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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리뷰(바로가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렌다이저]가 TBC를 통해 방영될 시점에 이미 국내에서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그렌다이저 관련 만화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과거 대본소용 단행본 [마진Z와 해저왕국]을 내놓았던 이덕송 작가의 [대철인과 정복자]이다. 이 작품은 그렌다이저와 아주 닮은 로봇을 쇠돌이(가부토 코우지)가 조종하는데, 정작 내용은 [그레이트 마징가]을 담고 있다.

ⓒ 이덕송 All Rights reserved.

 

TBC방영 이후에는 더 많은 작품들이 쏟아졌는데, 이를테면 이서방문고를 통해 발간된 오영한 작가의 [무적의 로봇다이저]나 김영철 작가가 각색과 그림을 그린 [그랜다이저]가 있다. [무적의 로봇다이저]는 나가이 고의 코믹스 버전을 개작한 것인데, 이 작품에서는 더블마징가가 탈취당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어 마징가 제트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를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었던 거의 최초의 국내판본이 아니었나 싶다.

ⓒ 도서출판 All Rights reserved.

 

또한 김영철 작가의 [그랜다이저]는 킹코라스호와 그렌다이저의 대결을 그린 작품으로 오다 코사쿠나 나가이 고의 작품과는 다른 방향으로 [그렌다이저]를 개작한 것이 특징이며, 이 에피소드는 훗날 해태제과에서 사은품으로 제공했던 해태 카세트 극장에서 음성드라마로도 다뤄진 적이 있다. 어렸을 때 왜 베가성인이 아닌 다른 적들과 그렌다이저가 대결을 펼치는지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현대코믹스에서는 안봉식-정문조 작가의 [달려라 인조인간 마징가 X]가 상,하 두권으로 발간되었다. 이 작품은 [그렌다이저]의 짝퉁 극장판으로 악명높은 [달려라 마징가 X]의 코믹스 버전으로 노골적으로 디자인을 완벽하게 표절한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코믹스 버전에서는 나름 살짝이나마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 All Rights reserved.

 

한국의 [그렌다이저]의 해적판 코믹스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발간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주된 공급 루트는 다이나믹 프로라는 희대의 출판사를 통해서였다. 양정기 작가의 [UFO 합체로보트 그렌다이저], [그렌다이저: 베가성 군단 대 암흑제왕], 전성기 작가의 [UFO 로보트 그렌다이저], 차아성 작가의 [황금불사조와 라이징가] 등이 쏟아져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양정기 작가의 작품은 오다 고사쿠 판을, 전성기 작가의 작품은 나가이 고의 작품을 가져온 것이며 ([UFO 로보트 그렌다이저]의 경우 [무적의 로봇다이저]와 동일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뢍금불사조와 라이징가]는 [독수리 5형제]와 [그렌다이저]를 교묘히 섞은 창작품이라는 점이다.

ⓒ 다이나믹프로 All Rights reserved.

 

이러한 [그렌다이저]의 역사 속에 무척이나 흥미로운 크로스오버도 탄생했다. 그 중 한 작품이 바로 이번 시간에 소개할 [로보트 태권브이 대 타이자]라는 작품이다. 먼저 이 작품은 다이나믹 프로가 콩콩코믹스 레이블 이전의 대본소 판본 시절에 발간한 것으로서 이케가미 료이치의 화풍과 비슷하기로 유명한 안제일 작가의 태권브이 시리즈 두 편 중 첫번째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로보트 태권브이 대 타이자]의 내용은 이러하다. 난공불락의 그렌다이저에게 번번히 당하기만 하던 베가성의 침략자들은 상황을 반전시킬 묘안으로 태권브이의 주 재료인 초합금브이를 털취하기 위해 광자력연구소를 습격한다. 하지만 초합금브이로 만들어진 태권브이를 일개 원반수가 이길 수는 없기에 공격을 주도한 코만 대위는 간신히 몸만 빠져나간다.

한편 타이자를 타고 훈련비행을 하고 있던 듀크프리드는 수상한 동굴에 들어가 탐색을 하던 도중 막대한 양의 초합금브이를 발견하고 우주과학연구소의 윤성에게 이 사실을 무전교신으로 알린다. 그러나 이는 큰 실수였으니, 그 초합금브이는 윤박사가 악당들 몰래 동굴속에 숨겨놓은 것이었고 때마침 근처에 피신중이던 베가성의 코만이 그렌다이저의 송수신을 도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듀크프리드의 실수로 초합금브이를 탈취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훈은 노발대발하며 듀크프리드와 절교를 선언하고 원반수와 맞서지만 대량으로 공습을 시도하는 원반수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사죄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훈의 태도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듀크프리드는 홀로 원반수 구리구리를 막아 서지만 초합금 브이로 만든 구리구리의 위력에 위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로보트 태권브이 대 타이자]는 한국의 태권브이와 일본의 그렌다이저라는 초유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작품이다. 그렌다이저는 타이자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추측컨데 [우주원반 대전쟁]의 메인 로봇인 갓타이가의 '타이가'를 따와서 '타이자'로 변용시킨것이 아닌가 싶다.

 

안제일의 화풍은 동시기 태권브이 만화를 그렸던 차성진이나 김형배 작가와는 또다른 개성을 보여주는데, 훈이와 영희를 비롯한 주인공은 작가 특유의 극화체로 리모델링 되었고, 태권브이의 디자인은 보다 곡선의 미를 가미한 형태를 띈다. 또한 주인공들을 제외한 [그렌다이저]의 단페이 영감이나  그 밖의 조연들은 애니메이션판의 디자인을 그대로 재현했다. 작화의 퀄리티는 나가이 고나 오다 고사쿠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편이며 마치 이케가미 료이치가 그린 [그렌다이저]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아쉬운 건 스토리적인 부면이다. 태권브이와 그렌다이저의 불법적인 만남(?) 이라는 빅 이벤트를 성사시켜 놓고도 듀크프리드가 초합금브이를 발견하게 되는 경위의 개연성이나 듀크프리드와 훈이의 갈등구조가 해소되는 방식 등이 너무 미흡해 작품의 눈높이 자체가 딱 어린아이들 수준에 맞춰진 느낌이다. 이러한 스토리상의 문제점은 후에 안제일 작가가 내놓은 또 하나의 태권브이 코믹스에서 조금이나마 해소가 되는데, 이 작품에 대해서는 나중을 기약하도록 하겠다.

사실상 태권브이의 태생마저도 마징가제트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금, 이런 문제를 논하기에는 시대착오적인 것일지 몰라도 어쨌거나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로봇이 만나 사건을 풀어가는 발상만큼은 상당히 흥미진진한 만큼, 이같은 문화적 교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보다 긍정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 이 글은 만화규장각에 기고한 컬럼을 블로그에 맞게 리뉴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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