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적인 감각만을 놓고 볼때 잭 스나이더에 견줄 만한 감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는 [300]이나 [왓치맨]을 통해 지면에 펼쳐진 그래픽 노블의 세계를 생동감 넘치는 스크린으로 옮겨놓는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조금 실망스런 작품이긴 했지만 [가디언의 전설] 또한 기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크게 흠잡을 것이 없는게 사실이다. 문제는 스토리텔링.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 그건 영화의 외적구성보다는 내용일 것이다.
잭 스나이더의 신작 [써커 펀치]는 모르긴해도 그가 사력을 다해 만든 야심작이라는데 일단 동의한다. 이 영화는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뭔가 굉장히 공을 들인 듯 한 '느낌'이 있는 영화다. 그것이 관객에게 얼마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모두 '원작'에 기초한 작품임을 감안하면 잭 스나이더가 직접 시나리오까지 쓴 [써커 펀치]는 온전히 그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평단의 평가는 가혹하다. 북미지역내는 거의 폭탄급으로 취급당하고 있고, 국내 유수의 평론가 및 리뷰어들에게도 상황은 비슷해 보인다.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이 느꼈을 불편함과 불만들에 대해서 종합해보면 이거다. '화면만 요란하지 내용은 없다'는 것. 이는 그간 잭 스나이더 감독의 작품들에게 내려진 비난과도 거의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도 영화는 무척 요란스럽고 감각적이며, 스케일에 배팅한 것이 역력해 보인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하지만 나는 예외적으로 조금은 우호적인 평가를 내리고자 한다. 그 이유는 순전히 이 영화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영화에 담긴 특이한 실험정신이 '아깝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3중의 액자식 구성으로 된 약간은 불친절한 기법의 영화다. 근래에 본 작품 중 이와 유사한 유형의 영화를 꼽으라면 전 [셔터 아일랜드]를 들 수 있겠다. 물론 이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영화이지만 어느 한 부분에 이르러서 접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내는 세계라는 점이다. 따라서 [써커 펀치]가 설정과 내용이 나쁜 영화는 결코 아니다.
다만 [셔터 아일랜드]가 복고풍 느와르의 품격있는 웰메이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면 [써커 펀치]는 외형적인 부면에 치중한 블록버스터다. 관객들이 느끼기에 불편한 건, 요란스럽게 치장한 블록버스터 주제에 너무 있는척 하는 영화의 구조적 괴리감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유치찬란한 화면빨과는 달리 영화가 취하는 교훈적 태도는 일면 건방지게 혹은 엉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장르영화로서의 묘미나 혹은 극단적 재미만을 추구하는 블록버스터로서도 만족을 얻기 힘들다.
내가 생각하기에 [써커 펀치]는 일반적인 장르영화의 틀안에 넣고 감상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일종의 돌연변이같은 영화다. 감독의 이러한 도전이 관객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영화 자체가 너무 요란스럽게 포장되어 있고 비주얼이 주는 인상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마치 플레이 스테이션 3의 게임 데모화면을 보는 듯한 비현실적인 화면의 연속은 포주에 의해 착취당하는 미소녀들의 탈출극이라는 사뭇 진지한 테마와 엇박자를 이루며 극심한 불균형을 초래한다. 차라리 비주얼을 조금 덜어내고, 각 이야기간의 접합과 개연성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영화는 꽤나 견고한 모양새를 갖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 Warner Bros.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영화의 기교적인 측면만 따로 놓고 보면 잭 스나이더의 스타일리쉬한 색감은 여전하다 할 수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슬로우 모션과 극단적 클로즈업, 몽환적이고 장엄한 스케일의 비주얼은 아주 매혹적이며 음악의 변주와 사용도 능수능란하다. 하지만 [서커 펀치]의 이러한 장점들이 감독의 키치적인 성향과 맞물리면서 낭비된다는 점은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문제는 영화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있다. 비주얼리스트로서 잭 스나이더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진 않겠지만 과연 이게 언제까지 통할 수 있을지 감독 스스로가 잘 생각해 봐야할 시점이다.
써놓고 보니 정신없는 영화만큼이나 산만한 리뷰가 되었지만 정리하자면 [써커 펀치]는 보는 관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만한 영화라는 거다. 잘만 만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처럼 될 수도 있었겠지만 역시나 잭 스나이더에게는 너무 의욕만 앞선 야심이었나 보다.
P.S:
1. 영화를 보는 내내 애비 코니쉬는 니콜 키드먼을 닮았고, 지나 말론은 점점 맥 라이언을 닮아간다는 생각.
2. 자, 이제 [맨 오브 스틸]은 어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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