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브이’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아마도 많은 분들이 김청기와 김형배를 떠오릴 것이다. 애니메이션쪽이 김청기 감독이라면 코믹스 버전은 단연 김형배 화백이었다.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을 시작으로 ‘로보트 태권브이: 수중특공대’, ‘로보트 태권브이 대 황금날개’, ‘로보트 태권브이와 깡통로보트’, 외전격인 ‘천하무적 깡통’ 등 김형배 화백이 내놓은 태권브이 관련 작품은 상당히 다양하다.
하지만 원래 ‘로보트 태권브이’ 만화를 그린 작가는 김형배 화백이 아닌 김승무 작가였다. 1976년 5월부터 <소년세계>에 연재된 이작품은 최초의 코믹스판 ‘로보트 태권브이’이지만 단행본 출시로는 이어지지 않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잠차 사라지고 말았다. 뒤이어 내놓은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역시 김형배 화백의 동명만화에는 오히려 인지도면에서 밀려나는 기현상과 함께 오늘날엔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 김형배, 도서출판 G&S. All rights Reserved.
김형배 화백의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작화의 퀄리티가 우수했던 때문인지 원조인 김승무 작가의 작품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김승무, 김형배 화백만이 태권브이 코믹스를 그렸던 것은 아니다. 1982년에 클로버 문고를 통해 발간된 ‘슈퍼 태권브이’는 김승연 작가의 작품이며 차성진 작가는 ‘황금날개와 로보트 태권브이의 대결’,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마왕’, ‘로보트 태권브이: 마이크로 결사대’,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 ‘로보트 태권브이: 지하결사대’ 등 김형배 화백에 못지 않은 작품을 내놓았다. 또한 안제일 작가는 ‘로보트 태권브이 대 타이쟈’, ‘로보트 태권브이 대 썬더A’를 그린 바 있다.
이중 순정만화작가로 더 잘 알려진 차성진의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는 다른 작품들 가운데서도 유독 주목할만한 부면이 있는 작품이다. 태권브이 클래식 4부작이나 ‘슈퍼 태권브이’ 같은 태권브이 만화들이 애니메이션에 기반을 둔 작품인 반면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는 애니메이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작품이 바로 [84 태권브이]다.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그럼 먼저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의 줄거리를 잠시 살펴보자. 아내를 여읜 후 연구에 몰두하던 오박사는 지구를 기습해 올 혹성인들의 공격에 대비해 캉가 1,2호를 완성시킨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지닌 캉가 1호는 ‘로보트 왕국’의 건설을 천명하며 박사를 살해하고 로봇들을 규합해 반란을 일으킨다.
한편 국제 지질학회의 요청으로 조개섬의 화산을 조사하러 온 훈 일행은 캉가 1호가 보낸 황금나비가 태권브이의 두뇌회로를 변경시키자 위기에 처하는데… 적의 편에 선 태권브이를 되찾고 캉가 1호의 야욕을 분쇄하기 위해 훈과 영희, 그리고 깡통로보트 철이의 모험이 시작된다.
스토리를 보면 알겠지만 사이보그의 완성과 반란, 그리고 태권브이의 탈취 및 적의 심장부로 침투하는 일련의 내러티브는 [84 태권브이]와 거의 유사하다. 실제로 기존 태권브이 애니메이션이 모두 코믹스 버전으로 발간된 것과는 달리 [84 태권브이]는 새소년의 별책부록으로 짧게 연재된 이래 별도의 만화책 단행본은 발매되지 않았는데, 이는 [84 태권브이]의 원작이 기출간된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임을 의식한 듯 하다. 또한 [84 태권브이]의 크래딧에서는 시리즈 중 유일하게 ‘로보트 태권브이와 로보트 캉가’의 각본 및 각색을 맡았던 양정기 작가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 (주) 로보트 태권브이. All rights Reserved.
차성진 작가가 그린 태권브이 만화의 특징은 남성적이고 굵직한 느낌의 김형배 버전보다 선이 좀 더 섬세하고 인물들의 화풍이 순정만화형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작화의 퀄리티 만큼은 수준급으로 일본의 A급 작가에 비해서도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본 작품은 태권브이 시리즈 중에서도 그간 개그를 전담했던 깡통로보트의 맹활약이 두드러지며, 태권브이보다 훈이의 비중이 더 크게 묘사되어 있다.
다만 창작적인 요소에 있어서 조금 아쉬운 부면도 눈에 띄는데, 가령 캉가 1호가 집합시킨 로봇들의 군집 장면에서 ‘마징가 제트’나 ‘아스트로 강가’, ‘아톰’ 같은 일본 캐릭터들이 눈에 띄는 것은 애교로 넘어가겠다. 그러나 최종보스격인 캉가 2호의 디자인은 ‘대공마룡 가이킹’을 그대로 배껴놓았다. 악당인 캉가 1호의 실루엣은 어딘지 모르게 황금날개 1호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국내 굴지의 로봇 프렌차이즈인 태권브이 만화가 일본의 마징가 시리즈처럼 꾸준히 재발간을 통해 전승되지 못하고 있는 건 이러한 표절코드의 오명 때문임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던 그 시절의 관행이 그저 원망스러울 따름이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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