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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열전(古典列傳) No.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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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액션물, 그 중에서도 이른바 ‘다찌마리 영화’로 불리는 본격 B급 액션영화의 위상은 그리 높은편이 아닙니다. 그리고 실제 한국영화계의 장르적 편향에 비추어 가장 소외받는 장르이기도 하지요. (소위 조폭영화에 곁다리로 들어가는 액션은 논외로 칩시다 -_-) 사실 제가 성장해온 시대만 보더라도 주먹영화하면 번뜩 떠오르는 작품이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 3부작 외에는 딱히 없어요. 그나마 훗날 임권택 감독이 다시 도전한 액션물 [하류인생]은 흥행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말이죠. 현재 이러한 장르물에 꾸준히 도전하는 감독은 제 생각에 [아라한 장풍 대작전], [다찌마와 리]의 류승완 감독이 유일한 듯 합니다.

왜 이렇게 소위 ‘주먹영화’들이 인기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헐리우드 액션물에 비해 뽀대가 안나는건 그렇다쳐도 뭐 그런게 한두개인가요. [해운대]는 20% 부족한 재난영화였지만 천만관객을 훌쩍 넘겼잖아요. 내러티브가 엉성한 크리쳐물인 [디 워]는 또 어떻구요. 굳이 B급 액션물만 찬밥취급을 받는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불공평해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국영화계에서 유독 다찌마리 영화들이 강세를 보였던 시기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1970년대 초, [죽음의 다섯손가락]의 정창화 감독을 비롯한 몇몇 영화인들이 홍콩으로 건너가 홍콩식 무협액션물을 찍는 동안 한국의 영화인들은 이소룡의 사후 공백이 생기게 된 아시아의 액션영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본격적인 채비를 합니다. 그런 젊은 영화인들 중에는 차세대 유망주로 떠오른 이두용 감독도 있었는데요, 그는 특히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고난도 액션과 한국적 마샬아츠인 태권도를 도입, 홍콩영화는 물론 헐리우드나 프랑스와도 차별화된 액션을 계산에 넣고 기획단계에 착수하게 됩니다.

기획단계에서 이두용 감독은 한국 영화사의 기록으로 남을만한 대대적인 오디션을 모집하는데, 여기에 참여한 배우들의 수만 100여명에 육박할 정도로 그 당시 무술 깨나 배웠다는 배우지망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속속 모여들게 됩니다. 이 가운데는 훗날 홍콩영화계로 진출한 액션스타 황정리(당시 이름 황태수)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두용 감독은 국내 오디션만으론 맘에 드는 배우를 찾지 못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주연급 배우’를 발견하지 못한 거죠. 그러던 중 우연히 미국교포 한용철을 소개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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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출처:네이버 아카이브)


당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용철(미국명 차리 셸)은 키 184cm에 태권도 5단의 유단자로 북미지역에 16개의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서(동아일보 1974년 3월 5일자) 화려한 발차기 기술에 매료된 이두용 감독에 의해 주연배우로 전격 발탁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든 첫 번째 영화가 바로 1974년작 [용호대련]입니다. [용호대련]은 태권도를 다찌마리 액션에 접목시킨 원조격인 작품으로 한용철의 국보급 ‘이중회전차기’가 돋보인 B급 액션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지 불과 보름만에 4만명의 관객을 돌파하는 등 흥행에 있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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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영화. All rights reserved.


이 여세를 몰아 이두용-한용철 콤비의 두 번째 작품 [죽엄의 다리]가 다음달에 개봉해 흥행을 이어갔고 그로부터 3개월 뒤에는 이두용 감독의 태권 시리즈의 정점에 선 [돌아온 외다리]가 개봉됩니다. 장철 감독의 빅히트작인 홍콩 무협물 [외팔이(독비도)] 시리즈의 제목을 차용한 것이 역력한 [돌아온 외다리]는 제목과는 달리 액션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수하려한 흔적이 남아있는 한국 B급 액션물의 수작으로 기록됩니다.

ⓒ ㈜합동영화. All rights reserved.



[돌아온 외다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마을의 한 주점에 수상한 세 남자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상하이 호랑이(한용철 분)라는 별명을 가진 사내를 찾고 있다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지요. 수소문 끝에 찾아낸 상하이 호랑이는 약장수 밑에서 호객행위를 돕는 부랑자로 전락해 있었습니다. 한때 뒷골목 세계를 주름잡았다던 그에게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는 이렇게 폐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한용철의 과거는 이렇습니다. 1930년대 하얼빈 암흑가의 보스였던 왕해림의 눈에 띄어 그의 양아들이자 충실한 부하로 성장한 병철은 연인인 향숙의 간청으로 조직생활을 청산하려 합니다. 하지만 보스의 오른팔인 야마모토(배수천 분)의 함정에 빠져 황금 수송 마차를 습격한다는 것이 그만 향숙의 오빠를 죽이게 됩니다. 그 죄책감으로 인해 병철은 스스로 조직을 떠나 은둔하게 되고 야마모토는 병철이 떠난 사이 향숙을 자신의 여자로 만들고 보스인 왕해림을 살해한 뒤 조직을 장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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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영화. All rights reserved.


오랫동안 이 모든 일이 자신의 죄라고 생각했던 병철은 독립군 김승(권용문 분)의 도움으로 사건의 전말에 다가가게 되고 드디어 혈혈단신으로 야마모토의 아지트에 잡입하게 됩니다. 과연 상하이 호랑이 병철은 연인을 빼앗고 양아버지를 살해한 야마모토를 응징할 수 있을까요?

지금 관점에서 보면 촌빨날리는 대사에 화면구성과 스토리 및 편집도 엉성하기 이를데 없지만 [돌아온 외다리]의 포인트는 폭풍처럼 몰아치는 액션의 물량입니다. 거의 영화의 90%는 액션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이 작품은 정말 신물나도록 싸움질을 해댑니다. 그 액션의 중심에는 한용철이 있었고, 그는 이 작품에서 전설로 회자되는 그만의 독특한 액션, 즉 발차기로 불꽃 싸대기를 연신 날려대는 화려한 발놀림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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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미국에서 태권도장을 여럿 운영하고 태권도 5단의 고수급 유단자라는 언론의 보도와는 달리 실제로 한용철의 태권도 실력은 초단도 안되는 완전 초심자의 수준이었다고 이두용 감독은 회상합니다. 감독이 다른 태권도 고수들을 제치고 한용철을 발탁한 이유는 단 하나, 오로지 한용철의 발차기 실력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한용철은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긴 체형이 소유자로서 몸동작도 흐느적 거리는 편이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액션시퀀스에 있어서 임팩트가 있어보였던 거지요. 이두용 감독은 그의 발차기에 대해 ‘부채살같이 아름답게 펼쳐지는 날아차기’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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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돌아온 외다리]에서는 당시 홍콩무협물에서 볼 수 없었던 역동성이 팍팍 느껴지는데요, 최근 폴 그린그래스의 제이슨 본 시리즈 덕분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된 액션장면들은 에너지가 넘쳐 흐릅니다. 철교에서 일당백으로 싸우는 다찌마리 장면은 한국영화사의 기념비적인 명장면으로서 ‘호쾌하다’는 표현은 이럴때 써야 하는 것이지요. 이는 한국적 다찌마리 영화를 구상했던 이두용 감독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 결과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적지 않습니다. 속된말로 ‘간지가 나오는’ 액션연기와는 달리 실제 감정표현과 표정연기에 있어서 한용철을 비롯한 다른 남우들의 연기는 정말 뻣뻣합니다. 마초성이 과하다 못해 이글이글 타오른달까요. 사실 [돌아온 외다리]는 액션의 호쾌함에 비해 극의 내용 자체는 굉장히 우울한 편이거든요. 심지어 엔딩에 이르러서 저는 이 시대의 액션물이 이런 결말을 보일 수 있는지 제 눈을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섬세한 감정연기를 요구하는 비극적 캐릭터의 깊이에 비해 한용철은 오로지 발차기만을 위해 캐스팅된 배우라는 느낌이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오히려 ‘연기력’을 놓고 본다면 악역의 대명사인 배수천이 훨씬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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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단골 악당으로 등장했던 배우 배수천. 남기남, 이두용 감독의 작품들에 주로 출연했던 그는 희대의 악역으로 관객들에게 강한 카리스마를 남겼다.


흥미롭게도 영화를 보고나면 의아한 점이 하나 생기는데, 제목인 ‘돌아온 외다리’와는 달리 한용철은 끝끝내 외다리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중간에 악당들에게 사로잡혀 한쪽 다리를 린치당하는 장면이 나오긴 해도, 이것이 외다리, 즉 불구가 될만큼의 치명타를 입히진 않거든요. 멀쩡한 두 다리로 악당들의 싸다구를 연신 갈겨대는 걸 보면서 도대체 왜 제목이 [돌아온 외다리]일까 궁금하신 분들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2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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