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함

웹툰 세대의 스토리 텔러, 강풀 원작의 영화들

페니웨이™ 2012. 8. 15. 19:12
반응형

 

한 때 만화를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던 것이 붐이었던 시기가 한국에도 있었습니다. 그게 언제냐면… 아! 이현세 원작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부터죠. 이 때를 같이 해서 박봉성 원작의 [신의 아들]이나 이현세 원작의 [지옥의 링], 고우영 원작의 [가루지기], 허영만의 [카멜레온의 시] 등 무수한 국내 만화가들의 작품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때가 1980년대 중후반이었죠.

그러나 이 작품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어서 만화원작의 영화들은 점차 시들어져 갔습니다. 물론 이런 풍조의 저면에는 국내 만화시장의 침체라는 복병이 자리잡고 있긴 했지요.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웹툰이라는 새로운 만화시장이 문을 열게 되었고 신흥 만화가들이 ‘웹툰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서도 강풀은 단연 돋보이는 이야기꾼으로서 발군의 재능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편의 잘만든 영화를 보듯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기승전결의 연결이 매끄러운 그의 작품은 늘 화제에 올랐습니다. 그래서인지 강풀의 원작 웹툰은 영화소재로서도 인기가 높게 되었지요. 현 시점에서 동시대 웹툰 작가로서는 가장 많은 영화화를 이루었고, 현재도 진행중인 영화들이 줄줄히 대기중입니다. 이제 곧 강풀의 미스터리 심리 썰렁물 시즌 3을 바탕으로 한 [이웃사람]이 개봉되는데요, 그간 강풀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작품들을 한번 감상해 보겠습니다.

강풀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영화화 된 것은 [아파트] 였습니다. 미스테리 심리썰렁물 시즌 1으로 시작한 이 작품은 매일 밤 9시 56분이면 동 전체에 불이 꺼지는 아파트에 의문을 품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테리 호러물이지만 영화로 옮겨지면서 주인공이 여자로 교체되었지요.

한국 공포 장르물의 독보적인 존재인 안병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톱스타 고소영이 주연을 맡았지만 지나친 각색으로 인해 뛰어난 원작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패를 겪었다. 이로서 강풀 원작의 영화는 원작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영화적인 각색을 필요로 하는 지에 대한 딜레마가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강풀 원작의 두번째 영화 [바보]는 [아파트]의 실패를 거울삼아 이번에는 원작과의 괴리감을 최소한으로 만드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았으며 따라서 캐릭터 싱크로만 놓고 볼때는 원작의 90% 이상을 재현했을 정도로 우수한 캐스팅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주인공 승룡의 친구인 상수 역의 박희순은 원작자 강풀 스스로가 맞춤 배역이라고 자평할 정도로 기가막힌 싱크로율을 보여주었지요.

순정만화 시즌 2인 '바보'를 [동감]으로 한국적 멜로물의 쾌거를 이루었던 김정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의욕적으로 영상으로 옮겼지만 원작 웹툰과 거의 유사한 스토리 구조 및 캐릭터 묘사 등으로 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작의 정서보다는 이야기의 순서에 더 집착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실패작으로 남게 되고 맙니다.
 
세번째 작품인 [순정만화]는 앞선 두 작품보다 더욱 세간의 관심을 모은 작품입니다. 작가인 강풀의 저력을 세상에 알렸다해도 과언이 아닌 순정만화 시즌 1을 마침내 영화로 만든다는 점에서도 기대를 받았지요. 작가에게 각별한 의미가 담긴 원작인데다, 이미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강풀 원작 영화의 세번째 시도이니만큼 총 8명의 각본가가 투입되는 등 여러모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긴 합니다.

다만 멜로물 치고는 워낙 복잡한 플롯과 인물들간의 인과 관계를 보여준 원작의 특성상 불가피한 각색이 이루어졌는데, 원래 배경인 겨울이 여름으로 바뀌었고, 메인 캐릭터는 6명에서 4명으로 대폭 축소되었습니다. 주인공인 이연희를 비롯, 유지태, 채정안 등의 캐릭터 싱크로는 꽤나 훌륭한 편이지만 연기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닌데다 강인, 수영 등 가수출신의 비전문 배우를 중요한 배역에 배치한 것도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원작의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극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결국 흥행과 비평에서도 어정쩡한 평가를 받으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순정만화 시즌 3를 영화로 옮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기존의 강풀 웹툰과는 달리 노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무척 이색적입니다. 이전 세 편의 영화가 만족스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탓인지 이 작품에 대한 우려도 당연히 커질 수 밖에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역대 강풀 원작의 영화들 중에서 단연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이는 주연을 맡은 배테랑 배우 4인방의 노련한 연기와 원작에서 가져올 것과 버릴 것을 영리하게 분별해 낸 연출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신파와 유머가 고루 섞여있고, 청장년에서 노년까지 고루 동감할 수 있는 작품의 테마도 잘 살려내어 이제야 강풀 원작의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듯한 느낌을 선사한 작품으로 흥행에서도 제법 성공했지요. 그. 여파로 SBS에서는 이순재를 동일 배역으로 캐스팅 한 드라마판을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습니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통증]은 앞선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강풀 작가의 웹툰으로는 나오지 못하고 바로 영화화가 진행된 작품이거든요. 강풀 특유의 생생한 캐릭터가 인상적이고 촘촘한 이야기의 구조가 특징을 이루지만 뭐랄까 곽경택 감독의 굵직한 연출 스타일과는 조금 맞지 않았달까… 예측 가능한 이야기로 평범하게 풀어버린 완성도가 2% 부족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강풀 원작의 영화들을 살펴보았는데요, 흥행면에 있어서 썩 좋은 성적표를 받은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무로가 탐내는 작가인걸 보면 앞으로도 강풀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웃사람]을 비롯, 정치적인 이유로 우여곡절끝에 제작에 착수한 [26년], 그리고 제작 대기중인 [당신의 모든 순간]과 [타이밍] 등 더욱 많은 작품들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순수 각본가로 참여할 예정인 [괴물 2]도 빼놓아선 안되겠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