 전성시대다. 몇 년전 까지만해도 ‘아이언맨’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아이언맨]의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내한했을 때도 누구 하나 공항에 마중나가지 않았던 한국에서 이젠 마블이나 DC 코믹스의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을 쉽게 사서 볼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면에서 본다면 긍정적인 신호다. 좋든 싫든간에 이제 미국의 슈퍼히어로물은 글로벌적인 문화가 되었고 수십년간 이어져 온 그 거대한 팬덤의 즐거움을 마땅히 즐길 권리가 우리에게도 있다. 허나 안타까운 점도 없지 않다. 상대적으로 넘쳐나는 외국 슈퍼히어로와는 달리 한국의 토종 히어로라고 불릴만한 캐릭터를 접할 길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각시탈]이나 [주먹대장]과 같은 추억의 슈퍼히어로들이 간간히 복간되고 있긴 하나 산호 화백의 [라이파이]나 김종래 화백의 [백가면], [황금가면] 시리즈 같은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만화를 천시하는 풍조의 영향으로 홀대받아 더 이상 원고가 남아있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 시절의 문화소비자들이 자신이 즐겼던 그 콘텐츠를 자손에게 물려주고픈 의지가 박약한 탓도 있으리라.
그리고 또 한가지의 원인을 찾자면 7,80년대의 창작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연루되어 현재까지 평가절하의 대상이 되고 이유, 바로 표절시비다. 일례로 [황금날개 123]은 한국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 캐릭터이지만 [로보트 태권브이]와 더불어 항상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비판의 도마위에 올랐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실제로 초능력을 받게 된 소년이 충복인 야수형 로봇과 거대로봇의 수호를 받는다는 설정면에서 보자면 요코야마 미쯔테루의 [바벨 2세]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황금날개 3호인 청동거인의 초기 디자인은 [게타로보]의 겟타드래곤과 거의 유사하다. 스토리적인 측면과는 별개로 이러한 외형상의 문제점은 작품의 가치를 퇴색시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요즘 젊은이들에겐 생소할 [황금날개 123]은 적어도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많은 작품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대표적인 슈퍼히어로로 군림했었다. 비록 애니메이션으로는 [황금날개 123]과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 단 두편으로 끝이 났지만 코믹스판으로는 훨씬 더 많은 시리즈를 양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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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기초해 코믹스판을 작업한 [로보트 태권브이]와는 달리 [황금날개 123]은 김형배 작가가 먼저 코믹스판으로 내놓은 작품이다. (<우리만화 가까이 보기>(만화평론가협회 저, 눈빛) 참조) 최초의 코믹스 버전인 [황금날개 123]은 캐릭터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애니메이션판과는 다르며 몇몇 설정과 스토리의 전개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결과적으로는 이 최초의 작품이 [황금날개] 시리즈 중에서도 상당히 이질적인 작품이 되어버렸는데, 이후의 작품들은 전두효 작가의 [황금날개와 공룡군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애니메이션판의 설정과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연유로 [황금날개 123] 이후 발표된 [무적의 용사 황금날개]는 본격적으로 코믹스만의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선보인 첫번째 완성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외계에서 온 소년 모토가 고향인 오디오별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대해 알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황금날개와 뚝심이 일행이 직접 나선다는 단순하면서도 전형적인 장르물의 구성을 지녔다. 1권짜리 작품이다보니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하지 못해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그리 탄탄한 편은 아니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캐릭터 디자인은 김형배 작가의 [황금날개 123]의 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의 로컬라이징을 시도했던 김청기 감독의 애니메이션판을 따라가고 있어서 전작에서 문제시되었던 표절부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지만 악당로봇인 허수아비 3호의 경우 [대공마룡 가이킹]을 쏙 빼닮았는데, 이와 같은 캐릭터 디자인에서 별다른 작가적 고민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한국형 슈퍼히어로, 더 나아가 한국 만화계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다.
ⓒ 김형배.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흥미롭게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악당, 브라토의 직업이 왕궁의 음악재상이라는 점과 그가 이용하는 힘의 원천이 신비의 파이프 오르간을 통해 나오는 음악이라는 점은 제법 독특한 발상이다. 또한 김형배식 스타일로 리폼이 이루어진 황금날개 1,2,3호의 디자인은 세월이 흐른 요즘 기준으로 보아도 나무랄데 없이 세련된 모습이다. 비록 오리지널 캐릭터로 보기엔 2%의 아쉬움이 존재하지만 모방과 창조의 사이 그 즈음에 위치한 황금날개의 매력은 좀처럼 평가절하시키기에 아까운 부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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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 용사 황금날개] 이후 김형배 작가는 [지구호와 황금날개],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 [우주의 도전자 황금날개] 등을, 차성진 작가는 [황금날개와 로보트태권브이의 대결], [뚝심이 삼총사와 황금날개], [황금날개 대 왕거미]를, 전두효 작가는 [황금날개와 공룡군단]을 각각 발표하면서 ‘황금날개’는 ‘로보트 태권브이’를 능가하는 다양한 작가군을 지닌 프렌차이즈 히어로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끊임없는 캐릭터 리모델링과 세계관의 확장으로 롱런할 수 있는 황금날개 프렌차이즈가 여느 만화 작품들이 그러하듯 발전없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다가 결국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원더우먼]에 착안한 필리핀의 여성 슈퍼히어로 [다르나 Darna](관련리뷰 바로가기)가 오늘날까지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지속적인 인기를 누린 것과는 달리, 과거의 기억속에서 늘 항상 함께 했던 우리의 슈퍼히어로는 그렇게 쓸쓸히 우리 곁을 떠나갔다.
* 이 글은 만화규장각에 기고한 컬럼을 블로그에 맞게 리뉴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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