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그림 형제의 동화집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이야기’에 수록된 유명한 동화 ‘백설공주’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이벤트를 놓고 헐리우드에서는 두 편의 백설공주 관련 영화가 맞대결을 펼칠 예정이지요. 그 중 먼저 선을 보이는 건 타셈 싱 감독의 신작 [백설공주]입니다.
[백설공주]의 오프닝은 사악한 왕비(줄리아 로버츠 분)의 냉소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익히 알고있는 동화의 줄거리를 삐딱한 시각을 가지고 여기저기 비틀어 버리는 셈이죠. 그러면서 왕비는 [백설공주]가 화이트 스노우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임을 강조합니다. 어찌보면 신선한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가지 설정들에 있어서 [백설공주]는 원작의 공식을 손질해 나갑니다. 가령 왕비는 허영심 가득한 된장녀 캐릭터이고, 백설공주는 여성판 의적 로빈 후드가 됩니다. 일곱 난장이들은 광부가 아닌 산적들이며, 공주를 구하러 온 왕자는 겉모습만 멀쩡한 허당이죠. 원작에서 보호받아 마땅한 백설공주는 없어지고, 자주적이며 진취적인 여성이 성장을 거듭해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인 겁니다.
그러나 ‘백설공주’ 동화의 재해석이라는 차원에서 본다면 타셈 싱의 시도는 소박한 편입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아예 여전사로 탈바꿈한 백설공주의 [반지의 제왕]식 액션 판타지로 환골탈태할 기세이지만 적어도 [백설공주]는 그러한 파격성에까지는 근접하지 못하거든요. 뭔가 바뀌긴 바뀌었는데, 그러한 변화자체가 기존의 여러 작품들 속에 녹아있는 상투적인 컨셉들의 반복이어서 신선도가 많이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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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를 제외하면 캐스팅에 있어서도 그리 화려하진 않습니다. 공주 역의 릴리 콜린스나 왕자 역의 아미 해머, 브라이튼 역의 네이선 레인 같은 배우들은 주연급으로서 명함을 내밀기엔 아직 지명도가 낮은게 사실입니다. 물론 그들이 영화내에서 얼마나 열심히 배역을 소화해 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요. 특히 릴리 콜린스는 초반에 그 부담스런 눈썹 때문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네요. 뭐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배역에 동화되어 나름 귀엽더라는…
비주얼리스트로 유명한 타셈 싱의 작품답게 한정된 규모내에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내는 시각적인 요소들은 칭찬할만합니다. 특히 인트로에서 백설의 탄생까지를 소개하는 CG영상은 꽤 흥미롭습니다. 화이트 스노우의 아버지가 CG 캐릭터로 처리된 덕분에 마지막에서 그분이 왕으로 등장했을때는 TV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팬들이라면 옳거니!하며 무릎을 탁 칠만한 소소한 재미도 선사하고 말이죠. (아차차! 이거 스포일러군요)
전반적으로 영화의 규모가 저예산스러워서 그렇게까지 화려함이 묻어나진 않습니다만 적당히 피식거릴 수 있는 유머와 가공된 스토리, 가끔씩 오글거리는 대사를 빼면 그냥저냥 킬링타임으로는 쓸만한 편입니다. 그래도 타셈 싱인데, 이번에는 너무 힘을 빼고 만든 소품처럼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P.S:
1.영화를 보면서 원작 백설공주의 실제 내용이 잘 생각이 안나더군요. 이미 동심을 잃어버린 남자 1인. ㅜㅜ
2.줄리아 로버츠가 악당으로 나온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화이트 스노우 앤 더 헌츠맨]에선 샤를리즈 테론이 악당으로 등장하니 서로의 연기력을 비교해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일 듯.
3.솔직히 고백하건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타셈 싱의 작품인지 몰랐습니다. 엔드 크래딧이 나올즈음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맛살라 댄스 장면에 이르러서야 감독의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부쩍 높아진 인도영화의 위상 덕분에 요즘 인도출신 감독들은 살맛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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