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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21


 







 



스티븐 스필버그의 1993년작 [쥬라기 공원]은 영화계에서 특수효과라는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품입니다. 상당한 기술력을 요구했던 수작업이 CG로 대치되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탄생한 것이지요. 커다란 스크린에 나타난 공룡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며 관객들은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술상의 이유로 [스타 워즈] 프리퀄의 제작을 무기한 연기했던 조지 루카스도 [쥬라기 공원]을 기점으로 '때가 왔다'는 걸 직감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어떤 면으로는 이렇게 모든 특수효과가 디지털 CG로 넘어가면서 과거 아날로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없다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지금 보기엔 좀 어설프긴 해도 구시대의 영화들은 나름대로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클래식한 풍미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구시대 특수효과의 아버지처럼 불리는 인물이 바로 레이 해리하우젠입니다. 스탠 윈스턴이나 피터 잭슨, 팀 버튼 같은 후배들로부터 현대 영화 특수효과 발전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멘토로 추앙받는 그는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장인이자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1920년에 출생한 해리하우젠은 소년시절, 특수효과의 거장 윌리스 오브라이언의 걸출한 솜씨가 드러난 1933년작 [킹콩]에 매료되면서 일찌감치 자신의 천직을 결정합니다. (솔직히 부럽습니다. 13살 나이에 꿈꿔왔던 미래를 이루는게 가능한 사회적 시스템이 말이지요) 한동안 해리하우젠은 그림형제나 안델센 동화의 인형 애니메이션 연출자로 활동합니다만 결국 동경해왔던 오브라이언의 수하에 들어가 헐리우드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런 그의 첫 작품이 바로 1949년작 [마이티 조 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해리하우젠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캐리어를 쌓아가기 시작하지요.

[심해에서 온 괴물] (1953), [지구 vs 비행접시](1956),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 (1958) 등 그가 참여한 작품들은 스톱모션 기법이 보여줄 수 있는 화면의 경이를 최대치까지 이끌어낸 영화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참여한 작품들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아르고 황금 대탐험 Jason and the Argonauts]이 1963년에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됩니다.

ⓒ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이 작품은 그리스 영웅신화의 유명한 주인공인 이아손(Jason)과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벌이는 모험을 그린 일종의 판타지 어드벤처물입니다. 펠리아스의 반역으로 테살리아의 통치권을 빼앗긴 왕자 이아손이 왕권을 되찾기 위해 황금양털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스펙터클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빠른 편집을 보여준 돈 차페이 감독의 연출도 훌륭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온전히 해리하우젠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 봐둘 장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청동섬을 지키는 거인 탈로스와의 전투 장면입니다. 거대한 청동거인과 인간들의 대결이 담긴 이 장면의 원안은 인간만한 크기의 탈로스와 싸우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1년 [오드의 투기장 The Colossus Of Rhodes]에서 거대한 청동군인상이 등장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게 되었지요. 청동거인 탈로스는 2004년 엠파이어지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몬스터 가운데 [킹콩] 다음으로 2위를 차지한 바 있습니다.

ⓒ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 Procusa. All rights reserved.

 

거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데뷔작인 [오드의 투기장]. 레이 해리하우스는 이 작품을 보고 탈로스를 거대한 거인으로 바꾸기로 마음 먹는다.


2.클라이막스의 히드라 등장씬은 해리하우젠의 특기인 괴수 캐릭터가 사용된 장면으로서 눈길을 끕니다. 머리가 7개인 히드라가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이아손과 대결하는 장면은 당시로선 경이적인 일이었겠지요.

ⓒ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3.하일라이트의 해골병사 습격장면은 너무나도 유명하지요. [신밧드의 일곱 번째 모험]에 등장했던 해골씬을 버전업한 이 장면은 스톱모션 특유의 뚝 뚝 끊어지는 움직임이 해골이라는 캐릭터에 최적화되어 있어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또한 해골과 인간이 검을 마주치는 합성 장면에서도 이질감을 발견할 수 없어 해리하우젠의 기술력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지요. 약 3분여의 러닝타임에 소요된 시간만 무려 넉 달이 걸렸고 심지어 하루에 고작 13프레임 정도만을 작업했던 날도 있을 정도로 꼼꼼한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결국 이 명장면은 훗날 샘 레이미 감독의 [이블데드 3]를 통해 오마주됩니다.

ⓒ Sony Pictures Home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아르고 황금 대탐험]의 명장면들은 당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오죽하면 배우 톰 행크스는 이 영화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쥬라기 공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겠습니까.

 

[아르고 황금 대탐험]의 배급을 맡은 콜럼비아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를 특수효과 부문에 노미네이트 시키려 했습니다. 해리하우젠은 '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노미네이트는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었죠. 하지만 결과는.....이 영화는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1964년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은 조셉 멘키비츠의 [클레오파트라]가 가져갔습니다)

어떤 아카데미 회원은 해리하우젠에게 "[아르고 황금 대탐험]이 뭐가 특별한지 모르겠다"라는 암담한 소리까지 했답니다. 결국 영화의 참된 가치는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모두에게 인정받게 되죠. [타이탄족의 멸망 Clash of the Titans] 이후 해리하우젠의 작품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은 판타지 영화 팬들이 경험한 최대의 불행일지도 모릅니다. (해리하우젠과 찰스 쉬니어는 [타이탄족의 멸망] 이후에 에픽극 [Force of the Trojans]를 만들려고 했지만 바이어를 찾을 수 없어서 결국 제작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쩌면 해리하우젠 말년 최고의 걸작이 될 수도 있었는데도 말이죠)

이따금 추억을 되새기고 싶을 때면 저는 이 영화를 틀어 봅니다. 요즘같이 CG가 난무하는 시대와는 달리 실제적인 질감이 느껴지는 해리하우젠의 창조물들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신비스런 생명력을 발산합니다.

 

P.S:

1.[유령신부]는 해리하우젠에 대한 팀 버튼 감독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일부러 스톱모션을 고집한 탓에 많아야 14주면 끝나는 촬영이 52주나 걸렸지요. 극 중 빅터가 피아노를 치는 시퀀스에서 피아노의 브랜드는 무려 '해리하우젠'입니다. 사실 팀 버튼은 [화성침공]을 만들면서 화성인들의 움직임을 해리하우젠에게 직접 맡기려고 한 적도 있습니다. 비용과 포맷 스코프 문제로 결국 이뤄지진 않았지만요.

2.본문에 언급된 톰 행크스는 실제로도 해리하우젠의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1992년 아카데미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지명된 해리하우젠에게 오스카를 전달한 사람도 바로 톰 행크스였죠. 그 때 톰 행크스의 멘트는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은 [시민 케인]이나 [카사블랑카]를 사상 최고의 영화로 손꼽지만 나에게 있어 최고의 영화는 [아르고 황금 대탐험]입니다'

3.[화성 연대기]의 작가 레이 브래드 버리는 그의 회고록을 통해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떨어졌을 때 나와 해리하우젠도 같이 깔렸다. [킹콩]은 우리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라고 기술합니다. [킹콩]이 영화사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을 준비해도 모자랄 것 같군요.

4.이 작품은 2000년 TV용 미니시리즈 2부작으로 리메이크 됩니다. 데니스 호퍼가 펠리아스 역을 맡았었지요.

 

* 굵은 글씨는 영화 컬럼니스트 김정대님의 코멘트를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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