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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스타일리스트, 토니 스콧의 작품세계

페니웨이™ 2012. 9. 18.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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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많은 영화인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 [보디 가드]의 히로인이자 가수인 휘트니 휴스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비롯한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의 극작가이자 감독인 노라 애프런, 거대한 덩치로 작품마다 큰 인상을 남겼던 배우 마이클 클락 던컨 등 아직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토니 스콧 감독의 죽음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안타깝군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살로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토니 스콧이 세상을 떠난지 한달 정도가 지난 지금, 헐리우드에서 그 누구보다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그의 작품들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토니 스콧은 형인 리들리 스콧과 함께 영국의 광고회사 RSA를 설립해 상업광고분야에서 연출경력을 쌓았습니다. 흔히들 ‘30초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CF감독의 스타일은 훗날 극영화로 진출한 그의 영화 세계를 지배하는 큰 특징 중 하나로 기억되지요. 형인 리들리 스콧이 좀 더 스케일이 크고 미학적인 영화에 일가견을 보였다면 토니 스콧은 빠른 편집의 감각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를 주로 만들었습니다.

토니 스콧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은 1983년 영화 [헝거]를 통해서였는데요, 까뜨리느 드뇌브와 데이빗 보위가 출연하는 이 작품은 그간 만들어진 뱀파이어물의 형식을 탈피해 감각적인 비주얼로 인간의 영원한 삶에 대한 갈망을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과 비평에서 그리 우호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데뷔 이후 3년만에 만든 두 번째 연출작은 토니 스콧에게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안겨준 작품이 됩니다. 바로 [탑 건]이었죠. 톰 크루즈의 출세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토니 스콧의 재능을 알아본 헐리우드의 마이더스 제리 브룩하이머가 맡긴 순도 100%의 상업영화로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스피디한 액션, 매력넘치는 젊은 배우들의 열연 등으로 당해년도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합니다. 비롯 첫 출발은 삐걱거렸지만 단숨에 그는 헐리우드의 유망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탑 건] 이후의 1980년대 중후반은 [블레이드 러너]의 실패로 긴 슬럼프를 겪던 리들리 스콧보다 동생인 토니 스콧이 훨씬 더 주목을 받았던 시기입니다. 하지만 [탑 건]의 성공은 오히려 토니 스콧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죠. [비벌리힐스 캅 2], [리벤지], [폭풍의 질주], [마지막 보이스카웃] 등 톱스타들을 기용한 일련의 오락영화들은 스타일리시한 요소들로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만 번번히 그에게 ‘CF감독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그러던 중 1993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큰 전환점이라고 할만한 영화를 만들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트루 로맨스]입니다.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페트리샤 아퀘트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각본을 쓴 작품이기도 한데요, 액션과 로맨스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간 유사 장르의 히로인에 대한 정형성을 과감히 깨고 콜걸과의 순애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90년대를 관통하는 청춘상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토니 스콧은 비로서 작가주의 정신이 살아있는 연출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죠.

2년 뒤인 1995년 그는 또 한편의 기념비적인 영화를 만들게 됩니다. 다시 제리 브룩하이머의 부름을 받은 그는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선상반란을 그린 [크림슨 타이드]를 연출하게 되는데요, 밀폐공간에서의 서스펜스를 극대화 시키면서도 이념과 원칙 사이의 딜레마에 대한 묘한 여운을 남기며 관객들을 사로잡은 영화입니다. 특히 폭력장면이 거의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남자들의 세계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만하죠. 잠수함 관련 영화로서는 [붉은 10월], [특전 유보트]와 함께 손꼽히는 걸작의 반열에 들어가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도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중견 연출자로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토니 스콧은 [더 팬],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스파이 게임] 등 굵직한 남성 액션 스릴러로 두각을 보입니다. 특히 진 해크먼이나 로버트 드 니로, 로버트 레드포드 같은 명배우들을 돋보이게 하는 그의 연출감각은 비주얼로 승부를 내던 초창기의 스타일에서 많이 달라졌음을 확인할 수 있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주로 덴젤 워싱턴과 작업을 합니다. [크림슨 타이드]를 통해 만난 덴젤 워싱턴은 어느덧 토니 스콧의 페르소나로 자리잡아, 둘이 함께 찍은 작품이 [크림슨 타이드]를 포함해 5편에 이릅니다. [맨 온 파이어], [데자뷰], [펠헴 123], 그리고 유작이 되어버린 [언스토퍼블]의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의 콤비는 꽤 좋은 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크림슨 타이드] 때만큼의 시너지효과를 내지는 못했습니다만 여전히 두 사람을 이름을 한 영화의 크래딧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임을 주었지요.

그가 만든 작품 중 거의 모든 영화가 액션 스릴러 장르라는 점도 주목할만합니다. 사실 비주얼 과잉이 드러나는 연출습관이 2000년대 작품에서도 조금 두드러지긴 합니다만 토니 스콧의 작품들은 스피디한 연출과 남성적인 무게감을 더해 전문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만들게 됩니다.

[언스토퍼블] 이후 토니 스콧은 [포츠담 광장]의 연출을 맡고, [탑건 2] 및 샘 패킨파의 [와일드 번치] 리메이크작에도 의지를 보였습니다만 결국 그의 투신과 함께 이 작품들의 미래는 불투명해졌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그가 남긴 20여편의 영화들은 헐리우드에 몸담으며 CF감독에서 전문 액션영화 감독으로 변신에 성공한 토니 스콧의 열정과 도전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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