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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22







 


여러분은 몇편의 공룡영화를 보셨습니까? 어윈 알렌 감독의 [잃어버린 세계]로 시작해 라켈 웰치의 환상적인 몸매가 돋보였던 [공룡 100만년], 그리고 세기의 걸작인 스티븐 스필버그의 [쥬라기 공원]에 이르기까지 공룡영화의 변천사를 보면 그 시대의 특수효과와도 긴밀하게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1969년작 [공룡지대]는 수많은 공룡영화의 계보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고 할만한 위치에 오랜 시간 자리해 있었습니다.

사실 [잃어버린 세계]가 어윈 알렌의 이름보다는 특수효과를 맡은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작품으로 더 잘 알려져 있듯이 [공룡지대] 역시 감독인 짐 오코놀리보다는 레이 해리하우젠의 이름으로 더 유명한 작품입니다. 지난번 [아르고 황금 대탐험]에서 살펴보았듯이 레이 해리하우젠은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수제자로서 결국에 가서는 스승의 명성을 뛰어넘는 네임벨류를 창출해 낸 장인이자 천재적인 테크니션이지요.

원래 [공룡지대]는 아서 코넌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 [킹콩]의 플롯을 첨가해 기획된 작품으로서 해리하우젠의 스승인 윌리스 오브라이언이 직접 쓴 '안개의 계곡 Valley of the Mists'이라는 시나리오로 진행중이었다가 제작이 중단되었는데, 실제로 ' 아프리카의 카우보이들 Cowboys in Africa' 이란 제목의 흑백영화로 몇몇 장면을 촬영했지만 이 장면들은 [마이티 조 영]에 사용되고 맙니다.

1956년에는 이 아이디어를 차용한 작품인 [비스트 오브 할로우 마운틴 The Beast of Hollow Mountain]이 개봉됩니다. 이 영화는 멕시코에 사는 한 미국인 카우보이가 잃어버린 황소를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공룡과 맞닥뜨리게 된다는 내용의 SF 서부극이었는데, 여기에서도 윌리스 오브라이언이 특수효과를 맡을 예정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불발로 불아갑니다. 결국 [안개의 계곡] 프로젝트는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사후에서야 제작이 시작됩니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의해서 말이지요.

ⓒ Películas Rodríguez/ United Artists. All rights reserved.


[공룡지대]는 [비스트 오브 할로우 마운틴]과 비슷한 줄기를 가지고 있지만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각본에 좀 더 충실한 작품으로 원칙적으로는 코넌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와도 매우 닮아있다고 하겠습니다.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한 세기 후 리오 그란데 남쪽의 어느 사막지역에서 미구엘이라는 남자가 손에 무언가 꿈틀거리는 자루를 쥔채 절명상태로 발견됩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말은 '관지 Gwangi'. (도마뱀이라는 뜻)

한편 마을에서 서커스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세비지 공연단의 T.J.는 연인인 키비에게 자신들이 입수한 희귀한 생물을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그 생물은 깜찍한 크기의 말인 에오히푸스였죠. 이걸로 큰 돈을 벌 거란 생각에 키비는 마을의 고생물 박사에게 에오히푸스를 보여주며 이것을 잡을 수 있을만한 장소에 대해 묻습니다. 과학적 연구가치를 싸구려 서커스로 전락시키는 일에 발끈한 박사는 집시들과 모의해 에오히푸스를 훔쳐내고, 이를 훔친 집시들은 자신들의 신앙에 따라 에오히푸스를 풀어주다가 그만 상상못할 존재와 마주치게 됩니다.

ⓒ Warner Brothers/Seven Arts, Morningsid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스토리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공룡지대]는 문명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은 공간속에 선사시대의 고대 생명체가 서식한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입니다. 어찌보면 진부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소재이지요. 더욱이 바로 공룡과 인간의 만남으로 들어가지 않고, 에오히푸스라는 신비한 생명체를 매개로 이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결국 재앙을 가져온다는 내러티브는 상당한 설득력과 서스펜스를 제공합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류의 영화는 특수효과빼면 시체라는 말이 나오기가 쉬운데, 영화적인 구성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작품이라는 얘기입니다.

공룡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보면 레이 해리하우젠이 참여한 [공룡 100만년]에서 사용된 여러가지 설정 및 몇몇 시퀀스가 재활용되기 때문에 참신함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익룡의 등장이나 공룡 두마리의 배틀씬 같은 건 크게 새로울 게 없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훌륭한 장면들이 많은데요, 일례로 거대한 알루사우르스를 쫓아내기 위해 천조각을 사용하던 사람이 천을 덮석 문 관지때문에 딸려나오다가 밑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분명 미니어처로 만든 스톱모션과 실사의 합성이 분명한데도 합이나 동작의 연결이 엄청나게 자연스럽습니다.

ⓒ Warner Brothers/Seven Arts, Morningsid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게다가 하이라이트의 코끼리와 알루사우르스의 데스매치에서도 코끼리를 대신할만한 동물이 없어 100% 수작업 미니어처로만 작업을 했다는데 그 역동적인 움직임이 과장 좀 보태서 실사를 방불케 한달까요. 정말 한땀한땀 정성들여 만든 결과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Warner Brothers/Seven Arts, Morningside Productions. All rights reserved.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치는 이러한 괴수물에 서부극을 합치는 장르적 퓨전을 시도했다는 점일 겁니다. 얼마전 개봉된 [카우보이 & 에이리언]처럼 이같은 이종장르의 교배는 자칫하면 괴작으로 빠지기 쉬운데, [공룡지대]는 이를 잘빠진 오락영화로 만들어 놓았지요. 물론 시대배경 자체가 서부시대는 아닙니다만 공룡을 사냥하는 카우보이들이라는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옛 서부극의 정취를 느끼실 수가 있습니다.

레이 해리하우젠의 영화는 확실히 시간이 흘러도 다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P.S: 이 작품에서 도망치는 오니토미모사우르를 갑자기 등장한 알로사우르스가 순식간에 낚아채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은 [쥬라기 공원]에서 벨로시랩터를 낚아채는 티렉스의 시퀀스에서 오마주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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