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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18








서로 다른 신념. 함장과 부함장의 대립. 권력의 충돌. 남자들이 아니면 좀처럼 느끼기 힘든 선상반란에 관한 이야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재입니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설적인 걸작 [전함 포템킨]부터 시작해 여러차례 리메이크 된바 있는 [바운티호의 반란], 잠수함 영화의 수작인 [크림슨 타이드]. 그리고 한국영화 [유령]에 이르기까지 배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군상극의 묘미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는단 말이죠.

이번에 소개할 작품 [베드포드 사건]은 엄밀히 말해 선상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굳이 선상반란의 테마를 언급한 이유는 본 작품이 본질적으로는 [크림슨 타이드]의 직간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던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흑백으로 제작된 고전영화이지만 [베드포드 사건]은 소재는 당시 헐리우드 영화치고는 상당히 쇼킹한 구성과 조금 급진적인 내용으로 전개되어 나가는데요, 그 때문에 메카시즘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간지 얼마되지 않은 미국내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실패합니다. 따라서 영화의 촬영이 영국의 쉐퍼튼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게 되었지요.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국내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 만큼 [베드포드 사건]의 내용을 잠시 언급하겠습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자유진영인 나토 해역에 소련 잠수함의 침투 사실을 미 함정 베드포드호가 발견해냅니다. 급진적이고 강경한 성품을 지닌 핀란더 함장(리처드 위드마크 분)은 즉시 공격태세를 취하지만 무력충돌과 확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상부의 지시로 소련군이 눈앞에서 빠져나가는걸 지켜보게 됩니다. 쿠바사태 때 무력사용을 주장해 승급에서 누락된 이력이 있는 핀란더 함장의 성격상 이 사건은 도저히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독자적으로 소련 잠수함에 대한 추격을 개시, 집요하게 소련 잠수함을 궁지로 몰아갑니다. 물론 그가 원했던건 잠수함의 격침이라기 보단 소련측의 사과와 무조건적인 항복이었지요.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종군기자로서 핀란더 함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승선한 문스포드(시드니 포이티에 분)은 함내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찰해 갑니다. 그리고 결국 독단적이고 승무원 전원을 위험으로 몰고가는 함장의 태도에 이의를 제기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반대의견은 모두 핀란더 함장에 의해 묵살됩니다. 아무도 없는 북해도의 차가운 고독과 싸우며 신경이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워져 심신이 극도로 지쳐있는 승무원들과 광적일 정도로 소련 잠수함의 추적에 집착하는 핀란더 함장의 위험천만한 항해는 과연 어떠한 결말을 맞이할까요? 그 결말은 관객의 예상보다 더 놀랍습니다. (이 영화는 스포일러를 극도로 조심해야할 작품임에도 간혹 다른분들의 리뷰에선 결말을 아예 까발려 놓더군요 -_-)

[베드포드 사건]은 1963년에 발표된 마크 라스코비치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재미있게도 이 원작소설은 저 유명한 '백경'의 아류작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주인공인 핀란더 함장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에이합 선장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원작에 충실합니다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점을 보이는데요, 두 가지 모두 결말부분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밝히기가 어렵겠군요.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All rights reserved.


본 작품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함장 역을 맡은 리처드 위드마크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엄밀히 말해 '악역이 없는' 본 영화에서(그런 의미에서 [크림슨 타이드]와 매우 유사합니다) 갈등구조를 증폭시키는 핵심적인 캐릭터로 영화내내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지요. 또한 함장과 대립관계에 놓은 종군기자 문스포드 역의 시드니 포이티에도 명배우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만큼 멋진 연기를 보여줍니다. 당시 헐리우드의 풍토상 흑인배우가 이 정도의 배역을 맡기란 드문일이었는데요, 백인과 흑인의 대립이라는 구도 역시 훗날 [크림슨 타이드]의 토대를 놓아준 셈이지요. 그 밖에도 마틴 발삼, 도널드 서덜랜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주조연급 배우들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은 1960년대 영화인데 왜 흑백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실 분들도 계실텐데 영화의 특성상 빙하씬을 비롯한 몇몇 장면에서는 특수효과가 들어가야 해서 그 조악한 효과를 조금이라도 가리기 위해 취한 조치입니다. 뭐 지금으로선 어떻게 봐도 옛날 영화들의 아날로그 특수효과는 가짜티가 풀풀나긴 합니다만...

아무튼 거의 반세기전의 작품임에도 [베드포드 사건]은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전쟁 스릴러의 걸작입니다. 한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의 독선과 아집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사소한 틈에서 얼마나 큰 균열이 생기는지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요즘처럼 사회 곳곳에서 일방적이고 극단적인 모습이 속출하는 걸 보면 이 영화가 얼마나 선구안적인 시각을 가졌는지 새삼 느껴지는군요. 참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입니다.

 
P.S: 이 작품은 과거 MBC에서 방영해 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성우는 주로 에디 머피나 웨슬리 스나입스, 크리스 터커 같은 흑인배우들의 전담성우인 이인성씨가 시드니 포이티에의 목소리를 담당했는데, 너무 가볍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역시 시드니 포이티에는 KBS측의 전담성우 박상일씨가 제격입니다.

* [베드포드 사건]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Columbia Pictures Corporation.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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