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이유는 한가지다. 성인을 능가하는 청소년들의 잔인성에 대해 너무나도 사실적이면서 불편한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보다도 훨씬 더 끔찍한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시각적 잔혹함의 문제는 아니다. [고백]은 모든 면에서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그럼에도 그 이면에 놓인 현실과 사회적 현상에 대해 쉽사리 반박하기 힘든 마력을 가진 작품이다.
소설가 미나토 카나에의 처녀작을 영화화한 [고백]은 원작이 주는 충격만큼이나 오랜시간 멍한 울림을 남기는 작품으로서 소설을 영상으로 컨버전한 경우로는 보기 드물게 아주 성공적인 결과물이다. 영화는 한 중학교 여교사가 자신의 퇴직 사실을 담담한 어조로 아이들에게 알리면서 시작된다. 선생님이 강단에서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제멋대로다. 우유를 마시며 떠들거나 장난을 치고, 교실 밖으로 나가 버리는 산만함 속에서도 꿋꿋히 자기 할말을 해나가던 모리구치 선생(마츠 다카코 분)은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내 딸을 죽인 범인은 이 교실안에 있습니다"
ⓒ Toho Company/ Nippon Shuppan Hanbai (Nippan) K.K. All Right Reserved.
순간, 교실안은 정적에 휩싸이고 딴짓을 하던 아이들은 교사에게로 주의를 집중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누가, 왜 담임선생의 딸아이를 죽인것일까? 그리고 모리구치 선생은 어떻게 범인과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반 아이들 전체가 듣는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고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모리구치 선생의 딸을 죽음으로 이끈 사건의 전모를 바탕으로 충격적인 진실과 더불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복수극이 전개된다.
미스테리 형식의 화법을 사용하긴 하지만 [고백]은 누가 범인인지에 관심을 두는 작품은 아니다. 주인공인 모리구치는 범인의 이름을 끝끝내 밝히지 않지만 반 아이들과 관객들은 누가 선생이 지목한 소년 A와 B가 누구인지 모두 알고 있다. 모리구치가 이 아이들을 경찰에 인도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 소년법상 형벌이 너무나도 가볍기 때문이다. 결국 모리구치는 스스로 범인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다. 아이에 대한 어른의 복수.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외동딸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을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소년 범죄의 저연령화 현상에 비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하는 현 사법체계의 한계가 관객들의 공분을 자아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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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큰 줄기가 모리구치의 복수극에 맞춰져있기는 하나 영화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오히려 소년들이 범행을 계획하게 된 경위와 동기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면서 영화는 현 일본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다양한 치부를 들추어 낸다. 그리고 이 사건에 얽힌 인물들 각자의 사정이 설명되면서 영화는 차츰 설득력을 높혀간다. 남은 한 명의 범인과 딸을 잃은 엄마이자 선생인 모리구치가 마주하는 마지막 순간의 결말은 끝끝내 관객들을 우울함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으로 국내에서도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은 자신의 독특한 스토리 텔링에 더해 느슨하면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연출을 선보이며 유망주로서의 기대치를 120% 만족시켰고, 어느덧 중견배우로서의 관록이 돋보이는 마츠 다카코는 예쁜 여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벗어나 어느덧 눈빛과 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연기파 배우의 면모를 과시한다.
도저히 단점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작품이지만 두 번 관람하기에는 심적 부담감이 너무 강하며, 교권의 추락과 가정의 붕괴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생각해볼때 [고백]이 보여주는 영화 속 풍경이 그다지 낯설지 않아 보인다는 게 더욱 슬프다.
본 리뷰는 2011.4.5. Daum의 메인 페이지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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