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00년대 초, 외부의 간섭없이 조용히 흘러가는 어느 시골마을. 이 마을에 막 탈옥한 지명수배자 두 명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한 상점에 들어가 강도행각을 벌이며 폭력을 행사하는데, 마침 제지소에서 일하는 진시(견자단 분)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강도들에게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저항하다가 엉겁결에 두 사람을 죽이고 맙니다. 정부에서는 수사관을 파견해 이 사건을 조사하지만 단순히 정당방위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습니다. 흉악범인 이들을 ‘우연히’ 죽인 진시의 정체, 과연 그는 누구일까요?
아마 영화 [무협]이 한국에서 만들어졌다면 틀림없이 이런 비판을 받았을 겁니다.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폭력의 역사]를 표절했다는 비판 말이죠. 네, [무협]은 어느모로보나 [폭력의 역사]의 무협영화 버전입니다. 과거를 숨긴 남자가 맘잡고 살려다가 우발적인 사건에 말려들어 결국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를 끊기 위해 그 원흉을 날려버린다는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표절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음엔 틀림없어 보입니다.
반면 [무협]에는 몇가지 독창적인 요소를 도입했는데, 이를테면 주인공 진시의 정체를 파헤치는 수사관 바이쥬(금성무 분)의 존재입니다. 바이쥬로 인해 [무협]은 다분히 고전 수사극의 장르적 특징을 차용하게 됩니다. 물론 시도는 좋습니다만 아쉽게도 그 효과는 그리 크지 못합니다. 이미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에서도 드러났듯이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CSI]를 흉내낸 듯한 일련의 과학수사는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질 수 밖에요. 게다가 바이쥬란 인물이 알고보면 엄청난 민폐덩어리인지라 도저히 관객의 공감을 살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 Dingsheng Cultural Industry Investment, JSBC Eudemonia Blue Ocean TV & Movie Group, Stellar Mega Films.
오히려 견자단의 무술이 빛을 발하는 후반부에 가서야 영화는 본래의 재미를 드러내는데, 아마도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홍콩영화계의 레전드 왕우와 견자단의 듀얼이 펼쳐지는 클라이막스는 무협영화의 올드팬이라면 숨이 턱 막힐만큼 흥미진진한 이슈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왕우의 대표적인 모 영화에 대한 오마주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더더욱 두근거리는 광경을 연출하지요. 반면 그 결말의 허무함은 뭐… 굳이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의외로 눈에 띄지는 않으나 내면연기를 가장 많이 필요로 하는 탕웨이의 캐릭터도 괜찮습니다. 남편을 또다시 잃지 않으려는 절박한 아내의 심정을 절제된 연기와 인상적인 표정처리로 잘 소화해내고 있거든요. 역시나 재능이 넘치는 배우임엔 틀림없습니다. 이런 역할을 맡기에는 너무 이쁘다는게 흠이라면 흠이죠.
추리극과 무협물의 조합이 그리 썩 나쁜 상성을 보이는 건 아닙니다만 이야기의 구심점이 바이쥬에서 진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이 휘청거리는건 사실입니다. 그냥 좀 스트레이트한 오락물로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법과 양심 사이에서 너무 많이 갈등하는 금성무의 캐릭터를 통해 사색거리를 주려 한 탓에 전체적인 이야기가 엉켜버린듯한 느낌이 드는군요. 조금은 아쉬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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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 무술의 달인이자 있는 집 자손인 견자단, 중일 합작 미남배우 금성무, 극과 극의 묘한 매력을 발휘하는 아름다운 탕웨이... 이 세사람만으로도 동양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이 팍팍 발동 합니다. 다만 특유의 과장과 CSI 흉내, 사색거리 등의 의견을 들으니 좀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11.11.18 10:28배우들의 매력도 그렇지만 진가신 감독의 연출력도 기대감이 컸기에... 하지만 역시나 중화권 영화의 한계는 명확하더라구요.
2011.11.18 10:34 신고저는 보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 했습니다.
2011.11.18 13:29 신고캐릭터들의 미묘한 심리적 긴장감을 제대로 연출한 것부터
액션의 박력감까지 제대로였어요.
게다가 강호의 무인들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도 마음에 들었고,
탕웨이가 맡은 캐릭터가 소모되지 않고 드라마를 강조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능...
앞으로 중국 무협은 이 작품처럼 만들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할 정도였어요.
다만, 과연 진가신 감독만한 내공을 갖춘 감독이 있을런지..
[첨밀밀] 만큼의 애절한 스토리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저는 오히려 진가신 감독의 내면 연출이 빛을 발한건 [명장]이 아니었나 싶어요. 탕웨이의 배역이 좀 더 살아났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고 말이죠.
2011.11.18 13:40 신고명장은 정말 장난 아니었죠.
2011.11.18 14:12 신고중국 시대극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영화 프로그램보니 조금 흥미가 당기는데, 역시 중국영화 특유의 애매한 완성도가 문제인가요?
2011.11.19 12:18네 그게 문젭니다. 확실히 [무간도]만큼의 깔끔함을 자랑하는 영화는 드문거 같아요.
2011.11.19 12:59 신고어머니가 혜영홍이고 아버지가 왕우인 아들 견자단(무협 극 중 설정)을 보는 매력말고는 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서 부산때부터 패스중입니다. 과연 이 영화를 볼 날이 올려나요...-_-;;;
2011.11.20 19:19혜영홍이 어머니인가.. 이모인가.. 혹 누님인가... 극 중에서는 제대로 언급이 안나오더군요. 오랜만에 보는 모습인데도 예전의 포스는 ㄷㄷㄷ...
2011.11.21 09:29 신고왕우 형님 때문이라도 꼭 봐야 하는 영화 목록에 올렸습니다만,
2011.11.21 12:28금성무가 출연한 무협물 치고 재밌게 본 영화가 없어서 계속 망설이고 있는 중입니다.
역시 무협물은 [검우강호]처럼 날렵하고 깔끔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데,
평들을 보면 괜스리 비장미만 강조한 듯 하여 더더욱 망설임을 안겨주는군요...^^;
근래에 본 무협물 중에선 [검우강호]가 갑입니다요.
2011.11.21 12:54 신고무협 영화의 팬으로서 감독이나 출연 배우의 면면으로 봤을 때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라고 생각되지만 평을 보니 좀 망설여집니다.
2011.11.21 21:50무협 영화답게 군더더기 없이 스트레이트한 구성과 전개를 보이는, 무협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쾌감으로 충만한 그런 영화를 보고 싶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차라리 진가신 감독 특유의 심리묘사가 좀 더 디테일하게 이루어졌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기에는 금성무의 캐릭터 자체가 방향을 처음부터 잘못잡았다는 느낌입니다.
2011.11.21 22:47 신고예고편 보고 '뭔가 좀 있겠네' 싶었는데 역시 예고편이 다인건가요? 견자단 횽아를 생각하면 보고 싶기는 한데.
2011.11.22 02:13예고편이 전부는 아닙니다만 더 나은 작품이 될 소지가 충분함에도 그 장점을 살리진 못했더군요. 조금은 아쉽습니다.
2011.11.22 09:20 신고ㅎㅎ 바이쥬는 민폐덩어리 맞습니다.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역시 무협영화는 검우강호의 클래식한 검술이 최고입니다.
2011.11.24 16:06검우강호 원츄요
2011.11.25 10:47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