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열전(古典列傳)

고전열전(古典列傳) : 돌아온 외다리 - 이두용과 차리 셸, 태권액션의 선구자들 (2부)

페니웨이™ 2010. 6. 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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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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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돌아온 외다리]에 외다리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시 프로덕션 단계와 제작사간의 조율과정에서 제작비 승인을 받아내기 위해 감독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임의적으로 차기작의 제목을 ‘돌아온 외다리’로 적어서 제출한 겁니다. 영화찍기에 찍기에 여념이 없던 이두용 감독은 별 생각없이 그러라고 했는데, 결국 이 제목이 타이틀로 확정되기에 이르렀지요. 뭐 결국 본 작품에서 외다리는 나오지 않습니다만 [속, 돌아온 외다리]에서는 본격적으로 외다리 연기를 하는 한용철의 모습을 보실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외다리가 된 셈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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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영화. All rights reserved.


여하튼 화끈한 액션만큼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어서인지 이두용-한용철의 태권시리즈는 이후로도 계속되었습니다. [돌아온 외다리]가 개봉한지 두달 뒤에는 [분노의 왼발]이 개봉되었고, 또다시 한달 뒤에는 [속, 돌아온 외다리]가 개봉되었죠. 그리고 같은달 말일에 [배신자]라는 작품이 개봉되면서 1974 한해만 무려 6편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게 됩니다. 이 정도면 정말 기록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일부 컬럼에서는 이같은 현상을 놓고 졸속 제작의 증거라며 이두용 감독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이두용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심의과정 중 딜레이가 발생해 빚어진 현상으로서 물리적으로 1년에 6편의 영화를 만든다는게 가능하기나 한 일이냐면서 반박한바 있습니다.

ⓒ ㈜합동영화. All rights reserved.

[돌아온 외다리]의 주연은 한용철이지만 다른 반가운 얼굴들도 만날 수 있다. 쌍라이트 조춘이 악당 중 한명으로 출연하며 황정리와의 대결장면도 올드팬들에겐 빼놓을 수 없는 서비스다.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려던 이두용 감독의 목표는 결실을 맺습니다.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11편의 방화 가운데 [돌아온 외다리]가 포함된 것입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수출된 당시 B급 다찌마리 영화들은 외국에서 일부 매니아층의 열성적인 지지를 받게 되는데요, 이런 작품들의 원본 필름이 대부분 유실된 지금,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이 때 수출된 외국 더빙판 비디오 뿐이었지만 최근에야 테크니스코프 작품들에 대한 복원이 시작되면서 [돌아온 외다리]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이 HD 텔레시네를 거쳐 복원되었거나 복원중입니다. 현재 [돌아온 외다리]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VOD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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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All rights reserved.


안타깝게도 한국 테크니컬 액션의 원조 이두용-한용철의 동맹관계는 [배신자]를 끝으로 깨어집니다. 당시에는 배우들의 개런티가 5백만원이면 많이 받는거였는데 한용철은 연속되는 흥행성공으로 인해 업계 최고 수준인 편당 2천만원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고 결국 경쟁 영화사에 스카웃되면서 다른 감독들과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작품들은 모두가 1974년 이두용 감독의 태권시리즈를 모방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류작에 머물며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갑니다.

한편 이두용 감독은 한국식 액션의 한계에 직면해 얼마 안가 스스로 액션물에서 손을 뗍니다. 당시 그가 느꼈던 영화계의 문제점은 좋은 액션물을 만들겠다는 의욕에 비해 스폰서 등 여건이 뒤따라 주지 않는다는 것, 또 막상 영화를 찍으면 자신이 보기에도 완벽한 영화가 나오질 않는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자괴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액션영화하면 2,3류로 취급하는 풍토가 너무나 안좋게 느껴졌던 것 또한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주위에서 영화인들이 자신과 함께 일하는 액션 배우들을 폄하할때도 장기적으로는 큰 고통이었던 거죠. 어찌보면 멜로 드라마 배우보다 실제 촬영장에서의 일은 육체적으로 훨씬 더 힘든데도 불구하고 액션배우는 더 적은 급여를 받는 현실이 감독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겁니다. 결국 그는 내가 왜 이런 영화들을 계속 찍어야 되는가에 대한 고민 끝에 액션물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액션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 이후로도 계속된 것 같습니다. 1975년작 [강인의 무덤]을 끝으로 시들해진 인기속에 다시 미국으로 갔던 한용철은 6년뒤 한국으로 돌아와 [용호의 사촌들]과 [내이름 쌍다리]에 연속 출연하며 재기의 의지를 불태웁니다만 흥행에 실패, 사실상 영화계를 떠나고 맙니다.

ⓒ 대영영화. All rights reserved.


반면 이두용 감독은 몇편의 액션물을 찍은 뒤 장르를 전환해 1980년대 [피막],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 등으로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성공적인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다가 1985년, 인기가수 전영록을 타이틀롤로 내세워 만든 [돌아이]시리즈로 다시금 액션물에 도전, 예상외로 큰 호응을 얻으며 2편까지 감독을 맡습니다. 이후 [돌아이] 시리즈는 다른 감독에게 메가폰이 넘어가면서 쇠락을 길을 걷습니다만 이두용 감독의 기획력과 연출 스타일은 인정받을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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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돌아온 외다리]는 한국식 액션물의 정점에 섰던 작품으로 큰 가치를 지닙니다. 고작 1974년 한해동안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이두용-한용철의 환상적인 콤비네이션이 이후로도 계속되었다면 한국 액션영화계의 판도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거니와 그 짧은 전성기 시절의 작품만을 남긴채 추억의 배우로 사라져버린 한용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하는 궁금증도 드는군요.

복수와 배신을 일삼는 천하의 극악무도한 악당들과 정의감에 불타는 사나이의 이름으로 그들을 응징했던 의협심 넘치는 마초들. 그것이 바로 한국형 다찌마리 액션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원초적 묘미가 아닐까요.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추억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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