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차직전의 코롤라 자동차 안에서 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시동을 건다. 어렵사리 시동이 걸리자 남자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린다. '시동이 걸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흐를 수 있는거냐...' 도대체 무엇이 이 남자를 이렇게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골든 슬럼버]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와 [피쉬 스토리]에 이어 이사카 코타로의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세 번째 작품이다.
2년전 아이돌 스타를 괴한으로부터 구출해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가 하루아침에 총리 암살범으로 지목된 택배사원의 도주극을 그린 [골든 슬럼버]는 흔히 볼 수 있는 헐리우드 영화의 '도망자'식 플롯을 채택하고 있지만 영화가 주는 느낌과 접근방식은 사뭇 다르다. 영화는 누명 쓴 주인공의 도주극이 주는 서스펜스나 짜릿한 반전이 아니라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감성적인 코드에 초점을 맞추는데, 퍼즐처럼 작은 조각을 이루는 인연과 추억의 단편들이 하나되어 주인공의 운명을 결정짓는 탄탄한 플롯의 묘미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럽다.
ⓒ Toho Company/ CJ Entertainment. All rights reserved.
다만 모름지기 스릴러라면 똥꼬가 바짝바짝 타들어가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에 있어서 [골든 슬럼버]는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하고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데다, 지향점이 분명치 않은 산발적 이야기 구성 덕택에 정통 스릴러물로서의 미덕은 느끼기 힘들다. 또한 다소 과장된 몇몇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영화가 가진 진지한 소재마저도 희화화되는 경향이 보인다.
오히려 [골든 슬럼버]는 누가 진범이고,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와 같은 진부한 미스테리 따위엔 관심이 없다. 한 개인을 너무나도 쉽게 음모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대 권력의 힘과 금방 부서질 것 같으면서도 쉽게 굴하지 않는, 그리고 소시민의 삶과 신뢰가 쌓아올린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 맞서 주인공을 지켜주는 과정에서의 쾌감이야말로 [골든 슬럼버]에 담겨있는 진정한 재미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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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남극의 쉐프]로 좋은 인상을 남긴 사카이 마사토가 특유의 어리숙한 표정을 통해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을 잘 살려내고 있으며, 감독의 전작인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진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하마다 가쿠가 이번에는 독특한 연쇄살인마로 등장해 웃음을 유발시킨다. 또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한 여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싱그러운 웃음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최근 [카이지], [20세기 소년] 등 왕성한 작품활동으로 낯익은 카가와 테루유키의 추적자 연기도 적역이다.
영화는 생각처럼 후련한 결말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한 한 남자의 노력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지를 확인하는 관객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그리고 눈가에는 흐를 듯 말 듯 잔잔한 눈물이 고여있을 것이다. 올해 최고의 감성 스릴러.
P.S:
1.제목인 [골든 슬럼버]는 비틀즈의 명반 'Abbey Road'에 실린 14번째 트랙 'Golden Slumbers'를 가리킨다. 흥미롭게도 'Golden Slumbers'는 불완전한 곡으로 다음 트랙인 'Carry That Weight'와 그 다음 트랙 'End'까지 연결된다.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들어보시길. 비틀즈의 후기 명곡 중 하나다.
2.영화의 압권은 주인공 아오야기의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이 장면은 객석에서 가장 폭소가 터져나올 만한 씬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감동적이며 눈물이 나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 [골든 슬럼버]의 모든 스틸 및 사진은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관련된 권리는 ⓒ Toho Company/ CJ Entertainment. 에 소유됨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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