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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 디즈니의 정상 탈환이 머지 않았다

페니웨이™ 2011. 2. 1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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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화제로군요. 사실상 CG 애니메이션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도권을 동맹관계였던 픽사와 신흥 세력인 드림웍스에 내어준 디즈니로서는 업계 최강이라 불렸던 과거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기나긴 침체기를 겪어 왔습니다. 전통 셀 애니메이션의 연이은 실패는 둘째치고, [로빈슨 가족]이나 [치킨 리틀]과 같은 독자적인 CG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정말 비참할 정도의 참패를 경험했을 정도였으니까요. 현 상황에서 픽사없는 디즈니란 이빨빠진 호랑이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몰락한 디즈니에서 과감한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 바로 [볼트]였습니다. 픽사의 브레인인 존 라세터를 영입해 제작 시스템 전반을 리셋했던 이 작품은 방향성을 잡지 못해 좌충우돌하던 디즈니의 삽질을 어느정도 보완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비록 완벽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대세에 맞춰갈만큼의 수준까지는 근접했다는 얘기지요. 아마 관객들은 [볼트]를 통해 디즈니의 앞날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이걸로는 충분치 않았죠.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그런 의미에서 [라푼젤]은 시기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인 작품입니다. 이미 픽사는 [토이 스토리 3]라는 괴물급 작품을 발표해 돌아오는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올라있는 상황이고, 드림웍스는 그 사이 [드래곤 길들이기], [메가 마인드] 같은 작품들로 키치적인 그들만의 작품 세계에 최신 트렌드인 3D를 접목시키는 시도를 통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상태입니다. 여기에 [아이스 에이지]라는 막강한 프렌차이즈를 획득한 폭스-블루스카이 연합의 저력도 무시할 순 없겠죠. 디즈니로서는 더 이상 뒤쳐질 만한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해요.

이렇게 중요한 타이밍에 제작진은 [라푼젤]을 통해 의외의 승부수를 띄웁니다. [라푼젤]은 [피노키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 서양 전래동화의 헐리우드식 각색을 보여주었던 전성기 월트디즈니의 전통을 계승한 작품입니다. 전통적인 내러티브에 CG와 3D 기술을 결합한 [라푼젤]은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디즈니로서는 픽사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며, 디즈니의 자존심 아니 상징성과도 같은 셀 애니메이션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거든요. 대신 그들의 노하우가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분야에 기술적인 변화를 접목시켜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셈입니다.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물론 너무 이질적인 작품이 나오지는 않을까 싶은 우려도 없진 않았습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라푼젤]은 잘 알려진 그림형제의 원작을 디즈니식으로 각색했습니다. 그리고 그림형제의 원작은 가혹하리만큼 험란한 여정을 겪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계모와 딸의 갈등으로 시작해 혼전임신으로 인한 추방과 같은 극단적인 설정도 마다하지 않는 다소 충격적인 스토리가 과연 디즈니에 어울릴 만한 것이냐를 생각해본다면 [라푼젤] 제작진의 고뇌도 만만찮은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라푼젤]은 간만에 장외 솔로 홈런을 때린 디즈니의 수작이라고 할만 합니다. 이 작품은 디즈니식 해피엔딩의 내러티브를 그대로 사용하는 한편, 전통적인 뮤지컬 시퀀스와 동화의 비틀기라는 '슈렉'식의 전복적 유머, 그리고 가벼운 패러디를 도입해 풍부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원작에서의 비극적 요소는 대부분 희석시킨채 마녀의 손에 자라 평생을 갇혀지낸 처녀의 성장극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 라푼젤에게 감정이입하기까지의 흐름이 아주 좋습니다. 어찌나 연출력이 좋은지 이 작품의 명장면 중 하나인 등불 씨퀀스에서 황홀경에 빠진 라푼젤의 표정을 보노라면 제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에요.

또한 캐릭터들도 잘 살아있고 사랑스럽습니다. 특히 대사없이 슬랩스택 코미디와 표정만으로도 존재감을 발산하는 백마 막시무스와 카멜레온 파스칼은 이 작품의 또다른 백미입니다. 심지어 셰어를 연상케하는 외모를 가진 계모 고델은 그간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스테레오 타입의 악당과는 달리 어딘지 묘한 연민을 자극하는 구석이 있는데요, 아마도 젊음에 대한 끝없는 집착을 갖는 보편타당한 여성들의 심리를 대변함과 동시에 딸에 대한 과잉보호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원작 캐릭터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한 인물이라서 그런걸지도 모르겠군요. (게다가 설정으로만 마녀지 실상 그렇게까지 사악하거나 암흑의 포스를 뿜는 대악당은 아니거든요. 말 그대로 필요에 의한 'bad guy'일뿐)

ⓒ Walt Disney Pictures. All Right Reserved.


훌륭한 각색과 잘 짜여진 스토리 라인, 그리고 성우들의 연기력도 일품이지만 더 놀라운건 이 모든 장점이 CG에 최적화되어 매혹적인 비주얼을 연출한다는 점입니다. 그간의 3D 애니메이션에 실망한 분들이라면 믿으세요. 이 작품은 아이맥스 3D로 보는게 최선입니다. 확실해요.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하는 댐 폭파씬과 같은 액션씨퀀스 뿐만 아니라 금빛 찬란한 머릿결에 광채가 비추는 모습, 그리고 달밤에 보트위에서의 등불 데이트 같은 환상적인 장면에 이르기까지 3D CGI야 말로 동화적 이미지의 표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이제 막 디즈니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라푼젤]은 그동안 기다려왔던 디즈니표 애니메이션의 교과서적인 결과물이자 영리한 선택입니다. 더 바라지도 않아요. 앞으로도 이대로만 가면 됩니다. 디즈니는 역시 이런 맛에 보는거죠.


P.S:

1.여자는 역시 헤어스타일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이하는 스포일러라 생략)

2.요즘 아이들은 참 극사실적인걸 추구하나봅니다. 극 중 아무개가 칼에 찔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에 앉은 꼬꼬마가 엄마한테 그러더군요. '엄마! 쟤 왜 피가 안나?' ㅡㅡ;;;

3.아마 [토이 스토리 3]가 없었다면 당연히 [라푼젤]이 아카데미로 갔을 겁니다. 아마도 디즈니로서는 [토이 스토리 3]가 한 수 위였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겠죠. '우린 한놈만 몰아준다!'

4.디즈니의 황금시대를 이끌었던 음악감독 알란 멘켄의 귀환은 정말이지 절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음악이 가진 힘은 역시 대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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