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에 있어서 기억속에 깊이 각인되는 영화 속 장면들이 있다. 가령 [용쟁호투]의 이소룡이 현란한 쌍절곤 묘기를 선보이는 장면이나 [십계]에서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 최근에 와서는 [트랜스포머]의 고속도로 변신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필자는 여기에 1983년작 미니시리즈 [브이]를 포함시키고 싶다.
[브이 V]는 NBC 방송에서 2부작 시리즈로 제작해 북미지역에서만 35%의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린 작품이다. 이듬해 후속편인 3부작 [브이: 최후의 전투]는 전작을 뛰어넘는 인기를 모아 전 세계에 [브이] 신드롬을 일으키게 된다. 총 5부작에 달하는 미니시리즈의 대성공에 고무된 제작진은 아예 이 시리즈를 TV 정규방송으로 편성해 19부작 드라마로 방영하기까지 했다.
ⓒ Kenneth Johnson Productions, Warner Bros. Television. All rights reserved.
국내에서는 1985년 8월 KBS 납량특집으로 처음 방영되었는데, 사실 부모님과 함께 이 미니시리즈를 TV에서 볼 때만해도 나는 작품이 어떤 류의 작품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외계인이 나와 지구인과 평화를 도모하는 그런 류의 SF일거라고 생각했다. 이는 [미지와의 조우]나 [E.T], [코쿤] 등 외계인에 대한 호의적인 묘사로 인한 일종의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인공 도노반이 잠입취재를 위해 우주선에 잠입, 외계인의 실체를 발견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만 전율을 금치 못했다. 이야기의 갑작스런 전환과 동시에 몰려오는 그 호러영화같은 서스펜스란! 이후 파충류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문화현상이라 할만큼 큰 이슈가 되었다. 훗날 [브이] 정규 시리즈가 툐요일에 방영되었을때에도 나는 MBC의 [출동! 에어울프] 대신 [브이]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1 비록 오리지널 미니시리즈에 비해서는 재미가 없었을 지라도.
당시의 관행이 그랬듯 화제작 [브이]는 만화로도 연재되었다. 당장 기억나는 것만 떠올리면 '월간 우뢰매'를 통해 연재되던 윤길 작가의 '브이'가 있었는데 사실 그림도, 내용도 별로 임팩트 있는 작품은 아니었는지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이내 연재가 종료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 월간 우뢰매.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또 하나의 [브이] 코믹스로 안춘회 작가가 그린 만화가 있었다. 단행본으로는 2권 분량으로 출간된 이 작품은 [브이] 5부작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용은 외계인과 지구인 사이의 평화협정이 맺어진 이후, 지구인 레지스탕스와 아직도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외계인 다이아나와의 끝내지 못한 대결이다. 주인공 도노반을 비롯, 줄리엣과 햄 테일러 등 주요 캐릭터들이 모두 등장하며 안춘회 작가가 특유의 화풍이 살려 리모델링했다.
ⓒ 향지서. All rights reserved.
원작이 된 [브이] TV 시리즈는 외계인 지도자의 최후나 지구의 운명에 대한 마무리 없이 급하게 종영되어 있는데, 본 만화에서는 다이아나가 탄 외계인 모선에 폭탄을 장착하는데 성공, 폭발과 함께 악의 원흉인 다이아나가 사망하는 것으로 화끈한 결말을 내린다. 당시에는 이런 류의 만화들이 자기 멋대로 내용을 바꿔버리는 일이 흔해 만화와 원작을 본 아이들 간에 서로 옥신각신하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 향지서. All rights reserved.
어쨌거나 지금은 보기 드문 B급 영역의 컨텐츠이긴 하나, 어떤 면으로는 저렇게 판권없이 미디어믹스가 이루어졌던 시절의 자유분방함이 가끔 그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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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이]에서 도노반 역을 연기했던 성우는 양지운이다. 하지만 [브이] TV시리즈가 방영될 시점에 MBC로 보금자리를 옮긴 그는 경쟁작인 [출동! 에어울프]의 호크 역을 맡았고, [브이]의 도노반 역은 이강식 성우로 교체된다. 참고로 [출동! 에어울프] 역시 한재규 작가가 그린 코믹스판이 연재된 바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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