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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석은 참 신기한 감독이다. 지금이 21세기인데도 쌍팔년도식 연출 스타일을 고집하는 감독치고는 의외로 많은 고정팬들을 확보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어떤면으로는 참 안전한 영화를 만드는구나 싶고, 그러한 평이함에서 오는 따분한 느낌에 질색하는 안티팬들이 적지 않음에도 강우석 감독의 작품은 일단 세간의 관심에 오르는데 탁월한 재주를 가졌다.

[글러브]는 전형적인 강우석표 영화처럼 보인다. 소재의 신선함도 없고, 어느덧 강우석 사단의 대표배우가 되어 버린 정재영이 메인을 꿰차고 앉아 그나마 기대할 만한 캐스팅의 의외성도 삼켜버렸다. 아니, [이끼]를 찍은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1년도 안된 시점에 후딱 작품을 내놓은걸 보니 어지간히 영화를 날치기로 찍은거 아니냐는 의혹도 살 만하다. 아마도 철저한 강우석 감독의 안티팬이라면 이러한 영화의 외형적 요소만으로도 충분히 불만을 제기할 수 있을거다.

그래도 뭐.. 일단은 영화를 보고 판단하자. [글러브]는 청각장애인 학생들로 이루어진 야구부의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니까 왠지 [실미도] 생각이 나네. 맞다. 뜬금없다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실미도]를 연상시킨다. 감정의 과잉과 오버하는 연기, 낙오한 무리들의 독기서린 지옥훈련의 과정은 마치 [실미도]를 전체관람가 버전으로 순화시켜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기존 강우석 연출방향에서 단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은 작품이란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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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 KnJ엔터테인먼트. All Right Reserved.


영화는 일견 스포츠물의 장르적 베이스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적당히 감동적이며, 웃음과 유머도 적시적소에 배치되어 있고, 경기장면의 연출도 그리 나쁘지 않다. 문제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무려 2시간 20분에 육박한다는 것인데, 아마도 이 점이 [글러브]에 있어서는 최대의 단점이 될 듯 하다. 방대한 원작을 잘라내는데 애를 먹었던 [이끼]와는 또다른 경우이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대부분 영화가 길어지게 되는 요인은 크게 두가지다. 플롯이 너무 복잡해 이를 설명하기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하거나, 아니면 다양한 캐릭터를 구축하기 위해 러닝타임을 사용하는 경우.

그런데 [글러브]는 두 경우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다. 우선 이 영화는 누가봐도 뻔한 단선적인 스토리 구조를 지녔다. 사고뭉치 코치가 가망없는 팀에 부임했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불끈 타올라 팀에 활기를 불어넣고 몇가지 역경과 밉살스런 캐릭터의 갈굼을 극복하고 결승급 경기에 나가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하는 기성 스포츠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라간다. 그렇다면 남은건 캐릭터의 구축인데, 이 또한 중심인물인 김상남(정재영 분)을 포함한 등장인물 모두가 너무나도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라 캐릭터 구축에 딱히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대신에 [글러브]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온갖 신파극의 요소들을 몽땅 끌어오는데 여념이 없다. 워낙에 감정을 쥐어짜는 통에 일순간 눈물이 찔끔나오다가도 오버가 지나쳐 손발이 오그라드는 몇몇 장면들을 포함해 적당이 편집해서 넘어가도 충분했을법한 스포츠 드라마의 전형적 클리셰들을 답습하느라 호흡을 늘어뜨린다. 정말이지 2시간 정도로 마무리했더라면 깔끔한 야구드라마가 완성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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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 KnJ엔터테인먼트. All Right Reserved.


배우들의 연기는 더욱 아쉬움을 남긴다. 정재영의 연기는 여전히 좋으며 매력적이지만 너무 자주 강우석과 장진의 영화속에서만 활동한 탓인지 이제는 연기의 패턴과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인 형태로 굳어져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이제는 주연급 배우로서 좀 더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이끼]로 강우석에게 눈도장을 찍은 유선은 모처럼 비중있는 히로인의 역할을 맡았지만 그녀 자신이 지닌 잠재적인 매력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배역을 선택했다. 반면 청각 장애인을 연기한 젊은 배우들의 연기는 비교적 무난한 편이나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의외로 적다.

물론 영화는 재미도 있고, 감동적이다. 이러한 장점들이 너무 뻔한 것이고 개성도 느껴지지 않을 지언정 [킹콩을 들다]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같은 감동 스포츠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글러브] 역시 만족스러운 작품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야구영화의 장르적 디테일이라든지, 혹은 장애인들의 인권문제를 의식한 영화적 서사를 기대하지는 말라. [글러브]의 감독은 강우석이니까. 딱 그만큼의 기대만 가지고 간다면 크게 실패할 것이 없는 영화다.


P.S:

1.내가 [글러브]를 좋게보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강우석 감독의 작품 중에서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향점이 그래도 선한 것을 추구하고 있기에 단호하게 악담을 쏟아내지는 못하겠다. 난 마음이 약하니까.

2. [러브 액츄얼리]의 명장면을 차용한 씬은 의외로 좋았다. 그래, 이런게 강우석의 장기라니까. 패러디나 오마주가 아니라 그냥 붙여넣는거.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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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J엔터테인먼트/시네마서비스/ KnJ엔터테인먼트. All Right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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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탈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에요 ㅠ.ㅠ사실 너무 진부한 작품인데 묘하게 끌리긴하더라구요;
    트랙백달고갑니다!

    2011.01.21 09:06
  2. 붉은비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제 강우석 영화는 강철중 시리즈나 볼라구요.^^;
    강우석의 가장 큰 장점은 결국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함 덕에
    영화의 리듬감을 살리는 테크닉이 뛰어나다는 건데,
    이제는 이것조차 강철중 시리즈를 빼놓고는 확 무디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실미도의 대성공이 그에게 대단한 착각을 가져다준 것 같아요.
    딱 그때부터 리듬감이 급전직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1.01.21 09:20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강우석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 [공공의 적]이죠. 그 증거로 [공공의 적 2]가 어떤 작품이었는지를 생각하면 확실히 1편은 개천에서 용난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희안한 일이었죠.

      2011.01.21 09:38 신고
  3. 뿌와쨔쨔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2년 1월이었나요, 공공의적을 보았을 때가 생각합니다. 한창 땟깔좋은 영화들(로스트메모리즈, 친구 등등)이 득세하면서 한국영화가 막 타오르던 시절이었는데 갑자기 80년대 색감의 영화. 하지만 페니웨이님 말씀처럼 스토리텔링이 좋은 것 같아요. 마치 조미료 맛도 좀 나고,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런 식사이지만, 욕은 절대 안나오는. 또, 돌이켜 생각해보면 맛도 좋은...그리고 어느 새 또 찾게 되는..놀부부대찌개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전 강우석 감독 영화 개인적으로 즐겨 봅니다.

    2011.01.21 09:25
  4. 칼럼티스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부하지만 진부하기도 쉽지 않죠. 대중 영화에는 수 많은 공식들이 존재하고 그 공식에 정확히 맞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니까요.

    어떤 형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대중이 가장 만족할까?라는 고민 끝에 탄생한 것이 그러한 공식입니다. 그리고 그 공식이 바로 강우석 감독의 진부합입니다.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아직 영화 계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 그것을 뜻하죠.

    사실 이것은 대중영화의 기본공식이자 핵심기술입니다. 훌륭한 대중예술을 판별하는 기준도 그것이 얼마나 기본 공식에 잘 들어맞느냐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수행함에 있어 강우석 감독보다 뛰어난 사람은 현재 충무로에는 보이지 않는군요. 그러나 요즘 감독들은 참신함에 목매느라 영화의 기본을 잊은 것처럼 보입니다. 참신하기까지 하면 물론 좋겠지만, 참신한것만 가지고 승부하는 요즘 영화들 보다는 강우석처럼 진부하지만 잘 짜여진 영화가 훨씬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강우석 감독과 같은 영화를 만들지도 못하면서 진부함이라는 단어로 그를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예술의 패러다임에 가장 적합한 감독은 오히려 강우석입니다.

    2011.01.21 09:46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래에 보기드문 강우석 예찬론이군요. 저도 남들 다 [이끼]를 욕할때 그것이야말로 강우석다운 연출에서 나온 모범답안의 결과라고 쓰긴 했습니다만 그것과 [글러브]는 또 다른 문제거든요.

      무엇보다 강우석 감독은 그 많은 작품들 속에서 제대로 평가내릴 수 있는 작품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건 굳이 지적하지 않더라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글러브]는 확실히 [이끼]보다는 대중적인 평론이 좋을 수 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대중예술의 패러다임에 가장 적합하다는 말에는 그닥 동의하기 힘들군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감독 중에 가장 대중적 성향과 상업적 기성품을 잘 만드는 사람은 김용화 감독입니다. 아직 작품수가 많지 않기에 섣부른 판단을 내리긴 시기상조이지만 유일한 단점인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구조의 내러티브만 극복하면 정말 최고의 상업영화 감독이라 부를 수 있을 겁니다.

      2011.01.21 09:53 신고
    • 볼쇼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개인적으로 강우석 감독 스타일을 진부함보다는 촌스러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게 임권택 감독처럼 나이라도 많으시면 거장의 느낌이라고라도 읽히기라도 할 텐데, 그에비하면 아직 젋은 분이라 그냥 촌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다지 유쾌한 촌스러움도 아니더군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2011.01.21 23:26
  5. 엘로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게 참 오묘하죠. 뻔한 내러티브인데, 대중적인 반응은 항상 좋습니다. 전 실미도가 왜 그토록 높은 인기를 얻었는지 영화를 보면서도 의문이 들 정도였거든요. 글러브는 예고편 만으로도 실미도의 잔상이 느껴지더군요. 뭐 많은 다른 감독들도 자신의 전작의 공식을 답습하는 경우가 많기에 강우석 감독이 특별히 어쩌다저쩌다라 할 것은 아니지만, 뻔한 전개와 뻔한 연출이 강우석의 한계라는 점은 분명히 그의 맹점이라 하겠습니다. 다만, 뭐랄까... 항상 간을 잘 맞추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볼 때는 참 감동적인 실화를 너무 뻔한 상업영화 공식으로 옮겨놓은 듯 싶어 아쉽습니다. 좀 더 깊은 감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 이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을 안들게 하네요.

    2011.01.21 10:10
    • 페니웨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톡까놓고 말하면 과감함의 부족이라 말할 수 있겠죠. 작년 [이끼]의 GV에 참석했었는데, 거기에서도 강우석 감독이 인기 원작웹툰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몸을 많이 사렸다는 느낌을 주더군요. 그래서 상업적으로 희석시킬 수 밖에 없는..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좋게 말하면 안전하게 가는거고.. 뭐 그런거죠.

      2011.01.21 10:13 신고
  6. ㅇiㅇrrㄱi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지도 않고 뭐라하긴 힘들겠지만, 개인적으론 근육질이어도 있는 듯 감춰진 듯 싶은 근육질을 선호하지, 울퉁불퉁 거북스러운 근육질을 남성적이고, 눈에 잘 들어온다고 좋게 보진 않는 편입니다.
    여태 본 작품들 태반이... 울퉁불퉁의 정도가 아니라 터지기 일보 직전 크기만큼의 감정을, 그것도 외관만 눈에 잘 띄도록 배치하고 있어 보이는지라 약간의 거북함이 이어지곤 했었거든요. 해서 왠지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소재라고 보였는데... 일부는 예상과 맞아 떨어질 수도 있겠네요.

    2011.01.21 12:54 신고
  7. 정체불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끼 이후 너무빨리나온것 아닌가해서 불안했는데 다들 좋다고하시니 한번 볼까 생각중입니다 ^^

    2011.01.21 20:21
  8. 미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논란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지만 그가 없었다면 90년대 한국 영화계는 또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말입니다. 여하튼 끝없는 열정으로 한국 영화의 필모그라피를 풍성하게 해주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더 발전하는 모습 기대하렵니다(개인적으로는 강우석 감독 영화중 <한반도>가 최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보는 내내 선생님에게 훈시 듣는 초등학생이 된 것 같았죠. 극장에서 뛰쳐나가고 싶었다는... 그의 영화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러한 감정의 과잉은 정말이지 '짱' 나더군요. 이런 부분만은 제발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

    2011.01.25 10:28
  9. 트래비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뻐서 일주일이 지나서야 포스팅을 봣네요. 와이프가 보자고해서, 어떤 영화일게 뻔한데도 그냥 봤는데 역시나 더군요. 인위적인 감동짜기에 너무 긴 러닝타임.. 유부남은 영화도 보고싶은것만 볼수가 없네요 에휴 @.@

    2011.02.01 17:24
  10. 앤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포츠를 소재로 영화 만들 때 배우들도 노력좀 했으면 좋겠어요. 프로야구 투수라는 사람이 어깨가 그게 뭔가요.
    팔굽혀펴기 1번도 못할 것 같은 몸을 들고 나와서 투수라니 웃겨서 중간에 보는거 포기했네요.

    2011.03.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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