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편열전(續篇列傳) No.24
일찍이 스크린과 TV, 라디오를 지배했던 슈퍼히어로는 D.C. 코믹스의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슈퍼맨과 배트맨, 원더우먼으로 대표되는 이들 D.C. 진영의 히어로들은 (비록 캠피스타일의 히어로물이 대세였던 시절이긴 했지만) 꾸준히 사랑을 받으면 재탕삼탕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동종업계의 경쟁자인 마블코믹스 진영은 코믹스 계열에서의 우위를 점하고도 영상물에 관하여는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1980년대를 바라보는 문턱에서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이 기념비적인 히트를 기록할 때에도 마블 진영의 유일한 성공작은 TV 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 뿐이었으니까요.
이 같은 사실은 마블코믹스의 편집장인 스탠 리에게 있어서 무척 큰 고민거리였는데, 1977년 TV 시리즈물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방영 시기에는 그 고민이 한계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이 형편없는 각본으로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인가’ 하는게 당시 스탠 리의 솔직한 심정이었지요. 오히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식 특촬물로 새롭게 탄생한 [스파이더맨]의 성공을 바라보며 엉뚱한 대리만족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1978년 TV판 [스파이더맨] ⓒ Charles Fries Productions/ CBS. All Rights Reserved.
사실 스파이더맨은 어느모로보나 D.C. 진영의 메인 캐릭터인 슈퍼맨, 배트맨에 비추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캐릭터였습니다. 히어로로서의 고독과 경제적인 압박감, 삼촌의 사망으로 인한 트라우마, 그리고 이 모든 성장통을 겪는 장본인이 바로 틴에이저라는 사실은 무척 파격적인 것이었고 더군다나 이러한 고뇌의 표현들은 실제 세상에서 일반인들이 겪어나가는 리얼리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습니다.
'스파이더맨' 1화가 실린 어메이징 판타지 폐간호. ⓒ Marvel Comics. All Rights Reserved.
문제는 이를 영화로 만들 때 따르게 될 기술적인 한계였는데요, CG의 발달로 인해 영상으로 표현할 것이 없는 요즘, 슈퍼히어로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던 것과는 달리 유치한 내용과 조악한 코스튬, 아이들의 전유물로 취급되던 캠피한 스타일의 B급영화로 대변되는 과거의 양상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나마 [슈퍼맨]은 이례적으로 블록버스터급 자본이 투입된 작품이었기에 기존의 히어로물들과는 차별적인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요.
실제로 [스파이더맨]의 판권은 [슈퍼맨]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히어로물에 대한 영화서들의 관심이 급증하던 시기에도 팔려나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스파이더맨]이 빌딩숲을 활강하는 ‘웹스윙’씬은 슈퍼맨의 비행장면보다 몇배는 더 힘든 것이었고, 설사 기술력이 받쳐준다해도 그 비용은 [슈퍼맨]의 몇 배에 달하게 될 전망이었기 때문입니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 Reserved.
결국 메이저 영화사에 판권을 파는데 실패한 마블측은 결국 중소영화사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에 먼저 관심을 가진 인물이 바로 B급 영화계의 대부 로저 코먼 영감탱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스파이더맨]의 제작을 포기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스탠 리가 작성한 초기 스크립트를 재현해 낼만한 제작비를 자신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였지요. 어찌보면 현명한 생각이었다고나..
시간이 흘러 [스파이더맨]에 관심을 보인 곳은 바로 캐논 픽쳐스의 매너햄 골란이었습니다. 캐논 픽쳐스와 [스파이더맨]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려면 그것만으로도 몇 페이지를 써야 할 만큼 많은 스토리가 있는데요, 본 리뷰는 어디까지나 [스파이더맨 2]에 관한 것이므로 간략하게만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전에 괴작열전의 [슈퍼맨 4] 리뷰(바로가기)에서도 잠시 다루었었는데, 이 캐논 픽쳐스는 중소영화사치곤 제법 굵직한 히트작들을 내어 업계의 주목을 끌었던 회사였습니다. 한창 잘나가던 시기의 캐논은 문어발식 투자로 여러 영화들의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진행 시키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3500만 달러의 비교적 거금(?)이 책정된 [슈퍼맨 4] 같은 작품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스파이더맨]은 15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로 기획되었습니다.
1986년 개봉일정을 잡고 있었던 캐논사의 [스파이더맨: 더 무비]
문제는 캐논이 무분별한 투자로 인해 회사가 거덜날 정도에 이르렀고, 다급해진 골란은 [스파이더맨]을 비롯해 기획중이던 영화들을 무슨 수를 써서든 시장에 내놓아 수익을 뽑아야 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겁니다. 그렇게 악몽처럼 현실화 된 것이 [슈퍼맨 4]였고, 다행스럽게(?) 나오지 못한 것이 [스파이더맨]이었죠. 무려 5백만 달러의 초저예산 영화로까지 몰락할뻔한 [스파이더맨]은 감독으로 내정된 조셉 지토의 반발과 제작비 조달의 실패로 인해 판권을 캐롤코 픽쳐스에 이양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이 일은 훗날 ‘스파이더맨 전쟁’이라 명명된 판권 싸움의 서막이 되고 맙니다.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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